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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5년06월23일 13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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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정의’를 주창한 최초의 아나키스트: 윌리엄 고드윈①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자의 절대자유-아나키즘](9)

채형복(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europia@knu.ac.kr

‘최초의 아나키스트(the first anarchist)’ 혹은 ‘철학적 아나키즘의 아버지(the father of philosophical anarchism)’로 불리는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은 1756년 3월 3일 노스케임브리지셔의 중심지 위즈비치에서 존 고드윈(John Godwin)과 안나 헐(Anna Hull) 사이에서 13남매 중 일곱 번째로 태어났다.

▲윌리엄 고드윈 [사진=http://www.gothic.stir.ac.uk/]

고드윈의 할아버지와 아버지는 영국 성공회와 성공회의 신앙조례를 거부했던 비국교도(非國敎徒)의 성직자(목사)였다. 그의 아버지 존은 아들에게 엄격하였으나 어머니 안나는 다정다감한 여성이었다. 고드윈은 어릴 때부터 신체적으로는 허약했으나 신앙적으로나 지적으로 상당히 조숙했다. 그런 이유로 고드윈의 부모는 아들이 11살이 되던 해 독립교회파 목사인 사무엘 뉴튼(Namuel Newton)의 문하생으로 보낸다. 뉴튼 목사는 로버트 샌더먼(Robert Sandeman, 1718~1771) 장로의 가르침을 추종하던 칼뱅주의 종파의 일원이었다. 샌더먼의 가르침을 따르던 이들을 샌더먼파(the Sandeman)로 불렀는데, 고드윈의 정신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샌더먼은 18세기의 가장 극단적인 칼뱅주의자였다. 교회에 의한 지배의 정당성을 부인한 그는 신앙에 따르는 인간은 국가와 아무런 관계도 없다고 주장하였다. 자신의 주장에 따라 그는 임명된 목사가 한 사람도 없는 독립적인 집회조직을 가지고 있었다. 샌더먼은 이성을 아주 강조했다. 구원의 은혜를 받으려면 단지 선행이나 믿음만이 아니라 진리를 인식하는 이성, 즉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는 이해력이 있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또한, 그는 재산 공유를 바람직한 이상으로 믿었다. 남는 것은 이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분배해야 하며, 화폐를 저축하는 것을 죄악이라고 가르쳤다.

그의 가르침에 따라 샌더먼파는 인류평등과 인민주권주의를 지향했으며, 합의에 근거한 다수결의 원리를 거부하고 종파 내에서 신분의 구별을 모두 폐지했다. 그 추종자들은 사람은 누구나 똑같이 구원을 받거나 단죄를 받는다고 주장했다(윌리엄 고드윈, 19쪽; Anarchy Space, [아나키즘] 영국의 아나키스트 고드윈). 

17세가 되던 때 고드윈은 샌더먼파를 떠나 흑스톤(Hoxtom)의 비국교도 학교에 입학했다. 26세 되던 해인 1782년 성직자 후보생 신분으로 스토마켓(Stowmarket)에 있을 때 돌바크(Paul-Henri Dietrich, baron D'Holbach, 1723~1789), 엘베시우스(Claude-Adrien Hélbetius, 1715~1771), 루소(Jean-Jacques Rousseau) 등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저서를 읽고 무신론을 받아들인다. 그들의 사상은 고드윈의 칼뱅주의 가치와 신념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그 이듬해인 1983년 결국 그는 스스로 성직자가 되기에는 부적합하다고 판단하고, 런던으로 가서 작가로서 생계를 유지하기로 한다.

1789년 프랑스대혁명이 일어났고, 고드윈은 깊은 인상을 받는다. 그는 혁명에 반대한 애드먼드 버크의 《프랑스혁명에 관한 고찰》에 대한 반론으로 1793년 대표적 저서인《정치적 정의와 그것이 일반 미덕과 행복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고찰(An Enquiry Concerning Political Justice and Its Influence on General Virtue and Happiness)》(이하, 《정치적 정의》)을 썼다. 이 책은 출간되자마자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다. 시기적으로도 이 책은 영국이 프랑스 혁명정부에 대해 전쟁을 선포한 지 불과 두 주 후에 출간되었고, 그 내용도 상당히 혁명적이었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의 취지와 내용은 당시 열악한 노동환경과 경제난에 처해있던 런던의 노동자와 영국의 농민들에게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이에 대해 고드윈 자신도, 이 책은 “정부는 그 본질상 지성의 진보를 방해하는 특성을 지닌다”는 전제 아래 기술되었다고 밝히고 있다.

고드윈은 그의 저술과 사상뿐 아니라 가족들로 인해서도 유명세를 탔다. 1791년 그는 첫 번째 아내가 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Mary Wollstoncraft)를 만나 1797년 결혼했다. 그녀는 최초의 여성해방론자이자 유명한 작가였다. 그러나 그녀는 뒷날 시인 셀리(Percy Bysshe Shelley)의 아내이자 소설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1818)을 쓴 딸 메리(Mary Godwin)을 낳던 중 죽고 말았다. 1803년 고드윈은 메리 제인 클레어먼트(Mary Jane Clairmount)와 재혼한다. 1814년 딸 메리는 셀리와 함께 프랑스로 몰래 도망하여 결혼하였다.

메리의 도망과 재혼 이후 고드윈의 삶은 그리 순탄하지도 행복하지도 못했다. 여러 권의 책을 저술했으나《정치적 정의》만큼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하였고, 늘어난 가족을 부양하느라 경제적으로 늘 어려움에 허덕여야 했다. 1836년 4월 7일 고드윈은 80세 되던 해 런던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언에 따라 고드윈은 울스턴크래프트 옆에 나란히 묻혔다.

결혼제도를 반대하고 독립적인 생활을 강조했던 아나키스트 고드윈도 결국 생전의 첫사랑의 품이 그리웠던 것일까? 아니면 생전에 못다 이룬 정치적 투쟁을 죽어서도 둘이 함께 이어나가고 싶었던 것일까? 그의 사위이자 유명한 시인 셀리가 쓴 <사랑의 철학(Love's Philosophy)>의 마지막 구절은 고드윈 내외의 애절한 사랑을 노래한 것처럼 들린다.

“그대가 내게 입 맞추지 않으면, 그 모든 입맞춤이 무슨 소용 있으리?”*

1793년 고드윈은《정치적 정의》을 출간하면서 어느 날 갑자기 혜성처럼 영국 사회의 정치사상가로 떠올랐다. 윌리엄 헤즐릿(William Hazlitt, 1778~1830)은 “그는 명예의 창공에 떠 있는 태양처럼 환히 빛났다. 그보다 더 많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더 많은 존경을 받고, 더 많이 탐구된 인물은 아무도 없었다. 자유와 진리와 정의가 대화의 주제로 떠오르는 곳마다 그의 이름이 거론되었다. ... 우리 시대의 그 어떤 저작도 《정치적 정의》보다 국내 사상계에 더 큰 영향력을 미친 작품은 없었다”고 논평했다(윌리엄 고드윈, 11쪽에서 재인용). 고드윈에 대한 헤즐릿의 평가를 정확하게 이해하기 위해서는 18세기 영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의 현상에 대한 검토가 선결되어야 한다.  

M. Beer에 의하면, 18세기 후반은 “특수한 측면에서 영국 역사상 혹은 일반적 측면에서 인류 역사상 영원히 기억해야 할 시대”이다. 영국에서 시작된 산업혁명에 기반을 둔 기술 혁명으로 새로운 힘을 얻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은 전통적인 기술과 수공업에 기반한 독점권을 무너뜨리고 지배적인 지배체제를 확립했다. 농업국이던 영국은 ‘세계의 공장’이 되었다. 농촌의 전통생활방식은 쇠퇴하고, 신흥공업도시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인구는 급증하고, 새로운 생산방식은 막대한 부를 축적하였다.

이러한 사회변동으로 인하여 전통적인 권위는 위협받았으며, 자유주의사상이 새롭게 등장하였다. 이 과정에서 1789년에 일어난 프랑스대혁명은 당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사상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비록 혁명이 성공했다고 할지라도 파리 코뮌(1871.3.185.28)까지 프랑스 사회는 여러 정치적 격변을 거쳐야 했다. 프랑스의 국내 상황에 따라 유럽 각국의 정치와 사상계도 요동을 쳤다.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의 유럽 사회의 특징을 요약하면, 정치사상면에서는 자연법에서 공리주의로 전환되었고, 경제면에서는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이 점증하였으며, 아나키즘과 공산주의 유물론에 입각한 재산권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D. Fleisher의 표현에 따르면, “오래된 모든 것은 사라져야 할 것으로 간주되고, 인류의 새로운 출발을 꿈꾼 시대”였다. 이 시대를 살다간 ‘최초의 아나키스트’ 고드윈의 정치사상을 그의 주저(主著)《정치적 정의》를 중심으로 살펴본다.

18세기 후반 당시 도덕적 가치에 대한 프랑스학파의 태도는 “선은 쾌락이고, 그 본질은 효용”이라는 상대주의 및 주관주의적 경향을 띠고 있다. 고드윈도 쾌락이 가지는 절대적 가치를 인정한다.

“도덕과 정치가 정의해야 할 참된 주제는 쾌락 또는 행복이다. 가장 중요한 일차적 쾌락은 감각을 통한 쾌락이다. 이 밖에도 인간은 지성의 쾌락, 동정심의 쾌락, 자기만족의 쾌락과 같은 이차적인 쾌락에 민감하다. 이차적인 쾌락은 일차적인 쾌락보다 더 정교하다. 인간의 가장 바람직한 상태는 이 모든 쾌락의 원천에 접근해 아무런 방해 없이 다양하게 행복을 획득하는 데 있다. 이런 상태가 문명이 고도로 발달한 상태이다.”(윌리엄 고드윈, 85쪽.)

그러나 고드윈은 ‘선은 쾌락‘이라는 그 절대적 가치와 ’쾌락의 본질은 효용‘이라는 공리주의에서 벗어나 인간의 자유의지와 이성을 강조한다.

고드윈은 “지성이 도덕원리를 인식함에 있어 의지의 자유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은 온당치 못하다”고 비판한다. ‘의지의 자유’는 ‘자유의지’와 구별된다. 전자는 “아무런 동기 없이 오직 자유만을 기준으로 행동함”으로서 “변덕스럽고 무절제한 행동을 일삼는” ‘도덕적이지 않은 이성’이다. 반면, 후자는 “인간론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로서 “도덕적 활력의 토대로 도덕적 열정을 자극하고, 크건 작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의도적인 노력을 주관할 뿐 아니라 나와 다른 사람이 인간의 행복을 증진시키거나 방해하는 행동을 할 때 그것을 열렬히 인정하거나 거부하는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윌리엄 고드윈, 95쪽). 요컨대 전자가 ‘오직 자유만을 기준으로 행동하는 이성’이라면, 후자는 ‘도덕(적) 이성’이다.

고드윈은 사회를 “인간의 가장 바람직한 존재양식”으로 본다. 그 사회의 한 형태로서 국가(혹은 정부)가 해야 하는 역할의 본질은 “가장 바람직한 인간의 상태”, 즉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요인을 최소화하면서 사회적인 안전”을 확보하는 것이다. 그 ‘바람직한 사회’는 ‘정의’를 지향해야 하고, 정의는 “쾌락(또는 행복)의 총화를 생산해 내는 원리”다. 그러므로 사회의 상황을 개선하려면 이성의 발전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윌리엄 고드윈, 84~88쪽). 이것이 고드윈의 개인의 자유의지와 이성에 바탕을 둔 도덕철학의 기본 내용이다. 
 
따라서 고드윈에게 있어 정치학은 본질적으로 도덕학의 일부이다. 이러한 시각은 고드윈의 독자적인 사상이 아니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뉴튼의 성공에 힘입어 그 당시의 사상가들은 정치와 도덕을 과학적 원리에 따라 설명하고, 그 의미를 부여하고자 노력하였다. 고드윈이 정치와 도덕을 판단하는 과학적 기준으로 삼은 것이 바로 ‘이성’이다. “인간은 이성적인 존재다. 그 점에서 인간은 자연의 다른 피조물과 본질적으로 다르다”라는 말은 ‘이성적 존재’, 즉 ‘이성인’으로서 인간에 대한 고드윈의 무한한 신뢰를 적절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어서 고드윈은 ‘이성인’으로서 인간의 완전가능성(완전성)에 대한 담론으로 나아간다. 이에 대해 그는, “인간은 완전해질 수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영속적인 진보를 꾀할 수 있다”(윌리엄 고드윈, 105쪽)며 인간의 발전가능성에 대한 강한 믿음을 피력한다. 이성에 대한 그의 신뢰는 곧 인간의 완전가능성에 대한 신념을 뜻한다. 고드윈은 말하기를, 인간의 완전가능성이란 인간 스스로 이성을 통해 진리를 인식할 수 있고, 그에 따라 모든 오류와 악덕을 극복하고 현재 자신의 상태를 부단히 개선함으로써 완전한 상태에 접근할 수 있는 믿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성은 고드윈의 완전가능성 이론의 토대이다. 고드윈은 이를 통해 이상사회의 도래를 낙관함으로써 역사적 진보와 창조의 바탕이 된다고 본다(김은석, 68쪽).

고드윈이 추구하는 이상사회는 ‘이성인의 집합’이자 ‘자유사회’이다. 그 사회는 “어떠한 외적 강제나 통제도 없고, 그러면서도 질서와 조화를 유지하면서 모든 사람의 행복과 번영이 보장된 사회”다. 이러한 사회가 가능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은 어떠한 강압적인 제약 없이도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을 만큼 이성적이기 때문이다.(김은석, 69쪽)

고드윈이 제시한 이상사회의 모델은 조너선 스위프트(Jonathan Swift)의 소설 《걸리버여행기(The Gulliver’s Travels)》의 ‘마인국(馬人國 the Country of the Houyhnhnms)’이다. 이 나라는 ‘마인’ 휘늠(Houyhnhnm), 즉 ‘인간의 이성을 갖춘 말’인 ‘이성마(理性馬)'에 의해 통치된다. 스위프트는 휘늠과 그들의 지배를 받는 ’인류를 타락시키고 온갖 죄악에 물든‘ 야수인 ’야후(Yahoo)‘라 불리는 인간 형상의 동물을 통해 이상사회를 보여준다.

그러나 두 사람이 꿈꾸는 이상사회는 본질적 차이점이 있다. 스위프트가 인간이 이러한 이상사회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이성적인 존재가 아니라고 보았지만, 고드윈은 이성을 가진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사회라고 본다(김은석, 69쪽). 고드윈의 이러한 낙관적 혹은 진보적 사회관은 그가 가지고 있는 도덕철학에서 나온다. 결국. 그에게 있어 사회 전체의 선과 개인의 선은 다르지 않다. 오히려 양자는 일치한다. 다만, 인간의 쾌락과 행복의 원천으로서 선이 실현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독립이 보장되어야 한다. “독립은 인간의 타고난 권리다. 우리는 독립을 모든 형태의 소유보다 더욱 소중히 여겨야 한다.”는 그의 말에서 자유사회의 원천은 독립된 개인이라는 그의 강한 확신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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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ve's Philosophy(사랑의 철학)/ 퍼시 비슈 셀리

The fountains mingle with the river
   And the rivers with the ocean,
The winds of heaven mix for ever
   With a sweet emotion;
Nothing in the world is single;
   All things by a law divine
In one spirit meet and mingle.
   Why not I with thine?—

See the mountains kiss high heaven
   And the waves clasp one another;
No sister-flower would be forgiven
   If it disdained its brother;
And the sunlight clasps the earth
   And the moonbeams kiss the sea:
What is all this sweet work worth
   If thou kiss not me?
 

샘물은 강물과 섞이고,
    강물은 바다와 섞이며,
하늘의 바람은 영원히
    감미로운 정서와 섞인다.
세상에 어느 것도 혼자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신의 섭리에 따라
서로의 영혼 만나 섞이기 마련
    어찌 내가 그대와 섞이지 않으리?—
 
높은 하늘과 입 맞추는 산을 보라!
    파도는 파도끼리 껴안는다.
누이가 그 오빠를 무시한다면
    꽃다운 누이도 용서받지 못하리.
햇빛은 대지를 껴안고
    달빛은 바다와 입 맞춘다.
하지만 그대가 내게 입 맞추지 않으면
    그 모든 입맞춤이 무슨 소용있으리?

http://www.econote.co.kr/main/view_post.asp?post_seq_no=23606에서 일부 수정
▲채형복 교수

 

채형복(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europia@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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