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 깊어가는 가을
노인들, 반백이거나 등이 굽었거나, 흙물 든 몸빼 바지에 새마을 모자, 몇 일 사이 수척해진 얼굴들, 기껏 논 몇 마지기거나 손 바닥만한 밭 고랑 이나 일구며 살아왔을, 노인들, 칠십은 예사고 팔십은 기본인, 노인들, 잠도 못자고 아니 잠도 안자고, 오들 오들 떨면서, 불침번을 서고, 팔자에도 없는 투쟁을 하는, 밥도 못 먹고 아니 밥도 안 먹고, 몸싸움을 하다가 쓰러지는, 고혈압과 당뇨와 저혈당, 쭈글 쭈글한 몸들, 탈진하고 실신하고, 멍한 눈으로, 꺽꺽 목구멍으로 눈물을 토하는, 하늘위로 끊임없이 헬기가 뜨고, 삐라처럼 뿌려지는 국까의 선무방송, 가을이, 깊어 깊어가는 가을이, 붉게 물들기 위해, 더욱 맹렬하게, 경찰들과 공무원들, 포크레인을 앞세우고, 천막 곁에 걸어 둔 밧줄, 죽기 위해 파 놓았다던 구덩이, 무사할까, 다들,
*감나무에 붉게 감이 익어가고 그 감나무에 가만히 앉아 딱히 따먹는 이 없는 감을 쪼아먹는 새들이 보인다. 어둠이 찾아오는 퇴근길엔 배고픔이 더 빨리 찾아온다. 가을배추가 무럭 무럭 자라고 물 빠진 논에는 누렇게 말라가는 짚단들이 여기 저기 흩어져 있다. 가을이 이렇게 이 마을에도 깊어간다. 하지만 밀양에선 가을이 깊어가면서 눈물과 분노만 더 쌓여가고 있다. 칠십 팔십 넘은 노인들이 한전직원들과 공무원들과 경찰들에게 매일 험한꼴을 당하고 있다. 낄낄거리면서 노인들을 향해 욕을 하고 앙상하게 말라비틀어진 몸들을 방패로 밀어내면서 국까는 자본은 밀양의 산과 들을 가난한 노인들의 논밭을 욕되게 하고 있다. 밀양의 가을을 밀양의 노인들을 밀양의 마을들을 우리는 지켜내야 한다.
신경현(시인, 노동자) 그는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지리산 실상사 산자락으로 들어갔다. 도시를 떠나 산골에서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