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스 때문에 온 나라가 난리이다. 초동대응에 실패한 정부의 무능과 태만으로 메르스는 더욱 확장되고 있다. 정부는 자기 권력 지키는 일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다. 통탄하는 바다. 사람 많이 모이는 장소는 한산하다. 집회나 공연도 대개 취소됐다. 6월 6일(토), 밀양송전탑반대움막 강제행정집행 일 년 기념집회도 연기했다. 수구기독교인들은 성소수자들의 퀴어축제를 못하게 하려고 메르스가 발생한 것이라는 기상천외한 해석을 한다. 복잡한 지하철에서 기침하면 홍해바다 갈라지듯이 길이 열린다고 한다. 어느 결혼식장에서는 신랑 신부는 물론이고 하객들도 모두 마스크를 쓰고 기념촬영을 해서 쓴웃음을 짓게 했다.
메르스 쓰나미 현상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의문이다. 왜 이토록 메르스에만 매달리는 것인가? 메르스가 아니더라도 독감으로 매년 수천 명 이상이 목숨을 잃는다. 얼마 전에 탄저균이 한국 정부 모르게 오산 미군기지에 배달된 사실이 알려졌다. 한 매체는 탄저균 유출로 22명이 치료 중이라고 밝혔다. 또 지구에서 가장 강력한 독소라는 보툴리눔까지 한국에 통보 없이 들어와 실험한 게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보툴리눔은 탄저균보다 독성이 10만 배 강한 물질이다. 탄저균이나 보툴리눔은 모두 세균전 무기이다. 메르스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가공할만한 바이러스이다. 이 바이러스들이 우리나라 공중에 살포되었다고 상상해보라. 끔찍한 일이다. 그런데도 주한미군은 탄저균 배달에 대해 말뿐인 사과만 했다. 중요한 사실확인요청은 숨기기에 급급하고, 이 나라 정부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다. 정말 건드려야 할 것은 건드리지 못하고 주변적인 것으로 법석을 떠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또 수명이 다 된 핵발전소를 연장해서 사고라도 나면, 겉잡을 수 없는 재앙이 온 나라를 덮친다. 하지만 대중은 핵발전소에 대한 경각심은 아예 없다. 사리분별을 선도해야 할 언론도 메르스 소식으로만 도배한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권력은 뒤에서 조용히 웃을 것이다. 자기들의 모든 음모와 실정을 매번 이렇게 덮어주니 말이다.
소문은 누가 내는가? 권력이 낸다. 국정원 댓글공작사건을 보라. 이렇게 권력이 만드는 소문에 대중은 너무도 쉽게 현혹당한다. 소문이란 게 이렇다. 사실도 진실도 아니지만 그것만 한 사실이나 진실이 없는 것처럼 사람들을 사로잡고 거기에 장단 맞추게 한다.
오늘 성경말씀에도 소문이 등장한다.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이다. 예수의 가족들은 이 소문을 듣고서 예수를 붙잡으러 나섰다. 그런데 예수가 미쳤다는 소문은 누가 만들어 냈나? 단서는 22절이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율법학자들'이다. 그들은 두 가지 소문을 만들어서 예수를 모함한다. 첫 번째 모함은 "예수가 바알세불이 들렸다"고. 바알세불은 악한 귀신이다. 두 번째 모함은 예수께서 귀신들을 쫓아낸 사실을 악의적으로 선전한다. "그가 귀신의 두목의 힘을 빌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
어째서 율법사들은 예수님을 모함하는 건가? 마가 2:1-3:6에 나오는 예수의 치유이적활동 때문이다. 예루살렘 권력은 갈릴리에서 온 소식에 몹시 기분이 상했다. 이적과 더불어 민중이 예수를 열렬히 따르는 것에 대해 시기질투가 폭발했다. 민중들이 예수를 얼마나 따랐는가는 20절이 말한다. "예수께서 집에 들어가시니, 무리가 다시 모여들어서, 예수 일행은 음식을 먹을 겨를도 없었다"
그 결과 지배세력은 이런 작당을 한다. "그러자 바리새파 사람들은 바깥에 나가서, 곧바로 헤롯 당원들과 함께 예수를 없앨 모의를 하였다"(마가 3:6) 이때부터 권력의 음모가 시작했다. 소문은 바로 여기서 시작했다. 보통사람들의 시기질투도 문제지만 권력이 품는 시기질투는 상식을 마비시키고 권력의 공공성을 잊게 한다. 오직 악한 본능만 작동하므로 너무나 무서운 일이다.
이들의 모함에 대해 예수는 그들이 부인할 수 없을, 완벽한 논리로 물리친다. "사탄이 어떻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느냐? 한 나라나 한 가정이 갈라져서 서로 싸우면 어떻게 되겠느냐?" 버틸 수 없고 끝장이 나고 말 것이라고 했다.
예수는 이어서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한다. 바로 '성령모독죄'이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들이 짓는 모든 죄와 그들이 하는 어떤 비방도 용서를 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지 못하고, 영원한 죄에 매인다."
성령모독죄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역사를 부인하는 행위이다. 예수가 중풍병자를 일으킨 것은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역사이다.(마가 2:1-12) 또 한쪽 손이 오그라든 사람 손이 펴진 것도 하나님의 역사이다.(마가 3:1-5) 아무리 예수가 미울지라도 인정할 것은 인정해야 한다. 그런데 율법사들은 하나님의 역사를 인정하면 예수도 인정하는 셈이 되는 게 싫었다. 오직 권력에 종속돼서 예수의 일이 자기들에게 이로운지 불리한지 만을 계산한다.
지금 우리 사회 여러 현안이 이해관계에 따라서만 재단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건전한 상식도 도리도 진실도 진영논리에 묻혀 버린다. 그런 사회 끝이 어떻게 되겠는가? 예루살렘의 권력들도 예수의 치유이적행위가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 일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되레 예수의 행위를 깎아내리는 일에만 골몰했다.
바리새들이 성령을 인정한다면 어떤 태도여야 하나? 그 사람이 오랜 병마에서 벗어난 일 자체에 대해 기뻐해야 한다. 그러나 바리새들은 중풍병자가 일어났을 때, 병자를 일으킨 하나님을 찬미하기는커녕, 예수가 하신 말씀을 시비 삼아서 논쟁을 벌였다. 바로 "네 죄가 용서받았다"는 예수의 사죄선언에 대해서. 한쪽 손이 오그라진 사람 손이 펴졌을 때도 그 장애가 정상이 된 것을 기뻐하기보다는 그 날이 안식일인 점을 꼬투리 잡았다.
그러므로 성령모독죄는 오직 권력의 이익에만 파묻혀서 하나님의 역사까지 부인하는 죄이다. 권력 지키기에만 혈안이 돼서 사람에 대한 연민도 없고 병자에 대한 아픔도 없는 비정함이다. 흔히 말하는 피도 눈물도 없음이다. 우리는 권력자에게서 인간애로서 흘리는 눈물보다는 계산된 눈물만 보고 있다. 그런 정서는 악령이다. 꽉 막힌 영이다. 성령은 부드럽고 따뜻하다. 관계의 영이고 소통의 영이다.
어떡하면 거룩한 영을 모독하지 않고 살 수 있을까? 우리가 성령 안에 있으면 된다. 하나님의 현존을 의식하는 게 관건이다. 우리 안에 있는 본성, 또 본성을 이용하는 악한 영을 경계해야 한다. 자기감정에 너무 빠지지 마라. 대신에 하나님께 자신을 여는 것이 성령 안에 있는 것이다.
오늘 성경말씀에서 예수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위치에 주목해 보자. 주위에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과 예수 가족이 있다. 그런데 따르는 사람들은 예수와 같은 공간에 있다. 예수와 동선이 같다. 그들은 예수와 늘 같은 행보를 하므로 누구보다도 예수를 잘 알고 있다. 이들은 예수가 병자를 고쳐주실 때도, 이적행위를 행하실 때도, 말씀하실 때도 모든 것을 목격한 사람들이다. 그래서 '예수가 미쳤다, 악한 귀신이 들렸다'는 소문이 돌아도 끄떡하지 않는다. 헛소문인 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 가족들의 위치는 어디인가? 밖이다. 가족들은 예수와 행보를 함께하지 않는다. 예수 경험이 없다. 계속 바깥에서 서성일 뿐이다. 예수에 대해 아는 게 없다. 단지 아는 것은 소문뿐이다. 자기들 확신이 없으니 권력자들이 유포시키는 소문에 쉽게 움직인다. 그래서 자꾸 예수의 공적활동을 무시하고 그를 끄집어내려고 한다. 집에 데려가려고 애를 쓴다. 물색없이 자꾸 헛짓한다. 급기야 예수로부터 뼈아픈 지적을 받는다. "누가 내 어머니이며, 내 형제들이냐?" 예수는 어머니와 형제를 보면서,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사람이 곧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다"라고 했다. 제발 혈연에 매달려서 하나님의 역사를 훼방하지 말라는 경종이다.
권력의 작당이 도를 넘었다. 바알세불 체제를 구축하여, 입만 열면 부르대는 법과 제도로, 또는 마피아와 카르텔로, 그것도 안 되면 폭력으로, 그들만의 세상을 독점해 나간다. 예수는 하나님나라 운동으로 바알세불 체제를 무너뜨렸다. 그들만의 독점세상을 타파하고 민중도 사람답게 사는 세상이 되도록 자신을 던졌다. 예수의 투신을 거룩한 영이 감싸 주었고, 민중이 화답했다. 권력은 시기질투로 예수를 모함하고 죽임으로 거룩한 영까지 모독, 훼방하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범했다. 권력에 부화뇌동 당하지 말라. 평등세상을 가장 크게 대적하는 악한 영이다. 대신에 거룩한 영을 구하라. 그대에게 영생이 있기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