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 모임으로 약속했던‘잡식가족의 딜레마’를 보기 전, 영화에 대한 사전 정보를 들은 터라 “영화 보기 전에 미리 고기 먹고 가야 하는 거 아냐?”라는 농담을 주고받았다.
몇 년 전 광우병 소고기 파동이 한창일 때, 관련 영상을 여러 편 보고 크게 충격을 받았다. 또, 육식에 관한 자료를 읽으며 잡식 인간으로서 식생활을 새삼 돌아보기도 했다. 그즈음 남편이 육식을 줄이고 되도록 채식을 하자는 강한 의지를 비쳤고, 사춘기에 접어든 딸아이도 한참 다이어트와 피부미용에 관심을 두던 시기라 큰 어려움 없이 식단에 변화를 줄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가족의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완전한 채식을 고집한 것이 아니었는데, 채 한 달도 못돼 남편과 딸은 빈혈을 호소하며 콩과 두부를 비롯한 식물성 단백질에 거부감을 나타냈다. 포만감이 부족하다느니, 골다공증에 걸리기 쉬운 중년에게 동물성 단백질이 필요하다느니 하면서 애초에 주장이 무색하게 은근하고 끈기 있게 잡식으로 복귀를 주장했다. 더구나 술을 좋아하는 남편은 공식 혹은 비공식적인 회식이 잦았고, 메뉴는 고기 종류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니 융통성 있게 채식을 고집하려 해도 선택의 폭이 제한되어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았다.
이런 우리 가족의 고민은 영화에서 황윤 감독과 남편 영준, 아들 도영이 겪는 문제와 비슷했다. 구제역이 전국을 휩쓸 무렵, 숨이 붙어있는 돼지가 집단 도살처분 되는 뉴스를 보던 감독은 마트나 정육점, 식당에서만 보던 죽은 돼지가 아니라 살아있는 돼지를 찾아 나선다. 비위생적인 공장식 농장에서 비육돈으로 자라는 돼지와 상대적으로 환경이 좋은 산골농장에서 보살핌(?)을 받으며 비육돈으로 성장하는 돼지가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또, 대조적인 돼지 사육 영상과 감독의 어린 아들 도영이 교차하는 장면은 ‘생명’으로서 돼지(혹은 동물)과 인간을 나란히 놓고 생각하게 한다. 눈이 날리는 겨울, 밖으로 나갈 수 없어 베란다 창에 매달려 있는 도영과 좁은 칸막이 사육장에 갇힌 돼지의 모습을 잊을 수 없다. 갇힌 건 매한가지지만, 도영은 눈이 그치면 나갈 수 있지만 돼지는 도축장으로 가는 날 감금에서 해방된다.
공장식 농장과 농장 주인이 돼지 생태를 고려해 사육하는 산골 농장, 부리가 잘린 채 날개도 펼 수 없는 좁은 닭장이 다닥다닥 붙은 양계장에서 암컷의 공통적인 운명은 쓸모가 다할 때까지 계속 새끼를 배고 낳고 젖 떼면 다시 새끼를 배는 일의 반복이었다. 영화 말미에 산골 농장 주인은 돼지를 울타리가 있는 밀밭에 풀어놓았다. 그러나 축사 안의 암컷 돼지는 금방 나은 새끼를 보듬느라 밀밭으로 나갈 수 없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불편했던 점이 바로 이런 ‘암컷으로 태어난 비애’였다.
딸아이와 함께 읽은 미래 소설 『기억 전달자』에는 인간 암컷의 운명이 등장한다. 아이를 낳기 좋은 몸을 가진 여자는 건강한 아이를 낳을 수 있는 일정한 나이까지 임산과 출산을 반복한다. 농장의 돼지처럼 인공수정을 통해서 잉태하고, 역할을 마친 아기 낳는 여자는 안락사당한다. 그렇게 태어난 아기는 수유와 보육만 하는 여자에 의해 길러지고 선택된 가정에서 선택된 부모, 형제와 함께 자란다. 만들어진 상품처럼 가족 관계가 형성된다. 끔찍하기 그지없는 디스토피아다. 2014년 불임 부부를 위해 미국의 코넬 대학에서 인공자궁을 연구 중이란 소식이 보도되었다. 영화 <매트릭스>에는 인공 지능에서 태어나자마자 인공 자궁에 갇혀 생활하는 인류가 나오는데 인공자궁이 개발된다면 영화 속 장면으로 그치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정자와 난자도 상품으로 거래되고 인신도 암거래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기억 전달자』와 <매트릭스>의 이야기는 폭력적인 현실에서 ‘가만히 있으면’ 상상은 현실이 된다고 말한다.
감독은 채식 아니면 육식처럼 무엇을 먹을 것이냐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먹는 음식, 이를테면 돈가스 같은 것이 어디서 왔는가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비록 가공된 형태로 우리 식탁에 놓이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그것 역시 한 생명이었다. ‘동물의 권리’를 운운하면 지나치다 여길지 모르겠으나 근대 이후 인간은 지나치게 인간 중심적이었다. 상위 포식자로서 인간이 그물처럼 연결된 타자를 망각한다면 인간의 운명은 기대보다 일찍 끝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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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잡식가족의 딜레마' 의 한 장면. [사진=다음 영화 정보] | | |
돼지 한 마리에서 시작된 감독의 카메라는 잡식 생활을 벗어날 수 없다면, 좀 더 윤리적인 생산방식으로 사육된 상품을 선택하는 것이 어떠냐는 질문을 던지며 영화를 맺으려 한다. 그러나 비교적 돼지를 생태적으로 사육하는 농장 주인은 감독에게 마지막 선물로 농장에서 길러 도축한 돼지고기를 선물한다.
영화는 마치 우리 가족이 채식 생활로 전환한 후 겪게 되는 선택지가 좁은 상황에서 ‘선택’을 해야 하는 딜레마로 돌아온 듯했다. 잡식 가족의 딜레마는 비슷비슷한 상품이 모양과 디자인, 이름만 바꿔서 ‘다양한 상품’으로 둔갑하는 시장에서 늘 겪게 되는 상황이다. 생산이 소비를 주도하는 시장에서 자유로운 선택은 허울 좋은 명분일 뿐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을까, 영화가 우리에게 주는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