 |
| ▲출처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2000년 화보집 | | |
2000년 6월 우리의 현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 중 하나가 일어난다. 평양에서 남북의 정상이 서로 환하게 웃으며 손을 맞잡은 것이다. 1991년 남과 북의 유엔 동시 가입으로 국제사회에서 양 정부의 독립적 정체성을 확인 받았다면, 2000년 6월 양국 정상이 손을 맞잡음으로써 현실에서 존재하는 서로의 실체를 역사적으로 받아들이고, 현실의 문제를 타개하는 방법을 찾아가는 첫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리고 두 정상이 손을 맞잡은 며칠 후 5개항을 담은 남북공동선언이 발표된다. 이것으로 우리는 분단의 모순을 해결하는 하나의 열쇠를 쥐었고, 소위 말하는 통일운동세력은 남북통일의 주체가 민중이 아닌 정권의 문제가 되어버림으로써 또 다른 모순에 봉착한다.
그 첫 번째 모순은 6.15 공동선언의 주체인 남한 정부에 대한 대응 방법이다. 분명 당시 김대중 정부(노무현 정부까지)는 신자유주의적 반노동 친자본적 정권이었다. 6.15공동선언에 명시된 남북경협의 대표적 사례인 개성공단은 자본의 유입에 따른 노동인권 유린이 발생하기도 했고, 금강산 개발방식도 자연친화적이거나 북한 대중의 생활환경 개선 방식이 아닌, 크루즈를 띄운다거나, 몇몇 기업의 이익에 철저하게 복무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럼에도 6.15 공동선언의 일부이기에 통일운동세력은 이를 비판하기는커녕 각 단체마다 앞 다투어 금강산 관광을 하며 통일의 향수를 달래는 웃지 못 할 상황이 빚어졌다. 또한 이제껏 민간부분에서 활발히 이루어지던 통일에 대한 논의는 정부의 느슨한 통제 하에 제도화 되고, 모든 통일에 대한 접근이 정부중심이 되었다. 시민사회단체의 역량은 약화되었고, 정부중심의 현상을 수수방관 할 수밖에 없었다. 왜냐면 6.15공동선언의 주체는 양국 정부이고, 그네들이 가진 구호는 6.15공동선언 이행밖에는 없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모순은 6.15 공동선언 이후 남한의 모든 운동세력을 나누는 기준이 공동선언지지 세력과 그렇지 못한 세력이 되어버렸다는 점이다. 남한의 나쁜 자본이라도, 통일에 관심을 가진다면(현대처럼) 착한 민족자본이 되고, 수많은 노동탄압과 인권탄압을 자행하더라도 공동선언을 이행하고자 하면 큰 틀에서 함께 가야 되는 사람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그네들이 이제껏 외쳤던 자주통일이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는 희석되었고, 6.15선언 이행이라는 정부 위주의 통일 정책프레임에 갇혀버렸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2002년 대선에서 구 민주노동당 당원들이 반6.15세력인 이회창의 당선을 막기 위해, 민주당 후보 노무현에게 투표하라는 문자를 밤새 돌린 가슴 아픈 해프닝을 만들어 냈다. 그 이후 외연확장 과정에서 신자유주의 세력이라는 친노세력과 손을 잡고 당을 이룰 수 있는 강한 멤버쉽(6.15 공동선언 이행세력)으로 작용되기도 했다.
그리고 다른 하나의 모순은 북한 정권을 바라보는 모순이다. 북한 정권은 6.15공동선언을 이행하는 하나의 주체이기 때문에, 정권비판을 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로 3대 세습문제, 북한 인권문제 등 북한 정권의 민감한 문제에 대하여 침묵하고, 정당한 비판을 하는 세력까지 6.15반대세력 내지는, 진보진영의 이단아 정도로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북한의 인권문제는 상식적으로 알려진 만큼으로도 충분히 비판가능하며, 그네들이 쉬쉬한다고 밝혀지지 않을 사안이 아니다. 또한, 대기업의 경영권 세습을 비판하는 그네들이 북한의 권력세습에 대한 언급은 내정간섭이 될 수 있어 반대한다는 옹색한 변명을 하는 것 또한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다.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인정된 하나의 정부라 하더라도, 최소한 우리가 다른 나라의 인권과 민주주의를 뺏는 권력이전의 방정식을 비판하듯 북한도 똑같은 관점에서 다가가야 하는 것이다.
6.15공동선언 이행이라는 모호한 관점에 숨어서 남한과 북한의 6.15세력이 저지르는 많은 모순들에 대해 일정부분 모른 척 하는(특히 북한의 인권유린과 민주주의 파괴행위에 대하여 말 한마디 못하는) 통일운동진영은 이제 침묵을 깨야 한다. 6.15선언 이행으로는 완벽한 민중의 통일이 이루어 질 수 없음을 이제 스스로 받아들이고, 진정 민중들이 함께 할 수 있는 통일에 대한 새로운 방정식을 세워야 한다.
아울러 그네들이 우리민족이라고 부르는 이들의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 획득을 위해 누구보다 먼저 발 벗고 나서서 할 것이다. 매년 6.15가 되면 한쪽에서는 통일축제 마당을 열고 한쪽에서는 선정적 사진을 걸어놓는 기이한 현상이 종결되기 위해서는 진정 통일을 원하는 세력이 북한 정권이 아닌 북에서 사는 민중들의 삶과 민주주의에 관심을 가져야 될 것이다.
그리고 통일운동세력이 아닌 민중운동세력들은 통일운동세력이 침묵의 벽을 깰 수 있게 공개적으로 애정 어린 충고와 비판을 계속해서 쏟아 내야 할 것이다.
거지 쪽박 깨뜨리지 않는 다는 심정으로, 보수언론과 여당으로부터 비판받는 통일운동 일부세력을 우리까지 뭐라 할 수 없지 않느냐는 심정적 동정심은, 재수없게 경찰에 잡혔으니 절대 동료를 불지 않는 깡패들의 의리와 별반 다를 바 없는 것이며, 쟤네들은 원래 이러니 우리는 우리 운동만 열심히 한다는 생각은 전체 운동을 일반화 시켜 바라보는 민중들의 시각을 무시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통일운동의 왜곡이 운동 전체를 갉아먹는 것을 방조하는 행위다.
일부사람들은 진짜 적색과 진짜 녹색의 우애로운 관계가 더 중요하다 하고, 가짜 적색도 하나의 다양성으로 인정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지만, 가짜 적색을 바꾸어 민중들에게 진실과 진심으로 다가가는 일, 이것이 민중의 삶에 개입하고 바꾸고자 하는 진짜 진보의 모습이 아닐까.
6.15공동선언이 그 자체로 민족의 모순을 해결하는 앞선 발걸음이었다는 데는 그 누구도 이견을 제시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프레임에 갇힌다면 진정한 통일세상, 민중이 행복한 통일세상을 얻는 것은 요원해질 것이고, 자본이, 여남의 차별이, 장애인/비장애인, 나이 차이가 만들어 내는 폭력이 여전히 존재하는 통일조국만을 그려 볼 수 있을뿐이다.
통일은 남과북의 민중이 우애롭게 함께하는, 폭력이 사라진 세기를 함께 누리는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2000년 6월 통일운동 동지인 김대중 대통령이 함박웃음을 지을 때 백발의 백기완 선생님이 외친 ‘민중중심 통일론’의 절규가 12년이 지난 지금도 하루 종일 귓가에 맴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