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굴삭기 노동자다. 중학교 졸업 후 굴삭기 운전 기술을 배웠고, 지금까지 일을 하고 있다. 기자 일을 시작한 후 건설노동자들의 상황을 알게 되면서, 아버지와 건설노동자들이 처해 있는 상황에 대해 이야기 하는 기회가 잦아졌다. 얼마 전에도 아버지와 그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언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무더운 여름에도 힘들게 일하면서도 부유해질 수 없는 건설노동자들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지난 4월 대구경북건설지부에서 건설노동자 500여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실태조사에 따르면, 평균 일당은 12만 5천원 이었고, 1년 평균 노동일수는 208일이었다. 또, 응답자들 중 14%만이 저축을 하고 있다고 대답했고, 74%가 빚을 진 채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조사 결과와 비교해
18%였던 저축인원은 감소하고
, 70%였던 채무자는 증가했음을 보여준다. 건설노동자들은 만성적인 저임금으로 하루 생활도 힘든 워킹푸어가 되고 있다.
아버지는 그것이 건설노동의 특성상 비가 많이 오는 여름이나 땅이 단단하게 얼어버리는 겨울에는 일을 할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는 취지로 말을 이었다. 그 말에 나는 “교사랑 똑같다. 교사들이 방학 때 학교에 나가지 않지만 임금을 받는 것처럼 건설노동자들도 노동조건이 그렇다면 마찬가지로 받아야 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그 말에 아버지는 순간 놀란 얼굴을 하며 “이자식이 진보 인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구만, 되지도 않을 일을 어거지 부리는 데모꾼 되려고 하는구나”고 하셨다.
대구에서 평생을 나고 자란 아버지는 지금껏 한 번도 새누리당에 표를 준 적이 없다. 그러니까 나름 자신이 진보적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다. 그런 아버지이지만 정작 자기 삶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를 이야기하자 처음 듣는 이야기라는 듯 놀라고 쉽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버지는 스스로 더 열심히 일해서 임금을 많이 받는 방법 외에 다른 것을 상상해본 적이 없었던 거였다. 그러니 내 말은 “되지도 않을 일”이고 그런 말을 하는 나는 “어거지 데모꾼”이 될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는 실현가능한 이야기를 하라는 말로 언쟁을 마무리 했다. 법이든, 제도든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고 나서 그런 이야기를 하라는 것이었다. 물론 당연히 법, 제도적 부분을 포함해서 원하는 세상을 만들도록 해야 한다고 대답했지만 아버지에게 여전히 내 말은 ‘되지도 않을 일’일 뿐이었다. 비단 아버지 뿐 아니라 한번도 상상해보지 못했고, 경험하지 못했던 일은 누구에게나 ‘되지도 않을 일’이 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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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0일, 총파업 투쟁 선포식에 민중가수 박준의 공연을 즐기고 있는 건설노동자들 | | |
10일 대구경북의 건설노동자들이 총파업 투쟁 선포식을 열었다. 그곳에 모였던 400여명의 노동자들은 스스로 거리에 서고, 자본과 권력에 맞서 싸워 상상했던 무언가를 쟁취했던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그렇게 8시간 노동을 쟁취했고, 임금인상을 이뤄낸 경험이 있었다. 아마도 그들에게는 내가 한 말이 싸워 얻어내야 할 세상이지, ‘되지도 않을 일’은 아닐 것이다.
‘불가능한 것을 요구하라’던 68혁명의 구호가 아니더라도 세상은 핍박받던 시민, 노동자들이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고, 행동한 딱 그만큼 변화해 왔다. 그 순간 그들의 상상과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되지도 않을 일’을 ‘어거지 데모질’하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세상은 딱 그만큼 변해왔다고 믿는다. 더불어 아버지에게 내 말이 더 이상 ‘되지도 않을 일’이 아니라 눈앞에 펼쳐진 경험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 아버지도 “전쟁의 폐허 위에 희망을 짓고 허허벌판에 신도시를 건설하는 자랑스러운 건설노동자”이길 소망한다.
어떤 책 읽는 노동자의 의문
- 베르톨트 브레히트
성문이 일곱 개나 되는 테베를 누가 건설했던가?
책 속에는 왕의 이름들만 나와 있다.
왕들이 손수 돌덩이를 운반해 왔을까?
그리고 몇 차례나 파괴되었던 바빌론
그때마다 그 도시를 누가 재건했던가? 황금빛 찬란한
리마에서 건축노동자들은 어떤 집에 살았던가?
만리장성이 준공된 날 밤에 벽돌공들은
어디로 갔던가? 위대한 로마제국에는
개선문들이 참으로 많다. 누가 그것들을 세웠던가?
로마의 황제들은 누구를 정복하고 승리를 거두었던가?
끊임없이 노래되는 비잔틴에는 시민들을 위한 궁전들만
있었던가? 전설의 나라 아틀란티스에서조차
바다가 그 땅을 삼켜 버리던 밤에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들이 노예를 찾으며 울부짖었다고 한다.
젊은 알렉산더는 인도를 정복했다.
그가 혼자서 해냈을까?
시이저는 갈리아를 토벌했다.
적어도 취사병 한 명쯤은 그가 데리고 있지 않았을까?
스페인의 필립왕은 그의 함대가 침몰 당하자
울었다. 그 이외에는 아무도 울 지 않았을까?
프리드리히 2세는 7년 전쟁에서 승리했다. 그 이외에도
누군가 승리하지 않았을까?
역사의 페이지마다 승리가 나온다.
승리의 향연은 누가 차렸던가?
10년마다 위대한 인물이 나타난다.
거기에 드는 돈은 누가 냈던가?
그 많은 사실들.
그 많은 의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