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재에서는 연구개음(
g․k) 탈락 및 그 재구성 이론을 적용할 경우 한국어 “바꾸다”에서의 <
바꾸(
바꿔)->와 기원적으로 동일한 것임이 분명한 몇 개의 영어 단어를 살펴보았다.
이 내용들 가운데 한국어 <바쳐서>로 대응이 가능한 ㉡줄의 ‘purchase’는, 그 제2음절 [‘ch’a]가 연구개음 /k/의 전향화로 발생한 것일 가능성이 크다는 점에서 이를 적용할 때 그 본래의 어형이 ㉠줄에 적은 <바꿔서>였을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 ㉠㉡의 관계에 내재한 연구개음의 전향화를 적용하면 다음에 소개한 ‘anniversary’라는 다음절 어휘(단어)에도 한국어 <바꾸어(바꿔․바뀌어)>가 포함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연재를 시작하며”에서 간략히 언급했던 것처럼 연구개음 /k/는 구강 앞쪽으로의 이동인 전향화로 인해 /ㅊ, ㅆ, ㅅ, ㅈ/ 곧 ‘ch’, ‘sh’, ‘zh’ 등으로 변하는 성질이 있으므로, 이 단어의 뒷어절 <~ver-sar-y>의 밑줄 친 [sar]에 이를 적용하면 글상자의 ①줄에 나타낸 바의 <바뀌어(바꾸어)>로 소급할 수 있다는 것인데, 이렇게 보면 ‘anniversary’는 전체적으로 ㉢줄과 같은 어휘구성으로 해석되는 것이다.
단어 뜻 {(해마다의) 기념일, 주기(周忌), 주년(週年)}이라는 것은 ‘해(연도)’와 같이 구획된 시간적 사이클(cycle) 즉 하나의 시간적 순환(循環)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다음의 주기(사이클)로 ‘바뀌’는 시점을 뜻하는 것이기에 의미론적으로도 ①과 ㉢의 추정에 무리가 없다 하겠다.
‘
②줄의 일본어 <마쯔리(まつり)> 또한 이러한 점을 뒷받침해주고 있으니 {축제․제사}라는 것은 ‘수메르’의 신년축제에서 보듯이 한 해가 가고 다시 또 한 해가 시작되는 절기(節期)를 성대하게 기념하는 일에서 비롯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고,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늘날에도 여전히 새해 ‘설날’을 가장 큰 명절로 삼고 있다든지 중추절(추석)을 동양에서는 아주 큰 명절로 기념한다든지 하는 것도 모두 ‘anniversary’의 {(해마다의) 기념일․기념제}라는 어의의 원천이 시간/절기의 변화(주기)에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가 아닌가 한다.
②줄의 <마쯔리(まつり)>는, ①줄 [~ver-sar-y]의 원형인 ‘바뀌어’와 동일 계열어인 지난 회에서의 <buy>가 ‘팔다’의 <매(賣)>나 ‘사다’의 <매(買)>로 되는 것과 같은 음운적 원리 즉 p, b와 같은 순음이 비음(콧소리)으로 되는 현상을 적용함이다.
‘anniversary’의 음운적/의미론적 연관을 이와 같이 추정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이 단어의 제1음절 <an->은 아래의 ④⑤와 같이 ‘환’이란 음절과 동계어일 가능성을 또한 짐작케 된다. 즉 태어난 날을 기준으로 60주년(週年)이라는 하나의 시간적 사이클(cycle)이 완성됨을 뜻하는 ‘환갑(회갑)’이라는 말에서의 바로 그 [환]으로서, 시간적 순환(循環)을 가리키는 말들은 저녁 무렵이면 서쪽으로 사라졌다가 다음날 아침이면 어김없이 다시 떠오르는 태양(해)에 기초하고 있을 것이기에 이와 같은 의미변용 내지 의미 확장이 가능했을 것이다.
제1음절 <an->이 ④⑤의 ‘환’과 동계임은 ㉣줄에 적은바 <an->의 연구개음적 원형 ≪(k)an≫을 상정할 수 있고, 이로부터 k → h 변화 즉 연구개음의 기식음화를 또한 상정할 수 있음을 통해 드러난다.
㉣줄의 ≪(k)an≫은 {태양(sun)}을 뜻함과 동시에 태양 1개로 성립하는 {하루(1일)}를 의미하는 마야어 <킨(kin)>과 일맥상통하는데, 시간적 순환 또는 시간 단위를 나타내는 말들의 기초가 태양(해)이라는 점을 이 마야어 <킨(kin)>이 매우 잘 보여주고 있다 아니 할 수 없다.
아마도 부여(夫餘)에서 행한 ‘영고’, 고구려(高句麗)의 ‘동맹’, 동예(東濊)의 ‘무천’과 같은 집단적 제천(祭天) 의식들도 이와 같은 시간적 순환(cycle) 즉 절기(節期)의 변화를 바탕에 둔 의례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두산백과사전에 따르면, 부여의 ‘영고’에 관한 기록은 《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 부여조에 전하며, 추수를 마친 12월에 온 나라의 백성이 동네마다 한데 모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는데, 의식 직전에 신을 맞이하는 ‘맞이굿[迎神祭]’을 벌였다고 하니 이때의 ‘맞이’가 바로 위 두 번째 글상자에서 ③으로 적은 <~맞이>이고 ‘anniversary’의 뒷부분 <~ver-sar-y>인 것이다!
뒷부분 <~ver-sar-y>를 온전히 연구개음(k)으로 모두 환원하면 아래의 ㉣과 같이 되며, 이는 ⑥⑦의 어휘대응을 추정케 만든다.
⑦의 ‘모꼬지’는 “밤도 모든 목거지에 다니노라 피곤하여 돌아가려는도다”라는 이상화 시인의 유명한 「나의 침실로」에 나오는 ‘목거지’가 그것이다 아니다, 라는 논란으로 많이 알려진 어휘이고 16세기 문헌에 나오는 고어형
의 형태분석을 가지고도 논란이 있는 어휘인데, 설명하자면 길어지므로 간단히 필자의 음운관에 따라 정리하면 ②로 적은 현대 일본어 <
마쯔리(まつり)> 및
anniversary의 뒷부분 <~ver-
sar-y>와도 기원적으로 동일한 단어일 것으로 생각된다.
연구개음(k)으로 모두 환원한 ㉣에 의한 변화형태인 ⑥으로부터 ‘
태양’의 뜻임이 분명한 다음의 ⑧을 추정할 수도 있으므로, {(해마다의) 기념일, 주기, 주년} 혹은 {축제․제사}라는 것이 원초적으로 ‘태양’을 기초로 형성된 의미개념임을 짐작할 수 있다.
⑧줄에서의 <복>/<북><벽>은 ‘새벽’ 즉 “새(새로 뜨는) ~ 복/북/벽”으로서 본디 {태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anniversary’의 {기념일, 주기, 주년}이라는 것이 하나의 시간적 순환이 마무리됨과 동시에 다음의 주기(사이클)로 ‘바뀌’는 시점에 관한 어휘인 점에서 이 ‘바뀌다(바꾸다)’와 동일한 뜻을 가진 <갈다>라는 어휘 역시 태양/달과 같은 천체(天體) 관련 어휘가 아닐까, 하는 호기심을 자아낸다.
이러한 의미적 연관성에 대해서는 다음 편에서 다루어보기로 하고, 오늘은 연구개음(g․k) 재구성으로써 이 한국어 <갈다>와 기원적으로 동일한 어휘임을 알 수 있는 유라시아 어휘들을 소개하는데 그친다. 영어 <alter>가 대표적인 단어다.
자립적 모음 앞에 연구개음(g․k)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음운 이론에 대해 독자분들께서도 이제 어느 정도 익숙해지셨으리라 믿어진다. 이 음운 이론에 의할 때 교체의 뜻인 ‘alter’는 ㉤줄에 적은 것처럼 한국어 <갈다>와 본디 동일한 것이다.
이 “갈다”에서의 <갈아->는 다음에 보인 수메르어에서도 확인이 되고 있고, 이 수메르어를 기초로 추정하면 {바꾸다}의 의미인 <교(交)>/<체(替)>/<개(改)>라는 어휘들도 이와 기원적으로 동일한 것들이다.
“나무들이 단풍으로 옷을 갈아입다”라는 표현에서의 ‘갈아’도 이들과 같은 어휘이다!
“쟁기로 논밭을 갈다!”라는 표현에서의 <갈다>는 “연탄불을 갈다”라고 할 때의 ㉤줄 <갈다>와 어형적으로 완전히 일치하며, 그 의미기층 역시 추론적 접근을 해보면 ㉤줄 <갈다> 관련어들과 마찬가지로 태양/달의 시간적 주기 혹은 순환과 맞닿아 있다고 짐작된다. 의미론적 접근은 나중으로 미루고 ㉤줄 <갈다>가 그러하듯 여타의 유라시아 어휘들과 기원적으로 동일한 어휘임을 보도록 한다.
⑩줄의 수메르어 어두 및 어말 모음 /u/에다 연구개음을 재구성할 경우 나타나는 몇 가지 한국어 어휘대응들, 그리고 어두 및 어말 모음 /a/에다 연구개음을 재구성한 경우의 ⑪줄의 어휘대응들은 ⑨줄에 적은 동일한 수메르어 <gàr-dar>의 어두에 연구개음(g․k)이 존재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 음운적 증빙성이 더해진다 하겠다.
“쟁기로 논밭을 갈다!”라는 표현에서의 <갈다>는 위 글상자에서의 ⑩⑪줄에 적용한 음운적 방법론 즉 자립적 모음 앞에 연구개음(g․k)을 재구성할 수 있다는 음운 이론을 적용하면 상당한 정도의 광범위한 국적(國籍) 언어들과 기원적 동일성을 갖는다. 아마도 이는 신석기 시대의 농업혁명에 수반하여 언어 간의 이동이 활발했다고 보는 언어학계의 정설, 곧 농법에서 우세한 지역어(국적어)가 그 농업기술의 전파를 따라 이동했다는 내용과 무관치 않을 것이다.
이러한 점과 관련해 생각해볼 수 있는 것이 충북 청원군 옥산면 소로리에서 발굴된 일명 ‘소로리 볍씨’다. 이 소로리 볍씨는 방사선탄소연대측정법으로 확인한 결과 지금으로부터 1만 7천 년 전인 구석기 시대의 것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된 볍씨로 판명되었고, 반재배단계와 초기농경단계 사이의 순화가 진행되고 있던 벼로 공인되고 있다. 이로써 보면 한반도에서의 농경(農耕)의 역사가 타지역에 비해 매우 이른 시기에 시작되었을 가능성이 높고, <갈다>와 같은 어휘적 연원 또한 그에 비례하는 만큼의 한반도 자생어로서 그 역사적 뿌리가 매우 깊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지 않겠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