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소적인 유쾌함. 김영하의 이야기는 그랬다. 그러나 <퀴즈쇼> 이후 김영하의 이야기에 손을 대지 않았다. 그가 문단에 등장하며 가져온 파문이 이제는 잔잔해지기 때문일까. 그러다 얼마 전 신작 <살인자의 기억법>을 손에 잡았다. 굳이 책 한 권 보태지 않아도 김영하의 이름값으로 베스트셀러에 오를 책이건만 기어코 돈을 내고 손에 쥐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김영하도 나이를 먹었나보다.
이유는 명료했다. 아멜리 노통브의 <살인자의 건강법>과 얼마나 유사할까, 또 얼마나 다를까를 확인하고 싶어서. 하나 덧붙인다면 문학, 그중에서도 소설과 멀어진 뇌에 휴식을 주고 싶어서였다.
우선, 속도감이 넘친다. 간결한 문장과 1인칭 전개뿐 아니라 200페이지가 조금 안 되는 이야기는 한 시간 안에 후다닥 지나갔다. 마지막 5분, ‘아차, 실수했구나’하는 탄식과 더불어 다시 글을 꼼꼼하게 읽기 전까지는.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는 70대 살인자의 이야기다. 살인이 취미였지만, 살인에 흥미가 떨어져 그만둔 지 20년이 훌쩍 지났다. 자신의 아버지를 죽이던 일부터, 함께 사는 딸의 어머니를 죽인 일까지,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지만, 살인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려고 부단히 노력한다. (딸은 자신의 친딸이 아니라 여성을 살해한 후 아이를 데리고 키운 것이다)
그러다가 딸을 죽이려는 살인자의 냄새를 맡는다. 20년 만에 다시 살인을 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자신의 쾌락을 위해서가 아니라 딸을 지키기 위해서다. 하지만 알츠하이머병 탓인지 딸을 죽이려는 예비살인자를 자꾸만 망각한다. 딸을 죽이려고 하는 남자는 어느 날 딸의 남자친구로 나타나기도 하면서 주인공의 심기를 계속 불편하게 만든다.
결국, 딸이 죽는다. (스포일러는 유포하지 않겠다) 누가 죽였을까? 주인공은 어떻게 됐을까.
알츠하이머에 걸린 주인공은 끊임없이 메모하고 기록한다. 시간이 지나 다시 일기장을 펼쳐보고도 기억하지 못한다. 기억하기 위해 기록하는데 기억이 안 나는 이 난감한 상황. 백날 써봐야 기억을 못 한다면...하루에도 수백 건씩 주고받는 카카오톡 메시지, 손가락을 분주하게 움직여 날리는 트윗을 우리는 얼마나 기억할까. 시간이 흘러 다시 펼칠 일이 없을지도 모른다.
기억하고 싶은 대로, 자신의 존재대로 기억한다. 내가 바라보면 분명 진실인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상황을 지켜보면 사실은 한 가지뿐, 살인을 저질렀다는 것. 나머지는 다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여기서 살인자는 물리적 살인을 저지른 이를 일컫는 것이 아닌 게 된다. 기억하고 싶은 대로 기억하는 이는 언제나 타인의 시선을 살인해 없애 버린다.
<살인자의 기억법>이라는 제목을 ‘기억의 살인’으로 바꿔도 무방해 보인다. 자신의 세계를 강고하게 구축하고 2~30년이 흐른 후, 변하지 않은 채 현재에 서 있는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어떤지 살인자는 끝내 모른다. 아니, 인정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