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격주간으로 시와 삶의 이야기를 담은 '신경현의 그 노래를 들어라' 연재를 시작합니다. 신경현 시인은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대구 성서공단에서 다시 용접일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의 삶인 노동의 노래를 뉴스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독자들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노는 날
보이는 것들이 보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들이 보이는 시간이
열리고 있다
오늘은
잔업도 철야도 출근 걱정도 없는 날
그라인더도 프레스 소리도 콘베이어 벨트도
오늘은
없다
잔업도 철야도 출근 걱정도 없는 날
그라인더도 프레스 소리도 콘베이어 벨트도
없는
오늘은
엄마 품에 잠든 아기의 콧잔등
그 새근거림 위로 찾아든
작고 여린 평온이
보인다
고요하나 치열하게
겨울의 딱딱한 껍질을 뚫고 돋아난
흔들리는 푸른 잎의 나무들이
바람에 부딪혀서 빚어내는
그 간지럽고 맑은 노래가
들린다
가난한 적이 없었던 사람들이
단 한 번도 쳐다 보지 않던
작고 여린 것들을
잔업도 철야도 출근 걱정도 없는
그라인더도 프레스 소리도 콘베이어 벨트도 없는
오늘, 인간의 시간으로
잠시 되돌아와
보이지 않던 모든 것들을
고맙고 눈물나게 바라본다
이 짧은 인간의 시간이 지나면
나는 또 다시
가난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사람들의 시간,
오직 그것이 돈이 될 때에만
돌아가는 끝없는 자본의 시간 속으로
비 인간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야 한다
이제
그만
내리고 싶다, 나는
** 벌써부터 덥다. 아무생각이 나지 않는다. 용접기를 잡고 하루 종일 어두컴컴한 공장에 처박혀 일을 하다 보면 정말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다. 현장 한 구석에 걸려 있는 시계를 처다보면서 저 놈의 시계 바늘은 왜 이리 더디게 가는지 하는 생각만 할 뿐이다. 대부분의 노동자들이 아마 그럴 것이다. 내가 일하는 현장에도 베트남 이주 노동자가 있다. 아내와 함께 한국에서 일 한지가 벌써 7년째라고 한다. 일요일도 없이 일을 한다. 물론 같은 한국 노동자도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나는 그 베트남 이주 노동자에게 맘이 더 갔다. 좀 쉬면서 하지 그래요? 베트남에선 이렇게 일 하지 않지요? 물으면 피곤한 얼굴로 ‘어쩔 수 없어요’ ‘나도 쉬고 싶어요’한다. 그 역시 다른 이주 노동자와 똑같이 한국인 노동자와 같이 일을 하면서도 한국인 노동자 보다 훨씬 작은 임금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일에 치여서 노동자들은 제대로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한다, 그것이 책이든 진실이든 아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이든...
하지만 무작정 일 하지 말고 놀자고 할 순 없다. 마음이야 쉬고 싶지만 사는게 어디 그런가 먹고 살기 위해 잔업을 하고 철야를 하고 특근을 할 수 밖에 없는 노동자들, 늙었다고 이주 노동자라고 여성이라고 이 눈치 저 눈치 봐가며 울며 겨자 먹기로 일 할 수 밖에 없는 현실이 오늘 한국에서 일하는 모든 노동자의 처지다. 말도 안되는 최저임금에 더 말도 안되는 노동시간, 한 숨 밖에 나오지 않는 미래....그러나 잠시라도 하늘 한번 쳐다 보고 살자. 옆에서 누가 죽는지 누가 억울한 일 당하지 않았는지 관심도 가지고 살자. 그럴 떼에만 이 비 인간의 시간을 우리는 벗어 날 수 있다.
신경현(시인, 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