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과 지옥을 동시에 오가는 한주였다.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예비군 훈련을 받고 나오니, 세상은 그전보다 더 시끄러워져 있었다. 통합진보당의 부정선거 사태는 끝끝내 당권파와 비당권파의 분열을 표면화 했고, 끝없는 나락으로 떨어졌다. 당권파는 “이것이 수구세력이 원하는 것이다”, “노통도 그렇게 갔다”는 정말, 그야 말로 말인지 당나귄지 알 수 없는 말을 일삼으며, 부정이 아니라 약간의 부실이 있었을 뿐이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급기야 12일 열린 당중앙위원회에서는 당권파 참관인들이 단상에 올라 유시민, 심상정, 조준호 공동대표를 집단 린치 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이전투구, 서로 물고 뜯는 복마전이 따로 없었다. 진보의 전각으로 여겨지던 통진당이 이제는 마귀가 숨어 있는 전각이 되어버렸다. 당명까지 고치려는 시도를 해가며 독점하려 했던 ‘진보’는 이제 스스로 입에 담기조차 부끄러운 단어가 되고 말았다.
페이스북은 통진당 사태로 타격을 받은 진보라는 ‘이름’을 우려하는 글들로 도배되었다. 지역에서 묵묵히 ‘이름’으로서의 진보가 아니라 ‘가치’로서의 진보를 위해 노력해 온 분들의 우려와 한탄 섞인 글도 올라왔다. ‘이것으로 진보세력 전체는 커다란 타격을 입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정말 그런가, 이제 진보는 재기할 수 없는 커다란 타격을 받고야 말았나.
그렇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기엔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지역에서 ‘가치’를 위해 헌신하고 있었다. 더군다나 12일 대구에서 있었던 청년과 김범일 시장의 소통의 자리에 참석한 많은 청년들은 여전히 또 다른 희망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들은 통진당 사태는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각자가 가고자 하는 길을 가기 위해 각개전투 중이었다.
수백, 수천명씩 모여서 짱돌을 들고 스크럼을 짜던 과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을 뿐 이들은 여전히 각자의 자리에서 묵묵히 각자의 ‘가치’를 쫓으며 같이 살아가고 있었다. 짱돌을 들고, 스크럼을 짰던 과거의 ‘선배’들은 오늘도 여전히 그것이 방법인냥 어제의 동료를 향해 짱돌을 들고 스크럼을 짜고 있을 뿐이다. 언젠가 한 선배의 “이제는 후배가 없다”던 말이 무색할 만큼 그들은 건재했다. 시장과 함께하는 행사에서 시장의 들러리가 아니라 주인공이 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고민을 짜낼만큼 이들은 성장해 있었다.
지옥의 불구덩이에서 건저올리고 희망을 보여준 것은 그들이었다. 그들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없다고 말하는 선배들에 의해 가려져 있었을 뿐이었다. 그날 그 자리에서 만난 한 청년은 선배들을 ‘꼰대’라고 표현했다. 과거의 방식을 고수하며 새로운 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꼰대’. 김범일 시장은 그 자리에서 “보수 중에서 나쁜 보수가 변화를 두려워하고 거부하는 보수다. 수구꼴통이라 부른다”고 말했다. 진보의 탈을 쓴 수구꼴통들이 오늘의 사태를 만들었다고 보면 과한 평가일까.
이제 각개전투 하던 젊은 청년들이 머리를 맞대보려 자리를 만들고 있다. 이들을 보고 있으면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천사들의 제국>의 주인공들이 떠오른다. 주인공들은 “사랑을 검으로! 유머를 방패로!”라는 구호로 서로를 이끌고 밀어줬다. 어떤 위기의 순간에도 이들은 사랑과 유머를 잃지 않았다. 다행이다. “짱돌을 검으로, 스크럼을 방패로”하는 시절은...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