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들에서는 한국어 ‘
바꾸다’와 기원적으로 동일한 것임이 분명한 영어 단어들을 살펴보았었다.
이 글 상자 안에서의 기본 어휘형태
<바꾸->/<
바꿔->는 {주년(週年), 주기(週期)} 등의 뜻을 가진 영어 단어 <
anniversary>에도 포함되어 있음을 네 번째 연재물에서 확인하였다.
이 ‘anniversary’의 {주년(週年), 주기(週期)}라는 어의는 ‘해(연도)’와 같이 구획된 시간적 사이클(cycle) 즉 하나의 시간적 순환(循環)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다음의 주기(사이클)로 ‘바뀌’는 시점을 뜻하는 것으로, 이러한 시간적 순환을 가리키는 말들은 저녁 무렵이면 서쪽으로 사라졌다가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다시 떠오르는 ‘태양(해)’에 기초하고 있을 것으로 제4편에서 추정한 바 있다.
그러한 추정은 지금까지 살펴본 <buy>/<vary> 등의 단어 및 그 한국어 대응 <바꾸(-다)>/<바뀌(-다)>라는 말의 어휘 생성론적 근원이 ‘태양(해)’에 있다는 것으로 된다.
이러한 논리는 필자가 대략 10만 단어에 이르는 각종 다기한 어휘들의 의미적 배경이나 그 의미적 연결고리에 관해 추론한 것에 바탕을 두고 있으므로 앞으로 글을 전개해 나가면서 이에 관해 좀 더 자세히 풀어서 설명해볼 생각이다.
‘바뀌다(바꾸다)’와 동일한 의미맥락인 <갈다>라는 어휘 또한 태양/달과 같은 천체(天體) 관련 어휘일 가능성이 크다고 한 제4편에서의 언급 역시 그러한 관점의 반영으로, 이에 관한 글은 다음의 제6편에서 다루어보기로 하는 대신 오늘은 ‘태양’과 같은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각종 다기(多岐)한 의미들이 물결처럼 퍼져나가는 어휘들의 의미적 확산의 사례 하나를 소개하기로 한다.
그것은 “다리미로 옷을 다리다(대리다 ‘방언’)!”라고 할 때의 한국어 <다려-> 혹은 그 방언형 <대려-‘방’> 및 이와 기원적 동일성 관계에 있는 라틴어 <tero>이다.
라틴어 <tero>는 {문지르다, 마찰시키다}라는 그 뜻에 비추어 ㉮줄의 한국어와 대응하는 어휘로 추정할 수 있다. ‘다림질’이라는 것이 옷감을 마구 문질러 주름을 펴는 동작임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부수다, 타작하다}라는 뜻으로는 ㉯줄에 적은 어휘들과의 기원적 동일성을 생각해볼 수 있다.
<tero>의 한국어와의 관련성은 여기에 그치지 않고, 필자가 주장하는 음운 재구성이론의 핵심인 《연구개음(g․k) 재구성》의 원리를 적용하면 아래의 글 상자에 적은 ㉰㉱㉲㉳ 등과도 부정하기 어려운 관련성을 가지게 된다.
㉰줄의 방언형 ‘달쿠다’는, 어린 시절 얼음을 지칠 때 쓰는 지팡이(폴대) 밑창에 박아 넣기 위해 쇠못 따위를 바윗돌이나 단단한 시멘트 바닥에 마구 문지르고 비비던 일을 떠올리게 한다. 알고 보면 <탁(琢)>이나 <따개>와 기원적으로 같은 말이다!
이처럼 물건을 문지르고 비비는 ‘마찰(摩擦)’ 관련 어휘들은 필자가 보기에 원시 적에 우리네 조상이 나무를 마구 비벼 ‘불’을 지피던 동작에서 시작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위에 적은 <tero> 및 그 한국어 대응들은 아래 글 상자에서와 같은 ‘불’ 관련어로 될 것임이 분명하다!
나무 조각을 문질러 생산할 수 있었던 ‘불’은 따지고 보면 위에서 살펴본 ‘다림질’로서의 <다려>/<대려(‘방언’)>와 의미적으로도 무관치가 않다. 전기 다리미가 나오기 전에는 벌겋게 단 숯불을 쇠-그릇(옛날 다리미)에 담아 광목 천 따위를 다렸었는데, 주름을 펴는 데는 어느 정도의 ‘열(불)’이 필수불가결한 점에서 그러한 것이다.
결국 이번 제5편에서 말하고 싶은 것은 ‘불’을 피우던 그 마찰의 동작에서부터 옷감을 다리는 일 따위로 의미가 확장되었다는 것,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 우리가 사용하는 말들이 점점 양적으로 확대 생산되어나갔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