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반도 땅을 핍박하던 시절, 그곳은 술 빚는 곳이었다. 일제가 물러가고, 시간이 흐르면서 폐가처럼 버려진 그곳은 한 사진작가의 눈에 띄여 갤러리가 되었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흘러 그곳은 과거와 오늘을 이어주는 기억의 장소로 탈바꿈하고 있다. 대구시 중구 남성로 5번지, 약전골목 끄트머리에 자리 잡은 이곳은 이제 <옛술창고>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나게 되었다.
 |
| ▲ "창조적 게으름뱅이가 여유있는 세상을 만듭니다" 12일 옛술창고 오픈 기념 잔치가 열렸다. | | |
대구민예총, 대경독립영화협회 함께 쓰는 강당을 <옛술창고>로
“평상시에 놀리는 일 많은 강당 활용할 수 있도록...”
12일 저녁 7시, 땅거미가 조금씩 지기 시작할 무렵 옛술창고는 손님 맞을 준비로 분주했다. 이날은 ‘옛술창고 대충 오픈하는 날’로 창고지기 정미나 씨의 지인들을 초대해 조촐한 잔치를 하는 날 이었다. 미리 도착한 몇몇 손님들은 미나 씨를 도와 음식 준비를 하고 있었다.
미나 씨는 경북대학교 후문 쪽에 위치한 <어색하지 않은 창고>의 2호점의 창고지기였다. 어색하지 않은 창고는 생태, 환경, 나눔과 연대를 생각하는 대안적 카페 공간이다.
 |
| ▲ 정미나 씨(맨 오른쪽)가 옛술창고 오픈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온 손님들에게 음식을 내오고 있다. | | |
미나 씨는 “원래는 이곳에 세 드는 다른 단체들 강당을 놀리지 말고 봉사 형식으로 관리 해줄 생각이었는데, 어쩌다보니 생각보다 일이 커진 것 같다”며 “어떻게 해야 할지 멍하다”고 웃어보였다.
그녀의 설명대로 옛술창고는 사진 전시 갤러리로 쓰이던 두 공간 중 넓은 공간을 대구 민족예술인총연합과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가 사무실로 쓰고, 강당으로 사용할 작은 공간에 자리잡게 되었다.
그녀는 “이곳이 일제시대 때 술도가 였다고 하더라구요. 얼마전까진 사진 갤러리이기도 했고, 이름을 뭘로 할까 생각해보다가 ‘옛술’로 하면 ‘ㅅ’이 겹치니까 ‘예술’도 되고, ‘옛술’도 되겠다 싶었어요”라며 이름을 옛술창고로 지은 이유를 설명했다.
<옛술창고>의 세 가지 모드,
술도 마시고, 전시도 하고, 모임도 하고
옛술창고는 이름처럼 예술적 공간과 술 먹는 공간이 공존할 수 있도록 운영될 예정이다. 미나 씨는 이곳이 ‘태갤러리모드’, ‘옛술창고모드’, ‘예술창고모드’ 등 세 가지 용도로 이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
| ▲ 한쪽 벽면에는 정미나 씨가 라오스 여행을 하며 그린 그림과 사진 등이 전시되어 있다. | | |
태갤러리모드는 꿈꾸는 전시회 모드다. 그녀는 “예전 갤러리 기능을 그대로 이어가되 전문적인 작품을 전시한다기 보다는 이곳을 아는 분들이 자신을 표현하고, 알릴 수 있는 어떤 것들을 전시하는 공간으로 이용하는 것”이라며 “예를 들면 아는 분 중에 가창에서 방울토마토 농사 짓는 분이 계신데, 그분께 수확한 방울토마토를 담아와서 전시하셔도 좋다고 이야기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녀는 “예전에 술도가이기도 했고, 시내에서 집회 끝나면 마땅히 갈만한 술집도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저렴하게 술을 먹고, 수익금 중 일부는 집회 기금으로도 쓰면 좋겠다 생각했다”고 옛술창고모드를 설명했다. 그녀는 “예전에 갤러리 운영하시던 사진작가 선생님 작업실이 2층에 있어서 시끄럽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며 앞으로 찾아올 손님들에게 주의할 점도 덧붙여 말했다.
마지막 예술창고모드는 어색하지 않은 창고의 성격을 그대로 가져온 것으로, 강연, 영화상영, 회의, 스터디 모임 등 옛술창고를 찾는 사람들이 공간을 함께 만들어갈 수 있도록 열어둔 것이다.
 |
| ▲ 정미나 씨가 오픈 파티에 찾아온 손님들에게 옛술창고 이용법을 설명하고 있다. | | |
“창고는 손님이 주인 될 수 있는 곳”
이날 옛술창고 오픈 기념 잔치에는 40여명의 손님들이 찾아와 새롭게 문을 여는 옛술창고의 앞날을 축하했다.
초대된 손님들은 입을 모아 “창고는 제약이 없고, 편하다. 손님이 동시에 주인이 되어 카페를 함께 운영할 수 있어 좋다”고 말했다.
채민정 씨는 “창고는 제약이 없다. 손님이 동시에 주인이 되어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며 “여긴 정원도 있고 해서, 어색하지 않은 창고에서 보다 할 수 있는게 더 많을 것 같다”고 옛술창고의 오픈을 축하했다.
변찬준 씨도 “오랫동안 창고를 찾아왔었는데, 여긴 시내라서 접근성도 좋고 너무 좋다”며 “사람들에게 잠시 동안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쉼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를 보였다.
 |
| ▲ 오픈 잔치 마지막 순서로 정미나 씨가 참여했던 강정마을 그림자 연극 영상을 관람했다. | | |
12일 문을 연 옛술창고는 이날부터 7월 12일까지 한 달 동안 ‘한 달 동안 만들어가는 비완성 전시회’를 진행한다.
미나 씨는 “오픈 기념으로 창고를 찾아오는 분들이 자신을 소개하고, 알릴 수 있는 전시회, 상상하고 해보고 싶었던 전시회를 진행할 예정”이라며 “일단은 제가 라오스 여행을 하며 그려온 그림을 전시하고, 차차 다른 분들의 전시회도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