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점 라이온즈. 프로야구 구단 삼성라이온즈의 서글픈 별칭이다. 투수진에서 적은 실점을 내 주고도 3점 정도 밖에 득점하지 못해 다른 팀 팬들로부터 놀림의 의미로 붙여졌다.
전문가들에게 독보적인 전력으로 평가받은 삼성라이온즈는 2012시즌 시작부터 부진했다. 4월이 부진했으나 5월이 되면 다시 반등하고 올라 갈 것이라는 예측도 빗나가고 있다. 날이 점차 더워지는 5월이면 성적이 상승한다던 삼성라이온즈는 21일 현재 승률이 5할에도 못미치며 6위에 위치해 있다.
2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삼성라이온즈의 팬이였기에 5월의 삼성을 기대했다. 하지만 기대는 빗나갔다. 결국 동반부진을 겪고 있는 지난해 홈런왕 최형우와 신인왕 배영섭이 2군으로 강등 됐다. 5월의 반등, 5월의 기대는 무너지고 삼성라이온즈에게 5월은 잔인한 달이 되고 있다.
광주민중항쟁과 5월 정신
잔인한 5월은 기념일도 많고 행사도 많다. 1일 노동절부터 시작해서 518광주민중항쟁이 있고, 어린이 날, 어버이 날, 스승의 날, 석가탄신일... 그래서인가, 대학시절 자주 가던 술집 벽면에는 ‘5월은 투쟁의 달’이라는 낙서가 적혀 있기도 했다. 지난 한 주는 유독 228공원에서 문화제가 많이 열리기도 했다. 17일 쌍용차 희생자 추모문화제, 18일 518추모문화제, 20일 故 노무현 추모문화제까지.
5월이 되면 독재에 항거한 5월 광주정신을 계승하자는 이야기들이 많이 들린다. 이 말을 곱씹는 이들을 보면 ‘5월 광주 정신은 제각각 이구나’싶어질 때가 많다. 지난 주 열린 문화제를 취재하면서 그런 생각은 더 커졌다.
518추모문화제에서 한 발언자는 “많은 시민들이 함께 광주 정신을 계승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무대 앞에 놓여진 의자들은 많은 시민들이 함께 참여하기 힘들어 보였다. 문화제도 매년 진행하던 레퍼토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518관련 단체들의 발언과 공연으로 꾸며졌다.
비단 형식적인 부분 뿐 아니라, 민주주의를 염원하는 ‘축제’와 살아있는 오늘날의 ‘투쟁’ 둘 중 어느 것도 담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5월 광주 정신이 더 나은 민중의 삶을 위한 항쟁의 정신이라면, 임금체불로 거리에서 농성 중인 건설기계 노동자의 이야기, 부당해고로 공장에서 쫓겨난 상신브레이크 노동자의 목소리 등 각자의 삶에서 투쟁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목소리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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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일 228공원에서는 518추모문화제가 대구백화점 앞 광장에서는 동성로축제 행사가 열렸다. | | |
택시 노동자, 버스 노동자, 대학생, 상인 들이 함께 싸웠던 80년 5월 광주를 되새기자면 시민과 노동자의 어설픈 분리를 허무는 장이 필요했다. 같은 시각 동성로 한 복판 대구백화점 앞 광장은 동성로축제 행사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518문화제에서 광주정신은 ‘대동의 정신’이라고 말한 어느 분의 이야기처럼.
노무현이 꿈꾼 세상은?
20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3주기 추모문화제는 더 큰 씁쓸함을 주었다. 518문화제 보다 많은 400여 명이 참석했다. 228공원 입구 주변에 걸린 추모 현수막의 ‘대통령님 뜻 이어서 사람 사는 세상 만들겠습니다’는 문구와 ‘우리 아이들의 미래를 위해 노무현 정신을 계승하자’라는 발언들이 쏟아졌다. 노란색 풍선에는 ‘사람 사는 세상’이 새겨져 있었다.
고인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이야 당연한 것이지만 ‘노무현이 꿈꾼 세상, 우리가 이루겠습니다’는 추상적인 말 속에는 진정 고인이 꿈꾼 세상이 무엇인지는 비어있다. 공원 주변에 걸린 노란띠에도 ‘당신의 뜻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 ‘사랑합니다’, ‘당신은 영원한 우리의 대통령입니다’류의 글이 적혀 있었다. 어디에도 그 ‘세상’과 ‘뜻’을 구체적으로 명시한 글귀는 보이지 않았다. 그저 ‘사람 사는 세상’일 뿐이었다.
노무현이 꿈꾸던 세상이 뭐였지? 의구심이 들었다. 지금의 MB정권을 비판하며 전 대통령을 떠올리는 것.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제대로 생각해야 한다. 노무현 정권시절 한진중공업 노동자 김주익과 2011년 김진숙의 차이. MB정권 시기 쌍용차 희생자와 노무현 정권 시기 목숨을 잃은 포항의 건설플랜트 노동자, 한미FTA 중단을 요구하며 목숨을 잃은 故 허세욱 열사, 경찰의 방패에 목숨을 잃은 농민의 차이. 2006년 평택미군기지 확장이전을 추진하며 군인들이 쫓아낸 대추리 주민들과 현재 강정마을의 차이까지.
추모제에 나타난 고인의 모습은 80년대 말부터 대통령 당선 이전까지 모습이 대부분이었다. 혹자가 ‘노통은 그런 분이 아니었지만 대통령이라는 직책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 많이 괴로워 하셨다’라는 식의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렇게 말하면 박정희와 5월 광주를 짓밟은 전두환에게도 똑같은 논리를 적용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은 망각의 동물이라지만 심각한 망각은 왜곡에 다름 아니다. 고인의 정신을 기리는 것과 고인이 살아간 삶의 궤적에 대한 사실인식은 구분되어야 하는 일이다. 더욱이 그 정신이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언어로 표현된다면 말이다. 고인의 재임 시절에도 많은 노동자들이 해고와 비정규직의 불안에 시달렸다는 것은 ‘사실’ 이다.
박물관 속에 박제된 채 전시된 5월이, 전 대통령 한 명이 잠식한 5월이 광주의 정신인지 곰곰이 생각해 볼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