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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5년07월07일 10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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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키즘의 아버지: 조제프 피에르 프루동 ①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자의 절대자유-아나키즘](10)

채형복(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europia@knu.ac.kr

1. 프루동의 생애

“프루동은 우리 모두의 주인이다(Proudhon is the master of us all).”

미하일 바쿠닌의 이 말은 ‘아나키즘의 아버지’로 불리는 조제프 피에르 프루동(Pierre Joseph Proudhon; 1809.1.15~1865.1.19)에 대한 최고의 찬사이다. 어떠한 권위도, 지배(자)도, 또 통치(자)도 부정하는 아나키스트들에게 ‘우리 모두의 주인’은 있을 수 없다. 이율배반적이자 모순적인 이 표현은 아나키즘과 아나키스트들에게 있어 프루동이 차지하고 있는 위상과 그 영향력을 잘 보여주고 있다.
프루동은 프랑스 동부 프랑슈-콩테(Franche-Conté)지방에 있는 브장송(Besançon)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양조장에서 알콜을 제조하는 노동자였다.

“나는 가난하고, 가난한 자의 아들이다. 나는 가난한 이들과 일생을 보냈으며, 십중팔구는 가난하게 죽을 것이다.”

▲프루동 [사진=www.slate.fr]

그의 말에서 보듯이 가난은 그의 아나키즘 사상 형성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 그는 12세 때 여인숙 음식 출납원으로 일하면서 중등학교 6학년에 편입하였다. 하지만 일을 위해 수시로 수업에 가지 못했으며, 교과서를 필사하거나 시내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 읽는 등 거의 독학해야 했다. 이후의 상황도 거의 변함이 없어 학업 과정을 제대로 마칠 수 없었다. 19세 때 프루동은 브장송의 인쇄소에서 인쇄공으로 근무했다. 이때 그는 교회의 라틴어성경을 교정하면서 신학에 관한 광범위한 지식을 익히고, 또 히브리어를 스스로 체득하였다. 1837년 그의 첫 저서 《일반 문법론》을 발간한다. 그 후 활발한 저술 활동을 시작하였다.

1839년 발간한 《일요일 예배론》은 재산 평등의 이상에 근거한 사회개혁사상이 주된 내용이다. 이 책은 성직자회의의 결정으로 판매가 금지되었다. 또 1840년 6월 《소유란 무엇인가》가 간행되었다. 그러나 “소유는 도둑질이다!”란 과격한 표현과 내용이 문제가 되어 브장송 아카데미에 의해 그 발간 허가가 취소되었다. 프루동은 그 허가 취소를 거부하고, 1841년 4월 소유에 관한 두 번째 논문을, 1842년 1월 세 번째 논문을 추가 발행하였다. 그 세 번째 논문마저 브장송 경시청에 의해 압수되어 기소된다. 이에 1843년 3월 인쇄소를 그만두고 프루동은 1847년 10월까지 리옹에서 “고찌에형제상사”의 사무원 및 법률고문으로 근무하였다. 이때 경제학자와 교유하면서 1846년 《경제적 모순의 체계 또는 빈곤의 철학》을 발간한다.

그 후 1848년 2월혁명과 튈르리궁의 무혈점거에 참가하였으며, 〈인민 대표〉, 〈인민〉, 〈인민의 목소리〉등 신문을 발간하고, 인민은행과 상호주의적 교환조직의 결성을 시도하고, 같은 해 6월 보궐선거에서 국민의회 의원으로 선출된다. 1849년에는 자신의 신문에서 루이 나폴레옹 대통령을 ‘반동’으로 공격했다는 이유로 3년의 징역과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옥중생활을 하는 중 재봉사와 결혼하였고, 《한 혁명가의 고백》(1850년), 《19세기의 혁명의 이념》(1851년)을 집필한다.

출옥 후 1858년 발간한 《혁명의 정의와 교회의 정의》는 6,000부가 팔려 당시로서는 상당한 성공을 거둔다. 하지만 공중도덕·종교·국가를 공격했다는 이유로 이 책은 경찰에 압수당하고, 다시 징역 3년과 벌금형을 선고받는다. 이에 프루동은 가족과 함께 벨기에 브뤼셀에 망명하였다. 1862년 프루동은 특별사면을 받고 프랑스로 귀국한다. 그 이듬해인 1863년 《연방의 원리》를 발간한다. 그리고 그의 유저(遺著)인 《노동자 계급의 정치적 능력》을 구술하고 파리코뮌 5년 전인 1865년 1월 19일 파리에서 심장병으로 타계하였다.

2. 아나키의 의미

프루동은 스스로 ‘최초의 아나키스트’로 명명하고, 그렇게 불리기를 원했다. 그의 바람대로 바쿠닌과 크로포트킨을 비롯한 아나키스트들은 그를 ‘아나키즘의 아버지’로 부르며 추앙했고, 많은 사상가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실제로 프루동은 아니키즘에 관한 구체적 이론을 정립하고, 그 실천적 행동방향을 명확하게 제시하였다. 그 당시 지식인들이 프루동의 사상에 얼마나 열광했는가에 대해 몇 가지 예를 들어본다. 

프랑스의 유명한 시인 보들레르(Charles Baudelaire)와 플로베르(Gustav Flaubert)와 같은 시인은 물론, 위고(Victor Hugo)와 같은 대문호도 프루동을 찬양하였다. 또한, 톨스토이는 프루동의 영향을 받아 유명한 소설 《전쟁과 평화(La guerre et la paix)》를 썼고, 쿠르베(Gustave Courbet)는 그의 초상화를 그리기도 하였다. 문학비평의 아버지로 불리는 생트-뵈브(Sainte-Beuve)는 프루동을 “지적인 프로메테우스”라고 불렀으며, 그에 관한 전기를 썼다(박홍규, 117~118쪽).

아나키․아나키즘과 관련하여 프루동이 남긴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는 그 개념을 명확히 한 것이다. 이 두 용어는 프랑스혁명 당시에도 사용되고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보편적으로 이해되는 아나키․아나키즘이란 의미로 이 두 용어를 처음으로 사용하고, 그 개념을 명확히 정의한 이가 바로 프루동이다.

《연방의 원리》에서 프루동은 ‘아나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다. 

“다양한 자유체제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나는 영어로 ‘자치정부’(self-government)로 불리는 체제를 아나키 혹은 개별정부로 지칭하고자 한다. 일련의 모순을 포함하고 있는 아나키한 정부(gouvernment anarchique)란 표현은 불가능하고, 또 이는 부조리한 이념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 언어(용어)를 재구성하면, 정치적으로 아나키(anarchie)의 개념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이고 또 긍정적이다.”(Pierre-Joseph Proudhon, p. 29.)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에 의하면, 아나키즘은 크게 무질서, 무지배(혹은 무통치) 및 무정부의 세 가지의 뜻으로 사용되고 있다. 이 가운데 세 번째 뜻으로 사용되는 ‘무정부’는 자칫 아나키즘이 테러 등 무장폭력수단마저도 서슴지 않고 사용하는 부정적 집단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현실적으로 ‘아나키’란 말은 프랑스대혁명 이후 19세기 정치에서 ‘지배자 또는 통치가 없는 상태’를 뜻하는, 즉 ‘폭력과 무질서와 동의어’인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프루동은, ‘아나키정부’를 다양한 자유체제의 한 유형인 ‘자치정부’로 파악하고 있다. 특히 “아나키의 개념은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합리적이고 또 긍정적이다.”라는 표현에서 보듯이 프루동은 아나키에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하였다(이용재, 60쪽). 그의 관점에서 보면, 아나키란 ‘무지배’ 혹은 ‘무통치’를 뜻하고, 모든 유형의 권위를 거부하는 것이다.

프루동은 교회, 종교 및 독재와 같은 모든 유형의 절대적 힘(즉, 권위)에 대항하여 개인의 자유를 옹호하고자 의도하였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라도 공공이익(l'intérêt général) 또는 사회정의(la justice sociale)를 이유로 개인이 희생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였다. 프루동에 따르면, 개인과 사회는 원래 스스로 성장하고 발전하는 것이고, 사회의 불의와 불평등은 공권력의 지나친 간섭과 통제에서 오는 것이다. 따라서 강제적인 지배와 통치가 사라진 사회만이 진정한 조화와 안정을 되찾을 수 있다. 이러한 사회, 즉 “주인이나 주권자가 부재한 통치형태”를 프루동은 ‘아나키’라고 보았다(이용재, 61쪽). ‘아나키’라는 개념에는 아나키즘이란 ‘무지배’ 혹은 ‘무통치’라는 생각이 포함되어 있다. 인간을 통치하는 지배제도는 필요하지 않다는 것이 아나키에 대한 프루동의 관념이다(김성주․이규석, 25쪽).

프루동이 사용한 ‘아나키’란 표현은 권위가 존재하지 않는 사회를 위한 논거로서 자연법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하고 있다. 즉, 그의 ‘아나키’ 개념에는 사회의 내부에는 균형의 자연법이 기능하고 있다는 관념이 전제되어 있다. 이에 따라 프루동은, ‘권위를 질서의 적’으로 규정하고, ‘권위주의자들’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공격하고 거부하였다. 이러한 이유로 프루동은 추종자를 구하지 않았고, 어떤 종류의 조직도 만들지 않았으며, 생애 대부분을 고립상태에서 아나키스트라는 말을 들으며 지냈다(김성주․이규석, 25~26쪽).

‘권위는 질서의 적’이라는 그의 사상은 ‘소유와 경쟁은 전제적’이라는 결론으로 귀결된다. 프르동에게 있어 소유(권)은 어떠한 경우라 할지라도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다. 이런 면에서 소유(권)이란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물론 프루동도 소유와 경쟁이 가지는 유효성과 필요성은 인정하고 있다. 다만, 이를 위한 전제조건은 소유와 경쟁이 ‘특권적’이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의 이러한 생각은 1840년 출간된 주저(主著) 「소유란 무엇인가」(Qu'est ce que la propriété?)(이하, 「소유」)에 잘 나타나 있다.

<참고문헌>

•김성주․이규석, “아나키즘과 인간의 자유: 절대자유의 사상에 관한 일고찰”, 사회과학(제42권 제2호, 통권 제55호, 2009).
•박홍규, 《자주․자유․자연 아나키즘 이야기》, 이학사, 2004년.
•이용재, “유럽연방을 꿈꾼 사회주의자: 피에르 조제프 프루동”, in: 통합유럽연구회, 《인물로 보는 유럽통합사》, 책과 함께, 2010년.
•Pierre-Joseph Proudhon, Du Principe fédératif, Première partie, Chapitre II.
•Pierre Joseph Proudhon, Qu'est ce que la propriété?(1840)(피에르 조제프 프루동(이용재 옮김), 《소유란 무엇인가》(대우고전총서 009), 아카넷, 2003년.

▲채형복 교수

채형복(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europia@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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