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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5년06월03일 11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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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백목사의 예수읽기(72)
요한 3:1-15 "성령으로 살아라"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5월 11일부터 28일까지 필리핀에 다녀왔다. 이번 필리핀 여행에서 두 가지가 마음에 남았다. 하나는 빈민들의 삶이다. 선교사로 일하는 동료 목사의 안내로 두 군데 빈민동네를 방문했다. 한 곳은 나보타스 탄사지역이고, 또 한 곳은 타워빌 가야가야마을이다. 탄사동네는 사람들이 땅 대신 바다 위에 ‘판자촌’을 만들어 살고 있었다. 바다 위에 집을 짓고 사니 수상가옥을 연상하겠지만, 그런 낭만과는 아무 상관 없다. 쓰레기와 사람이 함께 살고 있구나 싶을 정도로 바닥에는 바닷물 대신 생활쓰레기로 넘쳐났다. 위생환경이 참으로 안 좋았다.

▲쓰레기더미 위에서 사는 탄사마을 출처: 박선호 선교사

정부도 지방자치단체도 주민들도 넘쳐나는 쓰레기는 물론이고 주거환경에 대해서는 아예 문제의식이 없는 것 같았다. 다닥다닥 붙은 판잣집은 매우 좁은 공간에서 여러 식구가 살고 있고, 그런 집들 사이에 한 사람 겨우 지나다닐 수 있는 길바닥은 나무로 대충 엮어놔서 헛디디지 않도록 잘 보고 걸어야 했다. 우리 같으면 단 하루도 못 살 것 같은 그런 곳에서도 사람들은 익숙하게 살고 있었다. 

타워빌 가야가야마을은 2013년 태풍 하이옌으로 집을 잃은 사람들을 위해서 정부가 새로운 이주단지를 만들어 준 곳이다. 그런데 전기, 상하수도나 화장실은 없고, 그냥 겉모양만 집이다. 그래도 엄마들은 위험한 바다 위의 집보다는 훨씬 안전해서 행복하다고 한다.
백이십 년 전 조선 정부도 나 몰라라 하던 한국 민중이 미국선교사들에게 끝없이 받으면서 자생하고 지금처럼 성장하였듯이, 내 친구 선교사들은 필리핀 정부도 나 몰라라 하는 그곳 민중에게 끝없이 주는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주체적으로 설 날을 고대하면서.
반면에 마닐라 시내에 있는 글로벌시티는 정말 화려했다. 웅장한 복합건물이나 고급제품을 파는 상가는 그곳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경제력을 말해줬다. 그곳만 보면 필리핀이 가난한 나라가 아니다. 우리보다 더 잘 사는 것 같았다. 정부의 행정력이 누구를 중심에 두는가가 단적으로 보였다. 

두 번째로 기억에 남는 것은 국립박물관이다. 나는 이 국립박물관의 모습이 오늘날 필리핀이라고 생각한다. 전에는 상원의원 의사당이었다는 건물은 근사하지만, 그 속에 전시물은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400년을 스페인 식민지로 지낸 탓인지는 몰라도, 한마디로 자기 역사가 없었다. 보통 박물관에는 유물이나 유적이 있기 마련인데, 필리핀 국립박물관은 그 공간을 화가의 그림으로 채웠다. 그래서 전시실 이름이 갤러리다. 갤러리 일 번부터 십몇 번까지. 박물관은 그 나라의 정신과 역사의 집합체인데, 화가의 그림으로 전시물을 대신 할 수밖에 없는 사정만큼, 이 나라의 정신세계가 빈약한 것인가 하는 생각을 했다. 민중들이 삶의 현실을 저항하거나 극복하려고 하기보다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것은 이 나라의 오랜 전통이며 깊이 뿌리내린 정서라고 한다.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 호세리잘. 국립박물관의 전시물은 이처럼 온통 그림이다.
갤러리 그림

이처럼 사람이나 나라가 자기를 변화시키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허물이나 모순이 심하더라도 사람들은 그런 현실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한다. 이처럼 육의 차원에서도 우리 인식의 판단이나 수준이 보잘것없을진대, 영을 이야기하는 것은 사람에게는 거의 불가능한 영역이다. 그런 우리에게 영의 말씀인 성경이 있다는 것,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말씀을 접한다는 것은, 사람의 차원을 끌어 올리는 큰 은총이다.  

오늘 성경 말씀은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이다. 유명한 중생(重生, 거듭남)의 말씀이 나온다. 예수께서 말씀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아멘 아멘'을 두 번 말씀했다.(3, 5절) 예수는 강조 어법으로 아멘 아멘을 반복하므로 이 중요한 말씀에 귀 기울일 것을 촉구한다.

'거듭나다', '위로부터 나다'는 그리스도인을 결정짓는 핵심적인 잣대이다. 남의 나라에 입국하려면 반드시 비자승인이 나야 하듯이, 하늘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거듭나는 일이 필수 자격이다.

하지만 거듭난다는 것을 이해하는 건 쉽지 않다. 니고데모는 예수의 말씀을 문자적으로 이해했다. "사람이 늙었는데, 그가 어떻게 태어날 수 있겠습니까?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갔다가 태어날 수야 없지 않습니까?"(4절) 우리는 니고데모의 질문이 참 어리석다고 생각하지만, 우리 역시 하나님 말씀을 일차원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일차원적 이해의 대부분은 자기중심으로 사물을 판단하는 것이다. 자기중심적 세계관이다. 자기중심적 세계관에는 자신의 경험, 의식, 윤리, 종교, 공부 등이 있다. 니고데모가 다시 태어나야 한다는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듯이, 자기중심적 세계관에 빠진 사람들은 자신의 판단에 의심 없는 확신을 가진다. 오류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아예 생각을 안 한다. 자기 판단과 어긋나는 일을 당하면 견디지를 못한다. 뜻이 다른 상대를 배제한다. 게다가 그 사람이 힘을 가진 사람이면, 그 배제는 상대에게 물리적으로 폭력적으로 자기 뜻을 강요하거나 억누르는 상태로 발전한다. 특히 종교적인 확신은 신의 이름으로 사람을 해치는 지경에 이르러도 그 행위를 정당화하므로 그 폐단이 심각하다. 우리는 그 폐단을 한국교회의 근본주의에서 또 이슬람국가의 원리주의에서 목도하고 있다. 뒤늦게라도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면 다행일 텐데, 이 부류들은 회개도 않는다.  

▲니고데모와 예수. 출처: 위키피디아

오늘 말씀 1절에서 니고데모를 소개하는데, 그는 바리새파이고 산헤드린 멤버이다. 특히 요한복음에서 바리새파는 요한공동체를 탄압하는 적대세력이다. 그 적대세력의 핵심멤버가 예수를 찾아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나? 누구든지 진리를 접촉하는 데 있어서 육적인 조건에는 구애받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다.

예수는 거듭남을 바람이라고 했다.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분다. 너는 그 소리는 듣지만,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는 모른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은 다 이와 같다"(8절) 히브리어 '루하'나 헬라어 '퓨네우마'는 바람과 영이라는 이중의미가 있다. 즉 이 말씀은 언어유희이다. 바람의 속성을 종잡을 수 없듯이 영도 그렇다는 뜻이다.
하지만 니고데모는 예수의 말씀을 도통 이해하지 못한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9절) 속내를 단적으로 토로하는 것을 볼 때, 니고데모는 솔직담백한 것 같다. 진리를 만나기에 좋은 성격이다.

뒤에 니고데모는 예수의 원군이 된다. 예수가 죽으신 후, 니고데모가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와서 장례를 돕는다.(요한 19:39) 로마의 위세에 눌려서 아무도 예수의 시신을 건사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것은 매우 용감한 행동이다.

하지만 이건 나중 일이고 지금은 예수께 면박당한다. "너는 이스라엘의 선생이면서, 이런 것도 알지 못하느냐?"(10절) 예수가 니고데모를 나무란 이유는 새 영이 사람을 새롭게 한다는 말씀이 이미 구약에 있기 때문이다.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일치된 마음을 주고, 새로운 영을 그들 속에 넣어주겠다. 내가 그들의 몸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없애고, 살같이 부드러운 마음을 주겠다"(에스겔 11:19)

사람을 새롭게 하는 일은 영의 일이고 그 새로운 변화는 마음의 변화에서 오는 것임을 말해준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난다는 말도 사람의 마음이 새롭게 변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 마음을 새롭게 바꾸는 일은 사람의 의지나 이성의 작용으로 되는 일이 아니고 전적으로 위로부터 난다. 위로부터 난다는 말씀은 하나님으로부터 난다는 말씀이다.

흔히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고들 말한다. 당최 변하지 않는 사람을 볼 때, 특히 이 말이 실감 난다. 인간 본성을 볼 때, 자신에게는 답이 없다. 그러나 이게 전부이면 어떻게 사람 세계에 희망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지극히 감사하게도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셨다.

교회는 지금 성령강림절을 지내고 있다. 성령강림절은 하나님의 영이 구약 요엘서의 예언대로 공개적으로 전면적으로 무차별적으로 임한 일(행전 2장)을 기념하는 절기이다. 하나님이 선택한 특별한 사람에게만 내리셨던 영이 만민에게 평등하게 임한 일대 사건이다.

이 영의 강림이 내 사건이 되려면 새로 태어나야 한다. 그렇게 되도록 하나님의 영이 우리에게 임했다. 마음이 새롭게 되어 변화를 받아야 한다. 그래야 사람세계에 희망을 가질 수 있다. 자신의 본성을 알아서 절실히 하나님의 영에 의지하는 사람은 변화한다. 달라질 수 있다. 하나님께 기댈 뿐이다. 그 영을 매사에 감지하기를 바랄 뿐이다. 특히 그 영은 고요하고 평안하다. 그 때 당신은 하나님의 현존 속에 있다. 변화의 시작이다.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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