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식당 앞이 수십 켤레의 신발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명절 앞두고 대가족이 식사하러 나온 것일까. 차례상에 쓰이는 제기와 추석 냄새를 물씬 풍기는 음식들로 가득 들어찬 것을 보아 무슨 행사를 치르는 것 같아 보인다.
대가족처럼 옹기종기 모여 앉아 차례를 지내고 음식을 나눠 먹는 이들은 대구에 거주하는 쪽방 주민들이다. 쪽방 주민들의 자발적 모임인 ‘희망회’ 회원 20여 명이 한자리에 모였다.
대구쪽방상담소는 추석 연휴 시작 하루 전인 17일 저녁 7시 대구 서구 비산동의 식당 ‘따신 밥 한 그릇’에 쪽방 주민들과 합동 차례를 지내는 자리를 마련했다. 추석이면 차례상 차리는 것이 당연하게 생각될 수도 있지만, 쪽방 주민들에게는 이마저도 쉬운 일이 아니기에 6년째 추석, 설을 맞아 열리는 합동 차례상은 고맙고 반갑다.
장민철 대구쪽방상담소 소장은 “쪽방 주민들은 가족과 연이 끊긴 이들이 많다. 그래서 명절이면 더 쓸쓸해진다. 조상에게 술 한 잔 따르지 못해 마음이 더 착잡해지기도 한다”면서 합동 차례상을 열게 된 배경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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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동 차례를 지낸 쪽방 주민들이 함께 식사를 나누고 있다. 이날 음식은 쪽방주민들과 대구쪽방상담소 활동가들이 직접 만들었다. | | |
이날 추석 차례상을 올린 배삼돌(48) 씨는 “이렇게라도 조상님들께 술 한 잔 올릴 수 있어서 너무 고맙다. 요즘 이런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상담소 선생님들한테 늘 고맙게 생각한다”며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 반복했다.
배 씨는 어릴 적 부모님을 여의고 형제들과도 연락이 끊어졌다. 각설이 분장을 하고 엿을 파는 그는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2년 전부터 대구 중구 대신동에 있는 쪽방촌에 들어갔다. 배 씨는 “명절만 되면 어릴 적 헤어진 여동생 생각이 난다. 나는 머슴으로 팔려가고, 여동생도 다른 곳으로 팔려 갔는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른다...”며 여동생 배순자(46) 씨의 행방을 꼭 찾고 싶다고 말했다.
쪽방에 10년 동안 살다 자그마한 보금자리를 마련한 이순자(가명, 44) 씨는 쪽방촌을 떠난 지 2년이 지났음에도 이 자리를 찾았다. 딸과 함께 참석한 이 씨는 이곳에 모인 희망회 회원들과 함께 추석 명절을 시작하고 싶었다.
이 씨는 “지금은 쪽방에 살고 있지 않지만, 명절이라고 이 많은 제사 음식을 준비하기가 여의치 않다. 평소 함께 알고 지내던 이들과 조상께 제사상 같이 올리는 것이 참 좋다”고 말했다.
기자도 푸짐하게 한 상 차려진 밥상에 앉아 밥 한술 거들었다. 밥 한술 뜨면서 쪽방 주민들과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그 중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말이 “대구 경기가 너무 어렵다. 언제 쪽방을 벗어나 내 집 한 칸 마련할 수 있겠냐”였다. 그러면서도 이들은 희망회를 통해 한 달에 한 번 모임을 갖고, 서로에게 의지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고자 노력한다.
부족한 사회안전망이 명절마다 어김없이 이들을 고독으로 내몰았지만, 그렇다고 삶에 대한 희망의 끈을 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연대의 힘, 명절을 앞두고 모인 이들에게 합동 차례상을 올리는 이 자리가 반가운 가장 큰 이유다. 부러 머릿수보다 더 많은 음식을 만든 덕에 돌아가는 이들의 두 손에는 푸짐한 추석 음식이 따라 붙었다. 함께 나눠 먹고, 얼굴을 맞대고 연대하는 것이 진짜 추석의 의미였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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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합동 차례상 올리기를 마치고 집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두 손에는 추석 음식으로 든든하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