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도 나는
다행히도
날개가 없는 나는
부리도 갈퀴도 없는 나는
아직까지 잘 살아있다
산내에서 마천으로 들어가는 입구
에이 아이 방역초소에서
방역복을 입고 하릴없이
담배만 피우던 군청직원의 감시를
받은 적 없는 나는
멀고 먼 귀향의 시간을
날아 올라본 적 없는 나는
저문 강가에 내려앉아
지친 날개를 접을 일 없었던 나는
아직까지 별 걱정 없이
잘 살아있다
치킨에 맥주 한잔 마시던 여름밤에도
소주에 오리 바비큐를 뜯어 먹던 겨울밤에도
나는 아무 걱정 없이
그 밤의 술자리를 배부르게 건너왔다
너덜너덜 해진 뼈다귀로 남은 육식의 흔적을
심드렁한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간혹 실패한 정치를 이야기하고
때론 두근거리던 연애를 곱씹으면서
편안하게 잘도 살아왔다
다행히도 나는
*벌써 봄이 왔다느니 아직 오지 않았다느니 하는 말들을 하지만 정작 봄은 그런 말들과 상관없이 저 혼자 알아서 올 때 되면 올 것이다. 그러나 봄이 오든 말든 상관없이 아직까지 AI방역초소를 매일 출퇴근 버스로 지나가는 나는 마음이 심란하기만 하다. 이 심란한 풍경을 보지 않아도 되는 날, 나는 가볍게 불어오는 봄을 맞이할 수 있을 것 이다.
신경현(시인, 노동자) 그는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지리산 실상사 산자락으로 들어갔다. 도시를 떠나 산골에서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