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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5년04월22일 10시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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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백목사의 예수읽기(70)
누가 24:36-48 "부활, 참사람으로의 초대"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사람마다 아픔이 있다. 아픔이 없으면 좋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아픔은 인체로 말하자면 일종의 면역력이다. 인체에 면역력이 없으면 큰일이듯이, 인생에도 아픔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아픔은 인간을 더욱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아픔은 잘 다스려야 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내 소견에는 아주 가까운 사람과 그 아픔을 나누거나, 뜻이 같은 사람과 고통을 함께 겪는 것이다.
 
세월호 희생자 부모들은 자신들을 덮친 이 아픔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을까? 참사로 생긴 수많은 대책위가 정부의 무책임과 이간질에 지쳐 떨어져서 분열되고 흐지부지되는 일은 숱하다. 대구지하철화재참사 대책위도 그런 경우이다. 그런데 세월호 가족대책위의 결속력은 대단하다. 자식을 잃은 공통의 아픔이 이분들을 더욱 단단히 묶어주는 것 같다. 4월 18일 광화문집회는 최근 집회 중, 가장 뜨거웠다. 시민들이 경찰  벽을 돌파할 정도로 투쟁이 격렬했다. 유가족들도 많이 연행되었다. 유가족들이 맨 앞에서 시민들 투쟁을 선도했다. 그분들은 이제 투사가 됐다. 부모들은 그렇게 투쟁하므로 마음의 병을 다스리는 것 같다.

또 다행스러운 일은 민주시민의 연대이다. 16일 대백 앞에서 열린 세월호참사 일주기 추모집회에서 희생자 부모가 말씀하기를, 수많은 민주시민들이 연대해 주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고 감사해 했다. 민주시민 여러분이 끝까지 연대해주면 우리도 진상규명과 안전한 나라를 만들 때까지 끝까지 가겠다고 말했다.

오늘 성경 말씀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의 최종목적이 어디에 있는가를 말한다. 그것은 제자들을 증인으로 삼아서 세상에 전파하는데 있다. 예수의 부활은 제자들이 증인으로 서는데 어떤 작용을 하였는지 보자.

제자들이 모여 있는데, 예수께서 몸소 그들 가운데 들어서서 말씀하신다. "너희에게 평화가 있어라" 그런데 제자들은 놀라고 무서움에 사로잡힌다. 유령을 보고 있는 줄로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아직 부활의 실재를 제대로 알지 못하는 고로 예수의 등장을 유령의 등장으로 오인한다.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을 깨우치기 위해 예수는 당신이 살과 뼈가 있는 살아 있는 몸임을 두 가지로 증명한다. 하나는 십자가에 못 박힌 자국인, 손과 발을 보여준다. 둘은 그들이 보는 앞에서 음식을 잡수신다.

예수가 제자들에게 보여주신, 매우 평범해 보이는 이 행동은 어떤 뜻이 있나? 예수의 손과 발은 예수가 겪은 가장 깊은 상처이다. 보여주기 싫은 아픔이다. 그런데 예수는 당신의 가장 깊은 상처를 숨기지 않고 제자들에게 보여주신다. 게다가 만져 보라고 한다.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만져 보라고까지 하는 것은 자신을 완전히 개방해야 가능한 일이다. 더군다나 이 분은 메시아이다. 메시아가 자기의 약점을 개방한다는 것은 일반적인 메시아 개념과 충돌한다. 기독교의 메시아가 영웅적 메시아와 얼마나 다른지가 이런 세밀한 부분에서도 나타난다.

어째서 예수는 당신의 가장 깊은 상처까지 개방하는 것인가? 예수는 제자들과 동일시를 이루기 위해 자신을 먼저 개방했다. 자신의 가장 깊은 상처를 보여줄 때, 보여주는 사람에게도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도 같은 정서를 요구한다. "아, 이 사람이 나를 믿고 자기의 가장 깊은 상처를 보여 주는구나!" 진짜 형제애는 좋은 것만 나누지 않는다. 아픈 것도 함께 나누어야 진짜 형제이다. 그런 정서를 서로 공유할 때 깊은 유대감이 생기고 일치를 이룰 수 있다.

▲The Incredulity of Saint Thomas, oil on canvas, Rijksmuseum, Amsterdam. 출처: 위키피디아

제자들은 예수가 스스럼없이 손과 발을 보여주었을 때, 비로소 부활을 실감했다. 죽은 줄 알았던 스승이 다시 살아난 것을 진짜로 알았다. 그들은 너무나 기뻤다. 이제 이들에게 부활은 그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진실이 됐다. 자기들이 겪은 생생한 경험이 있기에 이제는 흔들릴 수가 없다.

부활의 실재는 개인들의 삶에 어떤 작용을 할까? 사람은 태생적으로 안전하려는 욕망, 인정받으려는 욕망, 통제하려는 욕망을 갖고 있다. 이 세 가지 욕망에서 거짓자아가 양성된다. 인간사의 모든 동기와 행위는 이 세 가지 욕망을 부추기고 충족시키는 데 있다고 봐도 된다. 그러나 예수의 죽음과 부활로 함축된 하나님의 현존을 갈망하고, 내가 하나님 현존 안에 있다는 깊은 신뢰가 있으면 나를 안전/인정/통제라는 핵심적인 욕망에서 건져준다. 기독교의 구원은 이생에서 잘 되고 저승에서 천당살이를 하는 게 아니다. 참 구원은 바로 우리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원죄로 일컬어지는 거짓자아의 온상에서 벗어나서 참 자아, 참 사람으로 입문하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바로 이런 실재를 깨우쳐 주는 원천이다. 제자들이 예수의 부활실재를 강하게 경험하였듯이, 침묵 속에 계신 하나님의 현존으로 여러분을 초대한다. 

이것이 예수가 친히 제자들에게 부활현현하신 이유이다. 그저 제자들만 좋으라고 나타나신 것이 아니다. 부활현현을 깨달은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를 모든 사람에게 전파해야 한다. 그리고 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누가 24:48)는 말씀을 따라, 증인의 사명을 훌륭하게 감당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예수의 복음말씀을 전하는 자리마다, 설교의 끝에는 항상 '우리는 모두 이 일의 증인'이라고 증언했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증언했나? 예수가 하신 활동, 즉 생명을 불러일으키는 일들을 증언했다. 증인들은 '예수가 죽었다가 살아나셨다. 그러므로 모든 죽음의 상황이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도록 하셨다. 우리는 빛이 어둠을 이긴 것을 믿고 부활의 힘으로 살기만 하면 된다'는 것을 가는 곳마다 증언했다. 예수가 상대한 사람들은 지배체제가 짜놓은 굴레에서 꼼짝없이 묶여 살아야 하는 민중들이었다. 예수는 그들에게 절대희망을 심어주었다. 제자들도 민중들에게 예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와 용서를 전했다. 민중들은 예수의 복음으로 사람사는 이유를 찾았다. 그래서 죽은 것과 진배없는 비인간적인 상황에서 다시 일어섰다. 이것이 예수구원역사의 마지막 단계이다. 이 증언이 제대로 사람들에게 선포될 때만이, 그리스도 예수의 구원행위는 완성된다.

이를 위해 증인들은 예수의 복음전파 활동을 조용히 이루어갔다. 로비와 뇌물로 만든 인맥 같은 불의한 수단을 취하지 않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민중들의 삶에 자신을 맞추면서 형제애를 이루었다. 함께 기뻐하고 함께 아파하며 예수공동체를 조직했다. 비인간적인 상황에 처한 사람들을 참된 인간화의 세상인 예수공동체에 편입시켰다. 예수공동체만이 그들이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살이 공간이었다.

우리는 어떻게 증인의 사명을 수행할 수 있나? 제자들이 증인이 된 것은 억지나 강요가 아니다. 넘치는 자발성이다. 너무 기뻐서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분이 주시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용서는 인생을 완전 새롭게 하는 감격스러운 은총이었다. 그러니 회개하라는 말도 꾸짖는 말이 아니라, 그 은총이 너무 좋으니 돌이켜서 그 안에 들어오라는 겸손한 초대이다.
법정에서 증인이 선서할 때 하는 말, '숨김과 보탬 없이 있는 그대로 말하겠다'는 문구는 예수증인에게도 유효하다. 그들의 부활 경험은 개인의 한계를 넘는 것이고, 자기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므로 굳이 지어내거나 무슨 결단을 할 필요가 없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예수의 사랑과 현존 안에 머무는 것이었다.

삶에 지친 이들이여, 저마다 만물의 중심이 돼서 제 잘난 맛에 살고, 편 가르고, 판단하고 내치기에 서로서로 상처받는 이들이여, 인생살이의 냉혹함, 허무함, 배신감에 몸을 떨어야 하는 고단한 이들이여, 예수의 부활은 이 죽음 같은 세상을 이기고 참 세상을 이루었다는 선언이다. 그러니 상심과 좌절이 뒤엉킨 인생사에 주저앉지 말고 다시 일어나자. 인생을 무한긍정하자. 기필코 참사람으로 살자. 미움보다 용서가 더 인간적이다. 서로 사랑하자. 

▲출처: 참세상

백창욱(대구새민족교회) baek080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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