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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4년11월04일 18시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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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저개발의 추억] ② 캄보디아의 비극
캄보디아와 인도차이나 반도, 그리고 군사주권을 포기한 한국

이득재 기자 baxtin@daum.net

[편집자 주] 캄보디아를 방문한 기자는 강가에서 빨래하고 펌프질해대며 우물에서 물을 긷던 모습에서 1970년대 한국을 발견한다. 도시가 메가시티로 변하는 동안 농촌이 공동화된 오늘날 한국 사회에 캄보디아가 주는 교훈을 총 4차례 연재한다.

인도차이나 반도의 비극, 캄보디아의 비극이 이 정도인지 몰랐다. 한반도의 비극만 비극이 아니었다는 사실은 캄보디아를 가보고 알게 됐다. 사원의 도시로 알려진 앙코르(도시) 와트(사원)에 밀려드는 세계 곳곳의 관광객이 들여다 본 캄보디아의 속살은 비극 그 자체였다. 애초에 대영박물관이니 루브르박물관이니 관광에 영 취미가 없던 필자는 마누라가 끌고 간 여행길에 그저 몸을 맡기고 말았다. 앙코르와트야 인간을 신의 경지로 세우기 위한 권력의 도구에 불과한 것 아니던가.

미국이 베트콩을 잡겠다고 캄보디아 양민을 학살한 사건은 미국에 의해 은폐되고 있었다. 캄보디아 역사의 진실은 이렇다.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루주”, “200만 명 학살”, “공산주의 체제 건설한답시고”, 캄보디아는 우리에게 이렇게 각인되어 있다. 지금도 종북이니 좌빨이니 하며 공산당, 공산주의에 대한 왜곡된 관념이 깊이 뿌리내리고 있는 한국 사회에서 캄보디아가 이렇게 알려진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크메르루주의 200만 양민학살은 진 라코처가 쓴 <이어 제로>(Year Zero)라는 책의 주장인데, 미국에는 성경으로 환영받는, 캄보디아에 대한 공식 자료로 쓰이고 있다. 역사적 사실은 더 검증되어야 할 일이지만, 이 책의 문제는 킬링필드의 또 다른 진실을 은폐하는데 이바지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도 지뢰를 밟아 다리를 잃는 희생자가 계속 나올 정도로 캄보디아에는 천 만개 이상의 지뢰가 존재한다. 미국이 1969~1973년, 캄보디아에 B-52 전략폭격기를 동원해 무려 53만 9129톤에 이르는 각종 폭탄을 투하해 말 그대로 캄보디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으니 그럴 만하다. 세계적인 석학으로 오도된 헨리 키신저의 주도로 이루어진 미국의 폭격은 미국이 일본에 퍼부은 16만 톤을 3배나 웃도는 엄청난 양이었다. 영화 <킬링필드>는 이별과 만남이라는 통속적인 플롯을 통해 크메르루주에 대한 저주를 양산하고, 미국이 저지른 만행을 은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 아니었던가.

그러나 캄보디아의 이 비극과 마주쳐 무엇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앙코르 와트 관광지마다 원 달러를 외치며 모자에 스카프를 파는 맨발의 소년·소녀를 마주치거나 사원 주변에서 역사도 현실도 삶도 인지하지 못한 채 검은 속살을 그대로 노출해 천진난만하게 노는 아이들로 넘쳐나는 관광지, 세계 문화유산이라며 앙코르 와트를 방문해 달러나 뿌려대는 관광객들, 이 비극 속에 내던져진 이토록 비루한 삶은 또 무엇이란 말인가?

시내를 조금만 벗어나면 밀림이 나오고 끝 모를 정도로 펼쳐진 논, 건기와 우기가 6개월씩 반복되는 나라, 북쪽 지역을 제외하면 산이라고는 아예 없는 나라, 공장도 그 흔한 양계장도 없이 자연에 헐벗은 채로 노출된 캄보디아의 삶은 캄보디아의 비극적인 역사를 살짝 비켜가는 듯했다. 캄보디아엔 이런 격언이 있다. “미래를 두려워하지 말고 과거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 그러나 과거의 슬픔을 누가 씻어준단 말인가? 군대와 경찰이 나라를 장악하고 있고 야당과 시민 노동자의 권력이 전무한 나라에서 어떻게 미래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가? 캄보디아의 화폐인 1000리엘이 250원이고, 이 돈으로는 생수 한 병 겨우 살 수 있는 나라가 달러를 기축통화로 강제한 미국의 환율전쟁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단 말인가.

경상도만한 크기의 거대한 호수 시엠 립으로 가는 도중에 캄보디아의 삶은 밀림 속 풍경을 따라 남루하게 펼쳐져 있었다. 건기가 되면 물고기를 쓸어 담을 정도라는 호수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눈에 들어오는 지평선 따라 캄보디아인의 삶과 역사가 눈에 밟혔다. 부산 출신의 가이드는 연신 땀을 닦으며 시내가 개발되고 땅값이 얼마가 올랐다는 얘기를 구수한 입담으로 들려주었지만, 필자의 눈에는 도시와 농촌의 천양지차 같은 경제적인 삶의 격차가 느껴졌다.

도시의 삶이라 해도 그 남루함이 도를 지나쳤으니 밀림 속의 농촌의 삶이야 언급할 필요가 없다. 캄보디아인들은 각자 드넓은 논마다 우기에 대비해 지면에서 높이 웅덩이를 만들어 생존하는 법을 터득한 개미들처럼 논에서 밀림 속에서 물 위에서 어디든지 공간만 있으면 살 수 있었다. 살아 있다기보다 살아가지고 있었다. 이모작 삼모작도 가능한 넓디넓은 농촌이 개발에 밀려 도시 변두리로 전락하고 대자본들과 열강이 자신들의 이윤을 위해 각축을 벌이게 될 캄보디아의 미래가 저주로 끝장을 볼 생각을 하니 폴 포트가 꿈꿨던 이상적인 농업 국가의 상이 자꾸 눈에 아른거렸다.

오언과 푸리에가 꿈꿨던 공상적 사회주의를 실현할만했건만, 캄보디아의 크메르(캄보디아인) 루주(붉은)가 보여준 정치적 실패는 두고두고 우리가 곱씹을 주제일 듯하다. 이런 생각을 하자면 200만 명 양민학살이라는 반공 이데올로기의 미망에서 벗어나야 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미국 꼭두각시를 했던 론 놀 정권에 봉사한 친미세력을 숙청하는 과정을, 종북 좌빨 마녀사냥에 앞서 철저하게 따져봐야 한다. 1975!1979년 크메르루주 집권기에 과로와 기아로 죽은 사람들이 7~80만 명을 웃돌았다지만, 그것은 미국이 유엔을 비롯한 국제기구들의 대 캄보디아 구호사업을 차단해버린 데에서 비롯했다는 역사적 사실도 잊지 말아야 한다. 양민학살을 크메르루주에게만 책임을 물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두 눈으로 동영상을 보며 캄보디아와 인도차이나 반도, 그리고 군사주권을 포기한 한국 사회를 되돌아보자.

이득재 기자 baxti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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