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의 제8편에서는 현대영어 <
parch>가 한국어 <
볶아~>/<
볶이(-다)>/<
볶여-> 등과 기원적으로 동일한 말임을 살펴보았었다.
음식을 조리하는 이 행위어들은 ‘
불’을 필연적으로 동반하고, 불은 근원적으로 ‘
태양’ 관련어로 추정되는 점에서 {태양}의 뜻인 드라비다어 <
vera> 역시 한국어 <
볶아~>/<
볶이(-다)> 등과 기원적 동일성을 가질 수 있다고 보았으며, {타다․빛나다}의 뜻을 가진 드라비다어 <
uri> 또한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한국어 및 일본어들로 대응이 가능한 것으로 추론되었다.
오늘은 제8편에서 살펴본 주제 <
볶아~>와 밀접한 식용 작물로서의 한국어 <
깨>와 기원적으로 연결되는 수메르어를 소개하려고 한다.
자립적(음절적) 모음 앞에 연구개음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필자의 음운이론에 따라 수메르어 <
ì>를 재구성하면 ㉯줄에 보인 것과 같이 참깨/들깨, 라고 할 때의 현대 한국어 <
깨>로 된다. 물론 본디 존재했던 연구개 자음성질이 약화(탈락)한 경우에는 {기름}의 <
유(油)>라는 어휘로 되었을 것인데, 이와 동일한 음운이론을 적용한 두 번째 칸 ①줄의 <
í>가 ‘
오(五)’ 및 일본어 ‘
고(ご)’로 대응 가능함에서 이러한 음운 접근법이 타당함을 확인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은 의미론적 접근을 해보더라도 여기에 제시한 어휘비교가 틀림없음을 알 수 있다. 즉 ‘
기름’이라고 하면 현대인들은 자동차나 오토바이에 넣는 기름(가솔린)이라든가 보일러에 넣는 난방용 기름(등유) 등을 먼저 떠올리게 마련이지만, 이러한 채굴된 광물자원으로서의 기름(석유)이 등장한지는 지금으로부터 길어야 채 100년 안쪽의 일에 불과하고 그것이 인류사에 처음 등장할 때는 식물에서 채취된 형태였을 것인 점에서 수메르어가 가진 {기름}이라는 어의는 한국어 <
깨>와 매우 밀접하리라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참깨나 들깨를 불에 볶은 다음 이를 압착하여 뽑아낸 식물성 기름이야말로 ‘기름’의 원조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그 의미론적 배경에서 보더라도 <
ì>와 <
깨(참깨, 들깨)>의 기원적 동일성을 짐작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예로부터 들깨기름을 이용해 방바닥을 윤이 나도록 문질러 장판이 닳지 않고 오래 쓸 수 있도록 했다든가, 책을 묶을 때 종이에 들기름이 배도록 해 책을 오래 보존할 수 있도록 했다든가 하는 생활의 지혜를 발휘할 줄 알았던 것도 그만큼 ‘깨’에서 산출된 기름의 유용성 및그 성질에 대해 유구한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었다는 방증이 될 것이다.
㉯줄에 등장하는 ‘기름 덩어리’로서의 <
비계>는 아이누어에도 등장한다. 어휘자료는 강길운 교수님의 책에서 인용하였으며, 연구개음 재구성의 어휘대응은 필자의 것이다.
‘기름’에 관해 이야기하다 보니, 호롱불 아래에서 할머니가 내게 옛날이야기를 도란도란 들려주시던 장면, 그리고 그 곁에서 식구들이 입을 옷을 짓고 계신 어머니의 모습 등이 희미하고 아련히 마음속에 떠오른다.
호롱불은 한지나 실타래로 만든 심지를 호롱 안의 기름에 담군 채 윗부분에 불을 붙여 밝히는 원리로 기능하는 것이다.
이 호롱불 다음에 등장한 것이 유리갓을 씌운 석유등잔(램프)이다. 갓을 씌운 탓에 웬만한 바람으로도 불이 꺼지질 않으니 어두운 마당이나 들녘에서 활동하는 데에 아주 요긴한 물건이 되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