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를 생각한다
물 빠진 논바닥
장화는 쑥쑥
바닥으로 잘도 빠진다
한번 빠진 장화는
움직이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가지도 못하고
뒤로 빠져 나가지도 못하고
요지부동 길을 내주지 않는
뻘밭의 논바닥에서
길을 잃지 않고
몸 가까이 뭉쳐진 힘줄로
단단해진 후에야 바람을 견디는
바람을 견딘 후에야
비를 맞는 방법을 터득한
타오른 여름 한 철 묵묵히 살아온
벼를
생각한다
*밥 한 그릇을 지키기 위해서
밥 한 그릇을 거부하고
밥 한 그릇에 담긴 한 세상의 슬픔을 기록하는 사람들이
밥 한 그릇을 빼앗아 간 인간말종들과 투쟁하고 있다.
여름 한 철 타오르는 더위와 바람과 비를 이겨낸 논에선 벼베기가 한 창이다
땀을 흘리고 흐르는 땀을 닦아내던 이들의 수고와 노고로 이루어진 밥 한 그릇
그래서 밥 한 그릇 먹는 거 쉽게 생각 하면 안되겠다.
대한문에서 단식을 이어가고 있는 쌍용차 노동자들의 투쟁이 승리로 끝나는 날
너르고 고른 따뜻한 밥 한그릇 대접하고 싶다
신경현(시인, 노동자) 그는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지리산 실상사 산자락으로 들어갔다. 도시를 떠나 산골에서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