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선하게 기분 좋은 바람이 부는 토요일 아침이었다. 진선아 대구녹색소비자연대(녹소연) 팀장은 “그늘도 많지 않은 코스인데, 날씨가 좋아서 다행”이라고 말했다. 지난 12일 오전 9시, 60여명의 대구지역 청년들이 대구올레 6코스 ‘단산지 가는 길’ 출발지점인 불로동 고분군 공용주차장에 모였다.
이날 올레 6코스에서는 녹소연과 대구시가 준비한 행사가 계획되어 있었다. 김범일 대구시장과 대구지역 청년들이 “대구야, 청년을 부탁해! 청년들아, 대구를 부탁해!”라는 타이틀로 올레길을 걸으며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지기로 한 것이다.
올레 6코스는 2010년 4월에 개장한 코스로 삼국시대에 조성된 211기의 고분이 복원된 불로동 고분군과 봉무공원, 만보산책로, 단산지로 이어지는 편편한 길이다. 9개 대구 올레코스 중 가장 쉬운 길로 진선아 팀장은 “요즘 학생들 운동이 부족해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제일 쉬운 코스로 선택했다”며 웃어보였다. 이날 행사에서는 김범일 시장의 스케줄을 고려해 만보산책로는 코스에서 제외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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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범일 대구 시장과 청년들이 대구 올레 6코스 중 불로동 고분군을 지나고 있다. | | |
대구시, "지역에서 청년과 시장님 소통 자리 마련한 건 처음"
청년들 한 목소리로 일자리 문제 해결 요청
김석동 대구시 자치행정과 계장은 “녹색소비자연대와 대구시가 청년들과 시장님의 소통 자리를 마련해보고자 작년부터 논의해서 준비한 행사”라며 “지역에서 청년과 시장님이 소통의 자리를 마련한건 처음이다”고 설명했다.
김석동 계장은 “보통 행사를 하면 시장님은 3,40분 정도 참석하는 수준인데, 오늘 행사는 4시간 이상을 함께 하신다”며 “그만큼 시장님도 오늘 청년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오셨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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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쉬는 시간 동안 김범일 시장이 참가 청년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 | |
김 계장의 말처럼 이날 행사는 올레길을 걷는 것보다 시장과 청년 사이의 소통에 방점이 찍혀있었다. 출발부터 김범일 시장은 몇몇 청년들과 함께 걸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중간중간 쉬어가는 자리에서도 청년들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들은 약 2시간여 올레길을 걷고, 국제학교 소강당에서 약 한 시간 동안 시장과 대화시간을 갖기도 했다.
행사에 참여한 청년들은 한 목소리로 김범일 시장에게 일자리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청년들은 대구가 서울에 비해 물가도 싸고, 문화적으로 크게 불편한 것도 없는데 일자리 만큼은 실망이라며 입을 모았다.
행사에 참여한 최재현(남, 17살)씨는 김범일 시장에게 무엇을 물어보고 싶으냐는 물음에 “시장님에게 내가 2,30대가 되면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게 해달라고 말하고 싶다”며 “아버지를 보면 지금 일자리가 큰 문제거리인 것이 느껴진다”고 말했다.
또, 쉬는 시간 동안 김범일 시장과 이야기를 나눈 윤은지(여, 21살)씨는 “화학공학을 공부하고 있어 제약업계에 관심이 많다”며 “대구에 들어서는 첨단의료복합단지에 대구 청년들이 많이 일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했다.
김범일 시장은 “전국적으로 많은 청년들이 첨단의료복합단지에서 일하고자 한다”며 “뛰어난 능력만 갖춘다면 대구 청년들이 되도록 많이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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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궁화 동산에서 참가자들은 다리쉼을 하며 막걸리잔을 나누었다. | | |
청년들, "무작정 일자리 늘리는 것이 아니라, 좋은 일자리가 필요"
김범일 시장, "자나 깨나 대구 경제, 좋은 일자리 만드는 것을 시정 목표로"
이들의 본격적인 대화 시간은 국제학교에서 점심을 먹은 후 이뤄졌다. 대구시는 본격적인 대화에 앞서 약 10분간 대구시가 추진 중인 청년 일자리 정책에 대한 설명 시간을 가졌다. 대구시의 설명이 끝나자 많은 청년들이 앞 다퉈 김 시장에게 질문을 하려 손을 들었다.
서울에서 줄곧 살다가 대구에서 직장을 얻어 6년째 살고 있다는 한 청년은 “조금 전 설명은 주로 새로운 일자리를 늘리는 것과 청년 창업을 지원하겠다는 것이 요점인 것 같다”며 “지금도 일자리 개수는 많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청년들이 갈 만한 좋은 일자리가 없는 것이 문제고, 창업을 해도 10개 중에 1, 2개만 살아남는다”고 지적했다.
그는 “무작정 일자리를 늘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좋은 일자리를 만들 것인지 또 기존의 일자리를 어떻게 좋은 일자리로 만들 것인지 비전을 보여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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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범일 시장이 청년들의 물음에 답하고 있다. | | |
김범일 시장은 “저는 자나 깨나 경제,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시정 목표로 하고 있다”면서 “20년 가까이 여러 가지 이유로 대구 경제가 뒤쳐졌지만 이제는 희망을 가져도 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김 시장은 “땅이 있어야 기업을 유치할 수 있다”며 “제가 시장이 되면서 여러 곳에 땅을 확보해 기업들이 들어올 수 있는 단지를 조성했다”며 성서5차단지, 현풍 테크노폴리스, 신서혁신도시, 첨단의료복합단지 등을 언급했다. 김 시장은 “각 단지에 삼성SSLM 같은 대기업도 들어오고, 공공기관도 이전해오고, 국책연구소도 들어온다”며 “절대 좌절하지 말고 희망을 가지고 같이 노력하자”고 대답했다.
또, 김 시장은 “좋은 일자리 부분에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대구가 대기업은 없지만 중견기업들은 많다”며 대동공업, 대구텍, SL그룹 등 대구지역의 중견기업들을 소개했다. 김 시장은 “(소개한) 기업들에 가보면 ‘아이구 시장님 사람이 없어 죽겠습니다’ 한다”며 “여러분이 서울에 올라가 파워엘리트 그룹에 들어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쫓기듯 서울에 가지는 마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대학 진학으로 2000년부터 대구에서 살고 있다는 이재헌(남, 28살) 씨는 포항공단을 예로 들며 김 시장의 대답을 반박했다. 그는 “포항공단은 이 대통령, 이상득 의원이 열정적으로 밀었던 곳으로 2010년 보상을 끝내고, 2012년부터 착공이 되어야 하지만 아직 보상도 되지 않았다”며 “이유가 그곳에 들어오려는 기업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구에서 부지가 없어서 공단이 들어서기 힘들다고 했지만, 공단이 생긴다고 해서 들어오려고 하는 기업이 있을지, 또 기업이 있다고 해서 그곳에 대구 청년들이 갈 메리트를 느낄지는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 시장은 제조업의 중요성을 설파했다. 김 시장은 “올해 오바마 대통령의 연두 연설의 60%가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말했다”며 “선진국의 가장 큰 문제가 제조업을 다 빼앗긴 것”이다고 주장했다. 김 시장은 “청년들이 제조업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지만 제조업 기반 위에 산업이 발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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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 참가자가 김범일 시장에게 질문을 하고 있다. | | |
일자리 문제 외에 가장 많이 논의된 주제는 대구의 문화였다. 한 청년은 “대구에 문화가 많다고 하면서 예로 든 것이 오페라나 뮤지컬인데, 저는 그 말에 동의하지는 않는다. 문화는 지역 사람들이 역사적으로 축적시킨 하나의 양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며 “더군다나 오페라나 뮤지컬은 소비적인 문화다. 실제로 청년들에게 물어보면 이런 소비적 문화를 좋아하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대구만의 특색을 담을 수 있는 문화가 필요하다”며 “시장님은 어쩔 수 없이 경제를 위해서 메디컬 시티, 의료복합단지 유치를 이야기 하시지만 저는 대구 시민으로서 대구만의 특색을 살리는 사업을 조금 더 키울 수 있으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김 시장은 “여러 가지 행사가 대구 곳곳에서 이뤄진다. 크고, 작은 행사에서부터 비싼 것에서 무료까지 많다”며 “이게 문화가 맞나, 예술이 맞나 판단하기 전에 많이 가봤으면 좋겠다”고 대답했다.
김범일 시장, "젊어지는 시간, 여러분을 조금 이해할 수 있었다"
청년들 반응은 제각각, "시장님 생각하는 대구 알 수 있는 기회 좋아" vs "시장님 스케줄에 맞추고, 시장님 하고 싶은 말만"
한 시간여 이어진 대화 시간을 마치며 김 시장은 “여러분과 이렇게 시간을 보내니까 몇 살 젊어지는 것 같다. 사실 젊은 사람들이랑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다”면서 “여러분들이 조금 이해가 되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자주 이런 자리를 만들도록 하자”고 소감을 밝혔다.
행사가 끝난 후, 참여한 청년들의 반응은 제각각이었다. 배지현(여, 26살)씨는 “시장님이 생각하는 대구를 들을 수 있는 기회여서 좋았다”며 “공사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동구 쪽에 들어오는 공사에 대구 청년을 많이 뽑아달라는 말에 노력하겠다고 답하시더라”고 말했다.
하지만 김헌재(가명)씨는 “스케줄도 시장님 스케줄에 맞추고, 소통이 아닌 시장님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자리가 돼버린 것이 아쉽다”고 말했다. 그는 “제조업이 중요하다고 하시던데 동의는 한다. 하지만 핵심은 제조업을 하느냐 안하느냐가 아니라 제조업을 할 수 있는 여건, 즉 복지가 마련되어야 한다”며 “제조업이 강한 중국도 지금은 복지 이야기를 하고 임금상승률 가이드라인을 만든다고 한다. 그런 것 없이 무작정 제조업 하자는 건 단순히 제조업을 청년들에게 강요하는 시대착오적 이야기”라고 비판했다.
또 다른 참석자인 김익성(가명)씨는 “시장님 대답의 대부분이 대구시의 다양한 문제들이 대구시민들의 의식이 잘못됐기 때문이라는 투였다”고 꼬집었다. 그는 “2, 3분 질문하면 혼자서 10분, 15분 대답하고, 대답 중에서도 7,80%는 대구는 살기 좋은 도시라는 질문과는 관련 없는 내용이었다”며 “소통도 안됐고, 일방통행도 안 된 것일 수 있다. 말한 것도 다 공중으로 날아가버렸다”고 소감을 밝혔다.
진선아 팀장은 “마지막 하이라이트가 시장님과 대화시간이었는데 시장님이 시간을 1시45분까지 밖에 못내는 상황이었다”며 “어떻게 시간을 맞출 것인가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중간에 취소된 행사들도 있고, 대화 시간도 짧은 감이 있어서 아쉽다”고 전체 행사를 평했다.
진 팀장은 “이런 소통의 자리를 처음은 저희가 만들었지만 다음은 청년들의 의지가 있어야 한다”며 “계속해서 소통의 장을 원하고, 그것을 우리에게든, 시에게든 어필해줬으면 좋겠다”고 젊은 청년들이 소통에 적극적으로 나서주기를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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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구시 관계자들이 시지노인병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노조원들을 막아서고 있다. | | |
한편, 이날 행사에는 시지노인병원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노조원들이 찾아와 손플랑을 들고 침묵시위를 하려 했으나 대구시 관계자들의 저지로 무산됐다. 대신 이들은 ‘돈보다 생명을’이라 적힌 몸자보 조끼를 입고 행사 일행과 국제학교 까지 함께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