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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5년05월12일 12시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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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아나키즘의 유형
영원히 길들여지지 않는 자의 절대자유-아나키즘(4)

채형복(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uropia@knu.ac.kr

“아나키즘의 운명은 헤밍웨이의 『바다와 노인』에서 노인이 먼바다에서 잡은 큰 물고기의 운명과도 유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노인이 물고기를 끌고 포구까지 오는 길에 그 큰 물고기는 상어 등 다른 물고기들에게 뜯겨 배가 정박했을 때는 뼈대만 앙상하게 남아 있었다. 아나키즘이 지니고 있는 풍부한 환상과 이상 그리고 예언은 세월이 흐르면서 여러 곳에서 여러 사람이 가져가고 아나키즘은 뼈대만 남는다. 그리고 아나키즘은 다시 지하로 돌아간다. 아나키즘은 양초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누군가 그 양초에 불을 밝히면 타 없어지고, 새로운 양초로 다시 나타난다.” (방영준, 6~7쪽)

이 말은, 아나키즘의 이념적 뿌리는 개별 또는 특정 사상가의 신념과 사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유를 찾는 역사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어 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아나키즘은 아나키즘을 낳고 사라진다. 하지만 그 사라진 자리에서 다시 새로운 아나키즘으로 태어나 자라고, 다시 사라지기를 무한 반복한다.

“아나키즘은 하나의 정치운동이나 철학 또는 예술적 감각의 측면에서 정의될 수 없다. 아나키즘은 그 모든 것이며, 그 이상이다.”(숀 쉬한, 15쪽)

이 말은 끊임없이 변용하고, 진보하는 아나키즘의 속성을 적절하게 대변하고 있다.

이러한 성질을 가지는 아나키즘이 하나의 근대정치사상으로 발전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아나키즘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의 프루동의 저작을 통해서이다. 프루동은 그의 대표적 저서인『소유란 무엇인가』(1840)에서 “나는 아나키스트(je suis anarchiste.)”라고 선언하면서 아나키이론(아나키즘)을 전개하고 있다. 하지만 프루동이 제시한 아나키즘은 곧바로 격렬한 비판에 직면하였다.

프루동 사상을 비판하는 선봉에는 사회주의자인 칼 맑스가 있었다. 1842년 프루동이 『경제적 모순의 체계, 혹은 빈곤의 철학(Système des contradictions économiques ou Philosophie de la misère)』(1842)을 출간하자 맑스는 『철학의 빈곤(Misère de la philosophie)』(1847)을 통해 프루동을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하지만 프루동 사상은 유럽의 여러 지역으로 급속하게 확산되었고, 지지자들도 늘어났다. 그중에서도 러시아의 미하일 바쿠닌은 “프루동은 우리 모두의 스승”(하승우, 42쪽)이라며 ‘프루동의 정신적 후계자’로 자처하였다.

▲미하일 바쿠닌. 출처: 위키피디아


1864년 9월 28일 창설된 유럽의 노동자와 사회주의자들의 세계 최초의 정치단체인 ‘제1인터내셔널(First International)’(공식 명칭: 국제노동자협회(Association international des travailleurs: AIT))은 프롤레타리아트 독재를 주장하는 ‘권위파’인 ‘맑스주의자’와 권위의 집중을 비판하고, 아나키즘을 주장하는 ‘반권위파’인 ‘프루동주의자’가 극단적으로 대립하고, 분화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1868년, 바쿠닌은 AIT에 가입하였으며, 그가 운영하던 사회민주주의동맹(Alliance démocratique sociale: ADS)의 회원들도 AIT에 통합되었다. 1868년 12월 22일 바쿠닌은 맑스에게 다음과 같이 편지를 썼다: “나는 이제 인터내셔널의 회원으로서, 당신을 그 주요 설립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한다. 존경하는 친구여, 따라서 나는 당신의 신봉자가 될 것이며, 또한 그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 이와 같은 우호적인 분위기 속에서 AIT 총평의회는 ADS의 가입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AIT와 ADS는 사상적 측면은 물론 AIT의 운영면에서도 심각하게 충돌하고 대립하였다. 특히 ADS의 강령이 포함하고 있는 “국가 철폐, 소유권 폐지, 평등주의, 무신론” 등과 같은 아나키즘의 핵심적인 주제를 둘러싸고 맑스주의자와 바쿠닌을 지지하는 아나키스트의 사상적 차이는 도저히 극복될 수 없었다. 이에 맑스는 바쿠닌과 그 지지자들을 AIT에서 제명시켜버렸다. 이에 반발한 바쿠닌은 아나키즘에 의거한 인터내셔널을 창립하였다. 그 결과 1876년 7월 15일 AIT는 필라델피아회의에서 해산되고 말았다(장 프레포지에, 99쪽).

바쿠닌과 맑스가 가진 사상의 차이는 바쿠닌이 베른에서 열린 ‘평화자유동맹’의 회의 석상에서 행한 연설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다.

“나는 공산주의를 싫어한다. 그것은 자유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나는 자유없이는 인간적이라는 것을 생각할 수 없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다. 공산주의는 사회의 모든 세력을 집중하여 국가에 흡수시키려 한다. 그것은 불가피하게 재산을 국가로 집중시킨다. 이와는 반대로 나는 국가의 폐지를 바란다. 국가의 권위와 보호라는 원리가 근절되기를 원한다. 국가는 도덕과 문명을 구실로 한층 인간을 노예화하고, 억압하고, 착취하고, 약탈하였다. 나는 사회조직․집산조직이라는 측에 서 있다. 자유로운 연합에 의해 저변으로부터 형성된 사회재산이라는 개념에 찬성한다.“ (玉川信明, 85쪽.)

아나키스트들이 제1인터내셔널에 참가하여 활동하는 과정에서 아나키즘은 프루동의 영향을 받은 상호부조주의(mutuellisme)에서 집산주의(collectivisme)와 생디칼리슴(syndicalisme)으로 이행하게 된다(장 프레포지에, 96쪽). 그런데 문제는 바쿠닌의 축출과 AIT의 해산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즉, AIT 해산 이후 아나키즘은 아주 복잡다단하게 전개되었다. 일부 아나키스트들은 폭탄투척 등 무력투쟁마저 서슴지 않아 노동자대중에게 비판과 배척을 받았음은 물론, 정치권력에 의한 지속적이고도 집요한 탄압이 이어졌다. 아나키스트들이 프롤레타리아 운동의 중심적인 위치를 되찾기 위해서는 이러한 소수 행동과 분파주의로부터 하루 빨리 탈피하는 것이 급선무였다(장 프레포지에, 104쪽).

이와 같은 혼란한 상황에서 아나키즘은 사회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하기도 했으며, 또 많은 비판과 탄압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고 러시아 등 유럽에서는 아나키즘이 강하게 뿌리내리고, 사회 변혁을 이끌어내는 성과를 내기도 하였다. 문제는 아나키즘의 확산과 더불어 그와 관련된 사상의 분파(分派)와 용어가 너무 다양하여 일반대중으로부터 아나키즘이 오히려 멀어지게 되었다는 점이다. 특히 아나키즘에 관한 용어의 다양성은 일반대중이 아나키즘을 이해하는데 어려운 과제 중의 하나이다. 이에 대해 존 몰리뉴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아나키즘은 형태가 다양하다. 조직 자체를 반대하는 완전한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이 있는가 하면, 소규모 아나키스트 조직도 많다. 계급과 무관하게 사람들을 신뢰하는 아나키스트도 있지만, 노동계급을 주목하는 공산주의 아나키스트도 있다. 마흐노(러시아 혁명 직후 벌어진 내전 당시 농민운동 지도자) 전통을 따르는 농민 아나키즘도 있고, 노동조합을 무시하는 아나키즘도 있지만, 노동조합에 기반을 둔 아나키즘적 신디컬리즘, 즉 아나코신디컬리즘도 있다. 혁명가인 아나키스트, 테러리스트인 아나키스트, 평화주의자인 아나키스트, 환경주의자인 아나키스트도 있다. 이런 분류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 아나키스트도 있고, 이 온갖 형태를 나름대로 독특하게 결합한 아나키스트도 있다.”(존 몰리뉴, 21쪽.)

몰리뉴는 아나키즘의 다양한 유형에 대해 비판하면서 다음 네 가지를 아나키즘이 가진 가장 중요한 공통점으로 보고, 맑스주의적 관점에서 아나키즘을 비판하고 있다.

첫째, 혁명적 국가를 포함해 모든 형태의 국가를 거부한다.
둘째, 혁명적 지도를 포함해 모든 형태의 지도를 거부한다.
셋째, 혁명적 정당을 포함해 모든 정당을 거부한다.
넷째, 개인주의 경향이다.(존 몰리뉴, 22쪽.)

아나키즘을 어떻게 이해하고, 그 유형을 어떻게 정리할 것인가는, 결국 아나키즘이 지향하는 본질적 가치, 즉 “개인의 자주성과 공동체라는 문제를 어떻게 결합시키느냐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이에 대해 방영준은 이렇게 밝히고 있다.

“맑스 사상은 온갖 영양제를 섞어 만든 드링크제 같다. 반면, 아나키스트의 사상은 심산산골의 옹달샘에서 나오는 시원한 물과 같은 맛이었다.” (방영준, 5쪽.)

재미있는 것은, 맑스주의적 입장에서 아나키즘을 비판하는 몰리뉴의 입장과 정반대로 방영준은 오히려 아나키즘의 입장에서 맑스주의를 “온갖 영양제를 섞어 만든 드링크제 같다.”고 비판하고 있다. 어쩌면 우리는 자신에게 친숙한 가치 관념이나 사상이 아니면 모두 ‘독이 든 사과’로 간주하는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여하튼 ‘절대적 교의’를 부정하는 아나키즘의 특성상 그것을 하나의 이론이나 유형으로 도식화하여 정리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실제 여러 문헌과 인터넷 사이트를 조사한 결과, 개인이나 사이트 마다 그 분류를 달리하고 있다(<표 1> 참고).

<표 1>에서 보는 것처럼, 아나키즘의 유형은 상당히 다양하게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아나키즘의 생성과 발전 과정을 살펴보면, 크게 네 가지, 즉 ① 상호주의, ②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③ 사회주의적 아나키즘, ④ 현대적 아나키즘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상호주의(Mutualism)는 프랑스의 프루동이 주창한 것으로 진정한 자유로운 노동시장이 있다면, 반드시 노동에 따른 정당한 대가가 지급되어야 한다는 사상에 바탕하고 있다. 프루동의 상호주의는 그의 주저(主著)『소유란 무엇인가』에 잘 나타나 있다. 프루동은 아나키에 의거한 ‘권위는 질서의 적’이며, ‘소유와 경쟁은 전제적’이라고 간주하였다. 그에게 있어 ‘소유(권)이란 정의롭지 못한 것’이다. 즉, 소유(권)은 어떠한 경우라 할지라도 개인의 자유를 제한할 수 없으며, 소유를 토대로 하는 어떤 통치도, 어떤 공적 경제도, 어떤 행정도 가능하지 않다. 프루동은, “소유는 타도되었다!”고 선언하면서 공유와 소유의 종합이라 할 수 있는 ‘제3의 사회형태’를 ‘자유’로 제시하였다. 프루동의 상호주의는 그의 말년에 쓴 저서 『연방의 원리 및 혁명당의 재구성 필요성에 관하여(Du Principe fédératif et de la nécessité de reconstituer le Parti de la Révolution)』을 통하여 연합주의(federalism)로 발전하게 되는데, 러시아의 미하일 바쿠닌에게 깊은 영향을 미쳤다. 상호주의는 바쿠닌과 그 추종자들에 의해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으로 변용․발전하였다.

둘째, 개인주의적 아나키즘(Individualist anarchism/Individual anarchism/Individualistic Anarchism)은 어떠한 결사체로부터도 독립된 개인의 자유에 중점을 두는 사상이다. 즉, 모든 집단․사회․전통․이념 등의 일체의 체제(시스템)에 의한 결정으로부터 벗어난 ‘개인의 의사’를 강조한다. 이런 의미에서 자유주의적 아나키즘으로 부르기도 하는데, 이에 대응하는 사상이 사회주의적 아나키즘이다. 이 사상의 선구자로는 헤겔좌파 출신인 막스 슈티르너(Max Stirner)를 들 수 있다. 그는 헤겔의 ‘절대정신’에 입각하여 개인으로서 ‘자기’의 절대자유를 주장하였다. 그 외 윌리엄 고드윈(William Godwin), 벤자민 터커(Benjamin R. Tucker), 조지아 워렌(Josiah Warren), 로버트 폴 볼프(Robert Paul Wolff) 등이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을 주장한 사상가로 분류된다. 이들은 자신의 주장에 따라 다시 자본주의적 아나키스트(Anarcho-capitalist), 최소요구주의자(Minimalist), 리버테리언(Libertarian)*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방영준, 24쪽).

셋째, 사회주의적 아나키즘(Socialist anarchism)은 프루동의 연합주의에 의거하여 바쿠닌 등에 의하여 발전한 사상이다. 특히 프루동이 주장한 지배(혹은 통치)와 권위에 더하여 자본에 대항하여 노동자들의 결속과 결합을 강조한다. 이들은 사유재산의 폐지와 생산수단의 공유(http://ko.wikipedia.org/아나키즘)뿐 아니라 모든 형태의 임금제도를 공격한다. 즉, ‘그 능력에 따라 각자에게’를 ‘그 필요에 따라 각자에게’로라는 슬로건으로 내걸고, 각자의 욕망에 따라 누구라도 공동의 창고에서 필요한 것을 가질 수 있도록 하는 코뮌주의 사상을 부활시켰다(방영준, 25쪽). 바쿠닌의 집산주의(Collectivism)와 상호부조론(Mutual Aid), 그리고 아나르코 코뮤니즘(Anarcho-communism)(공동체적 아나키즘)과 아나르코 생디칼리즘(Anarcho-syndicalism)(조합주의적 아나키즘) 등이 이에 포함된다(방영준, 24쪽).

넷째, 현대적 아나키즘(Modern anarchism)이다. 위의 세 가지 유형의 아나키즘이 전통적 아나키즘이라면, 현대적 아나키즘은 평화․생태․환경․인권․민족․채식주의․페미니즘․반자본주의 등의 형태로 분화되어 나타나고 있다. 혹자는 ‘톨스토이주의’라 불리는 평화주의적 아나키즘(방영준, 25~26쪽)과 생태아나키즘(박홍규, 104~106)을 현대적 아나키즘의 주류적 흐름이라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나키즘의 형성과 발전 과정에서 보듯이 과거보다 훨씬 복잡다단한 구조와 형태를 띠고 있는 현대사회를 하나로 규정짓는 아나키즘의 흐름을 상정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인터넷이 등장한 이후 소위 ‘네트워크사회’와 결부되어 전개되고 있는 아나키즘의 새로운 운동 형태에 대해서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대해 숀 쉬한은,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대표되고 있는 새로운 아나키즘은 폭력성을 띤 반란이라는 전통적 관념을 뒤엎는 ‘우회(détournement)’의 의제를 발전시키고 있다.”고 쓰고 있다. 그가 주장하는 ‘우회 의제’의 발전과 관련하여, 최근 아나키스트들은 “특유의 항의 방식과 상징적인 몸짓을 통해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새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다(숀 쉬한, 31쪽). 그 예로, 멕시코 사파티스타와 1996년 이탈리아의 ‘야 바스타(Ya Basta)’를 들 수 있는데, 한 마디로 ‘폭력의 옷을 벗고 축제로!’라는 슬로건이 현대적 아나키즘이 취하는 새로운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숀 쉬한, 26쪽). 현대적 아나키즘이 가지는 의미와 과제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 리버테리언(Libertarian)은 리버테리어니즘(Libertarianism)을 신봉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리버테리어니즘이라는 용어는 19세기 말경부터 아나키즘과 함께 사용되기 시작하여 20세기 중반까지는 양자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 이를테면, ‘개인주의적 리버테리언(Individualist Libertarianism)’은 ‘개인주의적 아나키즘’이나 ‘자유시장 아나키즘(Free-market anarchism)’, ‘리버테리언 아나키즘(Libertarian anarchism)’ 등과 함께, 또 사회적 공정(公正)을 중시하는 ‘리버테리언 사회주의(Libertarian socialism)’나 ‘사회주의적 아나키즘(Social(or Socialist) anarchism)’ 등이 사용되었다(http://ja.wikipedia.org/アナキズム). 
국가나 정부에 의한 지배나 통치에서 벗어난 자유를 추구하는 점에서 양자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목적을 지향하고 있다. 이 시각은 개인주의적 아나키즘, 특히 자유시장 아나키즘과는 그 주장하는 내용에 있어 공통점이 많다. 그러나 사회주의 측면이 강하게 요구되는 사회주의적 아나키즘과는 많은 면에서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이유 등에서 최근에는 아나키즘의 한 유형이 아니라 독자적인 사상으로 파악하는 견해가 적지 않다(http://ja.wikipedia.org/リバタリアニズム).

▲채형복 교수


<참고문헌>

•방영준, 『저항과 희망, 아나키즘』, 이학사, 2006.
•숀 쉬한(조준상 옮김), 『우리 시대의 아나키즘』, 필맥, 2003.
•玉川信明(이은순 옮김), 『아나키즘』, 오월, 1991.
•장 프레포지에(이소희․이지선․김지은 옮김), 『아나키즘의 역사』, 이룸, 2003.
•존 몰리뉴(이승민 옮김), 『아나키즘: 마르크스주의적 비판』, 책갈피, 2013.
•하승우, 『아나키즘』, 책세상, 2008.

 

채형복(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uropia@k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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