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필자는 10여년 이상 우리말인 ‘한국어’와 유라시아 제어(諸語)와의 관계를 새로운 관점에서 연구해왔고 그 1차 결과물로 2014년 1월, 《한국어 충격, 구약성경 Adam이 쓰던 언어다!》라는 책을 발간한바 있다.
새로운 관점이란 것은 상고 시대부터 진행되어온 언어음의 변화 현상을 조음(입의 움직임)상의 두 가지 운동 원리로 파악하고 이를 광범위한 언어군에 적용해 각 어휘들을 종합적으로 서로 비교해보는 것을 말한다.
언어음의 변화 원리라고 하면 대단히 복잡하거나 언어학자들만이 다룰 수 있는 매우 전문적인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우나 근원적 관점에서 이를 단순화시켜 말하면 연한 입천장 쪽에서 나는 소리인 [ㅋ]음과 입술에서 나는 소리인 [ㅍ]음, 이 두 가지 자음성질에서 일어난 변화라고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고, 이를 이해하는데 크게 어려운 점이 없다고 생각되어 이 지면을 빌어 필자가 언어 연구를 통해 알게 된 재미있고 신비한 내용들을 독자들께 소개하려는 것이다.
① k (연한 입천장소리) → w, a, o, u 등 “개구확대 작용”
② k (연한 입천장소리) → ‘ch’, ‘sh’, ‘zh’, e, i, y 등 “앞쪽이동 작용”
③ p[b/ph/f/v] (입술소리) → m (콧소리) “콧소리되기(비음화)”
입의 안쪽 즉 연한 입천장(연구개) 부위에서 만들어지는 [ㅋ]는 입을 점차 크게 벌려 발음하려는 움직임(개구확대)에 의해 파열음적인 그 말소리 특성이 차츰 약화되어 오늘날 ‘모음’이라고 부르는 몇 가지 말소리 성질들로 되어진 갈래(①) 하나와, [ㅋ]를 만들어낸 말소리 공기가 구강의 앞쪽 즉 딱딱한 입천장(경구개) 쪽으로 빠르게 이동함에 따라 [ㅊ][ㅆ][ㅈ]와 같은 말소리들을 만들어내게 된 변화 갈래(②), 이 두 가지 경로의 음운변화를 겪은 것으로 추정된다.
[ㅋ]의 이러한 두 갈래 변화 현상 자체는 말소리 변화를 연구한 기왕의 학설들에서 실증적 언어자료를 통해 많이 소개하고 있기에 그다지 새로울 것은 없다 하겠으나, 이러한 변화가 일어나게 된 음성적 기제가 무엇인가 하는 측면에서는 후모음이니 전모음이니 하는 [ㅋ]음과 결부되어진 모음의 성질에 따른 변화가 아니라 [ㅋ]음 자체에 작용한 조음운동의 결과로 본다는 것이 필자 고유의 관점이라 할 수 있다.
③으로 나타낸 입술소리(순음) [ㅍ]에서의 변화는 [ㅋ]의 변화 갈래 ①과 마찬가지의 조음작용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 즉 입을 크게 벌려 발음하려는 개구확대 경향으로 인한 미묘한 근육작용을 입어 코(비강) 안의 공기가 울리게 된 현상, 곧 비음화 작용의 결과로써 개음절에서의 /m/이 나타났으리라 생각된다는 것이다.
이처럼 [ㅋ]와 [ㅍ]에 미친 두 가지 조음작용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말소리의 대부분이 생산되었다고 보는 관점은 이러한 추론을 적용해 수메르어, 드라비다어, 유럽 제어 등등을 한국어와 비교해봄으로써 그 타당성을 입증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독자들께서도 본 연재물이 그러한 맥락에 있다는 점을 기억하면서 읽어주시기를 바라고, 여기에 소개하는 광범위한 언어군의 중심에 한국어가 중추로 자리하고 있다는 점과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한자어’라는 개념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 등등에 관해 깊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위의 ①②③으로 적은 조음상의 두 가지 운동성 외에 하나 더 보탤 것은, [ㅋ]나 [ㅍ]와 같은 원형적 말소리들이 상고 시대에 발음되었을 때는 일종의 떨림-성질(전동성)이 원초적으로 결부되었다는 추론이다. 이는 현존 어휘를 표기․수집한 어휘사전 내에 이 전동성이 존재하는 어형과 존재하지 않는 어형이 공존하고 있다든가, 혹은 이러한 추론을 여러 어휘들 간에 적용해봄으로써 그 존재가 드러난다든지 하는 점 등을 통해 입증이 되고 있는바 본 연재에서는 이러한 말소리 성질을 알파벳 ‘r’로 표기하게 된다.
전동성 ‘r’은 크게 보아 떨림 성질이 약화되면서 음절 종속적 모음으로 된 경우 및 자음 [ㄹ]로 발달한 두 가지 경로의 변화를 겪은 것으로 보인다.
※ 일러두기
- 이 글에서 []안은 한국어 중세고어임. (고어사전, 남광우 편, 일조각)
- ‘방’이라 적은 것은 방언을 뜻함.
- 자음 변화형이나 재구성 자음은 ()안에 표현되며, 이렇게 추정된 어형은 ≪≫로 묶는다.
- 수메르어는 캘리포니아(California) 대학의 수메르어 기초어휘 사전(2008년 개정판)에 수록된 어휘들임.
제1편 : 신(神)의 사자(使者)였던 ‘새’
오래 전에 티베트의 조장(鳥葬) 풍습을 다룬 모 월간지의 취재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티벳은 한반도 남쪽에서 제일 높다는 제주도 한라산의 높이 1950m의 무려 두 배에 달하는 평균 해발 고도 3,800미터의 험한 고원지대인데다, 남쪽으로는 히말라야 산맥이 북쪽으로는 쿤룬 산맥이 둘러싸고 있어 연중 춥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다고 한다. 그런 환경 때문에 산림다운 산림이 존재하지 않아 매장(埋葬)이나 화장(火葬) 문화가 발달할 내야 발달 할 수가 없었고, 그 대안으로서 조장(鳥葬) 풍습이 이어져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느냐는 취재였던 것으로 기억이 나는 한편, 그 기사를 읽으면서 또 하나 강한 인상으로 다가왔던 것은 그러한 장례 의례를 치르며 티벳인들이 가지는 죽음을 대하는 마음이 대단히 우주론적이었다는 점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불경이 씌어진 색색의 깃발(타르쵸)이 바람에 나부끼는 산등성이를 따라 올라간 장례 터에서 망자는 평생의 소임을 다한 자신의 육신을 독수리들에게 마지막으로 보시를 한 후 하늘 높이 날아오르는 그 독수리의 힘을 빌어 높이높이 하늘 세계로 간다고 믿고 있는, 삶과 죽음의 연속으로 이루어진 인생을 바라보는 티벳인들의 그러한 종교적 관념이 물질계에 지나치게 속박되어 있는 이방인인 나의 뇌리에 꽤 충격적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상당히 오래 전에 읽은 그 기사가 여전히 나의 기억에 남아있는 까닭은 범상치 않은 장례의 장면들 못지않게 독수리에 실려 하늘나라로 올라간다고 믿고 있는 티벳인들의 그러한 독특한 사후관(死後觀)이 꽤 인상 깊었던 데다, 티벳인들의 그러한 종교 관념이 그 기사를 읽은 이후 언어에 대한 공부를 하면서 간접자료로서 접했던 신화와 민속학적 자료들에서의 새‘鳥’ 숭배 관념과 근원적으로 무관치 않아 보인다는 판단을 줄곧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새’ 숭배 관념이 나타난 대표적인 예는 우리 주변에서 비교적 쉽게 확인 되는 ‘솟대’가 아닌가 한다. 솟대는 나무로 깎아 만든 ‘기러기’나 ‘오리’를 기둥(조간 ‘鳥竿’) 위에 고정시킨 것으로 대개 마을 어귀에다 세운다. 이 솟대가 가진 문화적 함의를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신앙사전을 인용해 간단히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솟대는 삼한시대의 종교적 성지인 소도(蘇塗)의 유풍으로 ‘솟아 있는 대’로 인식하기도 한다. 세우는 목적에 따라 세 종류가 있지만 둘만 소개하면, 하나는 마을의 액막이와 풍농·풍어 등을 기원하여 세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풍수지리상으로 행주형(行舟形)인 마을에 비보(裨補)로서 세운 솟대가 있다. 솟대는 원래 긴 장대 끝에 오리 모양을 깎아 올려놓아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신간’ 역할을 하여 화재, 가뭄, 질병 등 재앙을 막아 주는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셨다. 새는 오리라고 호칭하는 마을이 대부분이지만 지역에 따라 기러기, 갈매기, 따오기, 왜가리, 까치, 까마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처럼 마을 어귀에 세워 재앙을 막아 주는 수호신으로 여긴 ‘기러기’와 같은 새들은 신화나 인류학적 관점에서 보면 하늘이나 태양의 상징물에 다름 아니다. 위의 사전에도 나오듯이 솟대가 신간(神竿)의 역할을 했다는 것에서도 이를 유추할 수 있으니, 솟대의 주물(主物)인 새는 하늘-님이 계신 하늘 위로 높이 날아올라가 땅(마을)에서 일어난 화재, 가뭄, 질병 등의 재앙을 순조롭게 해결해 주십사 하는 인간의 희망을 전할 수 있는 존재로서 하늘(신)과 땅 사이를 연결하는 일종의 신의 대리자로 여겨졌을 것이라는 이야기다.
이러한 맥락에서 우리의 전통문화에서 중요한 코드로 자리하고 있는 까마귀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아시다시피 고구려 벽화 가운데는 삼족오 즉 세발 달린 까마귀가 태양 속에 그려진 것이 있는데, 태양이 고대문화에서 신과 동의어인 점에서 볼 때 벽화 속의 삼족오 즉 까마귀는 신의 사자(使者)로서의 위상을 가진다는 것을 이로써 분명히 알 수 있다 하겠다.
위의 사전에서 솟대 위의 새를 지역에 따라 기러기, 까치, 까마귀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고 했는데, 이 내용에 등장하는 까마귀는 아마도 기원적으로 고구려의 삼족오와 의미적 등가 관계에 있다고도 짐작해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필자가 예전에 읽은 어떤 월간지에서는 시베리아 지역의 솟대에는 박제된 까마귀가 모셔진다고 했으니 위 사전의 내용과 더불어 생각할 적에 우리도 어느 지역에선가, 혹은 어느 시기에서는 까마귀를 신의 대리자 내지 상징으로서 솟대 위에 올렸었다고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지금까지 인용한 국립민속박물관의 한국민속신앙사전에 소개된 솟대 위의 새들의 종류 혹은 명칭은, 어휘가 세분화되지 못한 고대어휘의 특성을 고려하면, 이들 중 중요한 몇 개는 본디 동일한 명칭에서 출발해 음변화를 따라 후대에 나누어진 것으로 보인다. 오리/기러기/왜가리/까치가 그것들로서 필자가 아래에 1)로 소개한 {거위․기러기}라는 뜻의 프랑스어 <oie>를 음운변화 원리에 따라 재구성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오리’는 원형적 말소리의 특징인 전동성(r)을 제1음절 ‘O’에 재구함으로써 나타나고 ‘거위’는 제1음절 ‘O’에 약화되었으리라 추정되는 연구개음(k)을 재구함으로써 나타난다. 그리고 ‘기러기’는 이들 오리나 거위가 나타난 음운적 방법에 더하여 제3음절 ‘e’에도 연구개음(k)을 재구함으로써 확인된다. 야생 기러기를 잡아 집에 가두어 두고 길들인 것이 거위이고 오리가 아니겠는가?
‘기러기’와 비교할 수 있다고 추정한 ㉠ ≪(k)o‘r’-i-(k)e≫에서의 제3음절 자음이 전향화 [(ch)e]로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서 보면 ‘까치’를 고려해볼 수도 있다. 그 생긴 모양이 많이 다른데 어떻게 기러기나 까치가 동일한 말로 표현되었겠는가, 라는 의문을 가질 법도 하지만 기실은 생물로서의 ‘새’가 중심이 되어 생긴 명칭이 아니라 신(神)의 사자(使者)라는 의미적 기초 즉 고대의 종교적 관념에 기초해 생겨난 어휘들이기에 그것이 가능할 수 있는 것이다.
첫 번째 연재물부터 너무 많은 것을 이야기하기는 그렇지만, 몇 만 단어를 종합적으로 비교해본 결과 어휘들의 대다수가 그러한 고대 종교적 의미문맥을 바탕으로 형성되어졌다는 판단이다.
한국어 ‘기러기’와의 동일성을 확인한(㉠) 제3음절 ‘e’의 재구형 [(k)e]는 {거위}의 뜻인 아래의 수메르어 <kur-gi>의 제2음절 [gi]를 통해 확인된다고 봐야 할 것이다. ‘기러기’인 ㉠의 전동성(r)이 재구된 제1음절 역시 아래의 수메르어 제1음절 [kur]를 통해 입증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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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심부름꾼 역할 내지 신의 상징적 존재로서의 새들 가운데 으뜸은 단연 까마귀가 아닐까, 라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앞서도 말했지만 고대세계에서 태양은 신과 동격이어서, 그 하늘 높이 떠 있으면서 지상을 따뜻하게 덥혀주는 태양=신에게 제일 가까이 날아가 몸이 새까맣게 탄 증거를 까마귀는 직접 가지고 있으니 그럴 법도 하질 않겠는가?
아마도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까마귀(삼족오)가 태양=신의 대리자로서의 위상을 갖게 된 것도 그러한 원시적 관념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 생각된다.
고대인들에게 까마귀가 태양=신의 사자로 여겨졌음은 건국신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으니 상나라 시조 ‘설’의 어머니 ‘간적’이 현조(玄鳥)가 떨어뜨린 알을 삼켜 ‘설’을 낳았다고 적은 『史記(사기)』은본기의 기록도 그 중 하나일 터이다. 태양감응설화의 일종인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새를 제비로 보는 학설도 있으나, 위에서 소개한 솟대 위의 까마귀라든가 태양 안에 살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 고구려 벽화에서의 삼족오를 염두에 두고 생각하면 이야기의 본래 원본에서는 틀림없이 까마귀였을 것임을 짐작하지 않을 수 없다.
삼족오를 그린 고구려인들이 그들의 건국자였던 주몽왕(추모왕)을 광개토왕릉비에서는 천제(天帝)의 아들로, 그리고 모두루의 묘지(墓誌)에서는 태양과 달의 아들 곧 일월지자(日月之子)로 기록하였음에 비추어보더라도 ‘상’이라는 나라의 건국과 관계된 시조의 탄생 이야기에 등장하는 ‘검은 새’ 곧 현조(玄鳥)는 까마귀일 가능성이 높다 하겠다.
‘현(玄)’은 옥편에서 {검은 색, 하늘 빛, 하늘}이라 풀이하고 있는데 ‘하늘’이란 의미요소와 ‘검다’라는 의미요소는 태양=신의 사자인 까마귀가 모두 충족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쨌거나 현조가 제비든 까마귀이든 간에 새들이 하늘=신의 상징으로 자리 매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들이 하늘 저 위로 훨훨 날아다닐 수 있다는 점에 있음은 아무도 부인 할 수 없을 것이다. 이러한 새가 위로 나는 모양을 표현한 어휘 가운데 한국어와 비교할 수 있는 것으로는 아래에 소개한 러시아어가 있다.
이 러시아어에서의 동작의 주체가 ‘새’인 점에서 ㉡줄의 <‘새’ -을(乙)>이 불가능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방향성이나 공간(위치)성을 표현하는 <올->/<울->과 같은 것도 고대어가 의미-덩어리라는 점에서 보면 사물어인 <을(乙)>과 밀접한 관계를 지녔을 것으로 보게 된다. {넘다}의 뜻인 <월(越)>도 같은 맥락이다. 의미적으로나 음형태적으로 다음의 포르투갈어도 동일 계열임에 분명하다.
새의 위로 날아오르는 성질은 한국어 <가볍다>를 만들어낸 모태가 된다.
즉 ‘가볍다’의 중세고어인 [
-압다]에서의 ‘
’는 포르투갈어와 연관해서 보면 일차적으로 새를 가리키는 말임을 알 수 있다. 물론 대다수 고대어들의 어휘적(의미적) 기원이 태양=신에 있다는 필자의 추론에서 보면 ‘
’의 맨 처음 의미기저는 태양=신인데, 이러한 점은 약화되었으리라 추정한 연구개음(
k)을 재구성한 ㉢ ≪(
k)a-ve≫의 제2음절 순음(脣音)의 변화를 상정해봄으로써 확인되는 바가 있다.
중세고어 [
-압다]에서의 뒷부분 ‘
압다’는 강길운 교수님의 연구를 참고하면 접사(接辭) 역할의 드라비다어 <
uva>와 견주어볼 수 있고, 필자의 영어 연구에 의하면 {~하는 경향}의 <
apt>와도 밀접한 관계에 있다. 이에 대한 자세한 얘기는 차차 하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