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 흔히 역사는 딱딱하고 고루한 학문이라 취급받는다. 어려운 한자가 가득한 고 서적이나, 학창시절 달달달 외우는 '과목' 정도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때로는 국가주의를 강조하기 위해 활용되기 쉽상이다. 아니면 왕조의 역사, 위인의 역사를 쉽사리 떠올린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의 삶의 모습과 기록도 역사의 중요한 부분이다. 흔히 일제강점기, 근대화, 독립운동으로 표현되는 한반도 20세기 초반 근대사에서 쉽게 발견하지 못한 부분을 <뉴스민>에 연재한다. 연재를 담당한 김선웅 씨는 역사를 전공한 학부생으로 석사과정을 준비중이다. 그는 '얼치기 사학도', 'F급 좌파'로 스스로를 칭한다. 기존 역사학자들의 고루하고 딱딱한 관점을 넘어 민중의 삶과 투쟁의 역사에 관심을 쏟고 있다.
우리는 흘러넘치는 광고 속에서 수많은 여성들이 등장하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순 등장만을 넘어 여성의 성적 매력을 광고에 결합시킨다. 가령 자동차를 생각해보면 우리는 상품에 성적판타지가 투과되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광고와 더불어 대세인 걸그룹 가수들만 보더라도 민망할 정도로 성적 판타지를 강조한다. 획일화된 외모와 체형은 구분이 어려울 정도다. 걸그룹에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모두 ‘소녀시대’로 보여진다. 사실 대부분의 남성은 그것을 소비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은 소비되는 그 판타지에 맞춰지길 갈구한다.
한마디로 성과 상품이 결합하면서 서구적 미를 추종하고, 그것을 자연스럽게 소비하는 현상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오늘날의 이야기만이 아니다. 아주 놀랍게도 식민지로서 민족해방운동의 시대로 이해되고 있던 시기에도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바로 지금으로부터 90년 전인 일제강점기 때다.
일제강점기, 자본주의 도입과 성 상품화
학창시절 교과서를 떠올리면 1920년대 식민지 조선은 ‘독립운동’의 시기로만 기억된다. 하지만 동시에 이 시기는 식민지 근대가 형성되던 시기였다. 즉, 자본주의세계에 편입되어 식민지로서 자본주의가 이식되고 있었다. 산업과 임노동자의 형성이 시작되었을 뿐 아니라 서구 가치관의 도입 속에서 자본주의적 상품 소비가 이루어졌다.
그리고 이 와중에 앞서 언급한 성과 상품의 결합과 더불어 그것을 소비하는 현상들이 벌여졌다. 이는 서구적 가치, 일본의 정책, 자본주의적 소비가 이루어진 결과였다.
자유연애로 대표되는 서구의 개방적인 성과 육체에 관한 담론이 도입되고 있었다. 여기에 일본의 정책도 영향을 미쳤다. 1890년에 매춘업을 도입한 일본은 식민지 조선에도 매춘업을 도입하고 사창을 확산시켰다. 이런 도덕적 가치관의 변화는 일상생활에 스며들었고, 자본은 이를 놓치지 않았다.
일상적인 소비재를 판매하기 위한 광고에서 성의 상품화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가령 광고에서 여성과 여성의 이미지인 꽃이 등장하는 비중은 1927년에 70%를 넘어섰다. 물론 단순히 여성이 등장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적인 매력을 강조하는 기법으로 구성되었다. 매우 유명한 무용가였던 최승희가 등장하는 잡지를 보면 무용가와 상관없이 에로틱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그리고 1930년대에 들어서면 현재와 아주 비슷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1920년대에 등장하던 여성들의 외모, 체형 등은 동양적이었으며 옷차림 또한 대개 한복을 입고 있었다. 하지만 1930년대 전후부터는 서구적인 외모와 체형을 가진 여성이 등장하였고 옷차림도 서구적으로 변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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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9년 창간한 대중적 여성지 <삼천리>의 표지 | | |
동아일보의 피부미용치료제 광고에 ‘흑인이 변하여 미인이 된다’는 문구가 나타났으며, 하얀 얼굴과 높은 코가 강조되기 시작했다. 1929년에 창간된 대중적 여성지인 <삼천리>의 표지에 등장했던 여성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한복이 사라짐과 더불어 하얀 얼굴, 길어지는 몸매, 갸름한 얼굴로 변하다가 마침내 서양인의 모습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는 광고에서 서구적 미인을 주도했던 일본대기업 뿐만 아니라 서구에 대한 조선의 동경과 콤플렉스가 큰 영향을 미쳤다.
1922년에 나타난 성 상품화 비판
하지만 이 시대 속에서 더 놀라운 것은 바로 성 상품화에 대한 비판이 1922년도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신생활>(1922년 8월호)이라는 잡지에 「여성광고 유행병」이라는 글에서 지금도 새겨볼만한 비판을 전개한다. 당시 식민지 조선의 현실에서 ‘계몽기, 기업기에 낙오한 이 조선에 물질문명은 무엇보다도 여자의 화장품을 많이 제공하는 듯한 감이 없지 않다’라는 통찰이 존재한다.
그리고 매우 인상적이게도 ‘문명이 진보할수록 여권이 확장되어 간다고 하는 일면으로는 문명이 여자라는 상품의 가격을 더 오르게 하는 것도 피지 못할 현상-더욱 조선-의 증명이다’라고 한탄한다. 또한 ‘여자는 더욱 화장한 유두분면(기름바른 머리에 분바른 얼굴)의 미태로써 남자에게 그 여성의 가격을 더 멀리 취득한다’라는 비판도 담겨 있다.
일찍이 위와 같은 비판이 이루어졌지만 불행히도 90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변화가 없으며 도리어 더 심화되고 있다.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우리의 욕망을 조직하는 광고와 각종 매체를 포함한 문화산업 속에서 여전히 성의 상품화는 호황이다. 아니 더 적나라해지고 있다. 또한 상품화되는 여성의 이미지는 절대적으로 서구적 가치에 충실한 미인이다.
이런 현실이 나타나는 이유는 두 개다. 첫 번째는 자본주의와 그 소비형식에 의해 발생한다. 가령 앞서 「여성광고 유행병」에서 화장품과 같은 소비재가 정말 그렇게 많이 필요한 지를 지적하였다. 이것은 자본주의에서 자본은 수요 이상의 수요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본은 끊임없이 욕망을 조직해야하고, 성의 상품화를 노골적으로 사용한다. 심지어 오늘날에는 전통적인 페미니즘적 시각을 넘어 남성들까지 상품화시키면서까지 말이다.
두 번째는 서양에 대한 찬양이 미적 기준까지 내면화되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근대화를 열망했던 한국에서 서구에 대한 조건 없는 찬양이(극히 일부 기간을 제외하고) 당연시되었다. 이것은 단순히 외모의 선호를 넘어 오늘날 비백인 이주노동자에 대한 외모와 피부색으로 멸시하는 것에서 아주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아주 먼 옛날로 느껴지는 일제강점기에 나타난 모습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한 것을 보면 놀라움을 느낀다. 우리는 여전히 자본주의 하에서 자본이 만드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노골적인 성의 상품화 속에 살고, 여전히 무작정으로 서양에 대한 추종이 내면화되어있다. 자본주의와 식민지를 강제로 겪었던 우리의 근대사에서 현재에 이르는 이 문제를 다시 한 번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