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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6월08일 01시4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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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긍정의 뇌> 하버드대 뇌과학자의 뇌졸중 체험기
My stroke of Insight

선재(자유기고가) toenfqkf90@hanmail.net

▲<긍정의 뇌>, 질 볼테 테일러, 장호연 옮김, 윌북
질 볼테 테일러는 30대 중반의 전도유망한 신경해부학자로, 하버드 의과대학에서 인간의 뇌에 관한 연구와 강의를 하고 있었다. 1996년 12월 10일 아침,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추락하고 말았다. 뇌 속에서 일어난 출혈 때문에 걷지도 말하지도 읽지도 쓰지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장애인이 되어버렸던 것이다. 하지만 뇌졸중은 그녀에게 지혜와 통찰을 안겨주었다. 뇌졸중으로 좌뇌가 잠잠해지자 마음은 우뇌의 의식 속으로 여행을 떠나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에 접어든 상태와 유사한 깊은 평화에 둘러싸이게 되었다고 한다.

뇌의 특정 영역이 기능을 상실했을 때, 환자에게 어떤 현상이 생기는가에 대한 의사들의 드물고 놀라운 보고들은, 우리 존재에 대한 많은 질문과 경외감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은 그런 객관적인 관찰의 반대편에서 환자의 주관적인 느낌에 대한 기록이라는 점이 특이하다. 많은 사람이 좌뇌의 기능을 상실한 경험이 있지만, 그녀처럼 뇌과학 바탕 위에서 자신의 경험을 재구성하고 그것을 언어적으로 풀어낼 수 있을 만큼 뇌를 다시 회복할 수 있었던 사례는 희귀하다. 그녀의 섬세한 주관적 관찰은 우리가 품고 있는 많은 철학적, 종교적, 생물학적 질문들을 다른 각도에서 고찰하게 한다.

그녀의 뇌가 정보처리 능력을 상실하는데 4시간이라는 짧은 기간이 필요할 뿐이었지만, 뇌졸중 이전의 자신으로 완전히 회복하는 데는 8년이라는 긴 세월이 필요하였다. 그녀는 이 책을 쓴 이유가, 뇌졸중을 겪지 않고도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질 테일러의 뇌출혈은 그녀의 좌뇌 운동피질의 일부와 감각피질의 일부, 언어를 구사하는 능력을 담당하는 영역과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을 담당하는 영역, 신체의 경계와 시간과 공간을 인지하는 능력이 있는 뇌 영역의 일부에서 발생했다. 뇌졸중이 일어난 날 아침 그녀가 경험한 것을 따라가 보자.

의식은 명료했지만, 몸이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다. 내가 나의 행동을 결정하고 실행하는 적극적인 참여자가 아니라 그저 지켜보는 관찰자가 된 듯했다. 기분이 묘했다. 마치 내 의식이 현실과 비밀스러운 공간 사이 어딘가에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주위의 것들에 대해 정보를 주던 뇌의 쉼 없는 재잘거림(우리의 뇌는 좌뇌의 언어 중추를 통해 우리에게 계속 말을 건넨다. 나는 이 현상을 ‘뇌의 재잘거림’이라고 부른다)도 더는 예측할 수 있는 친숙한 흐름이 있는 내용이 아니었다. 이제 내 언어적 사고는 앞뒤가 맞지 않았고, 침묵 때문에 수시로 뚝뚝 끊겼다. 뇌의 재잘거림이 무너지기 시작하자 낯선 고립감이 밀려왔다. 동작을 조정하는 능력을 비롯한 내 몸의 모든 체계가 느리게 작동하는 듯했다. 외부 세계에 대한 뇌의 재잘거림이 중단되면서 세계와 나를 잇는 연결 고리도 끊어졌지만, 내 의식은 살아 있었고 나는 내 마음속에 계속 존재했다. 고차원적인 인지능력과 일상과 관련된 세세한 부분들이 기억에서 사라지자 내 의식은 모든 것을 다 아는 전지의 수준으로 도약한 것 같았다. 마치 우주와 ‘하나가 된’ 듯했다.

좌뇌의 지시가 끊겨 순차적인 사고를 이러갈 수 없게 되자 외부 세계를 인지하는 일이 버거워졌다. 경험이 하나씩 흘러들면서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되는 게 아니라 모든 순간이 독자적으로 제각각 고립된 채로 존재하는 듯했다. 언어와 순차적 처리 능력이 사라지자 내가 이제까지 살았던 삶과 단절된 기분이 들었다. 인지능력과 포괄적인 개념은 물론 시간감각 또한 사라졌다. 과거의 기억을 더 이상 떠올릴 수 없었다. 내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존재인지도 파악이 되지 않았다. 출혈이 왼쪽 뇌의 정상적인 기능을 방해하자 정보를 분류하고 세부 문제에 집착하는 나의 지각도 자유로워졌다. 좌뇌의 분석적 판단 능력이 상실된 상태에서 평온과 안락, 축복과 행복, 충만의 감정이 나를 휘감았다.

“신경해부학자이고 이 주소에 살며 연락처는 이렇게 되지”하고 말하는 언어 중추가 침묵하자 더는 내가 질 테일러여야 할 이유가 없어졌다. 참으로 기이한 인식의 변화였다. 나는 더는 그녀처럼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의 삶을, 그녀의 관계나 성공과 실수를 몰랐으므로 그녀의 결정이나 스스로 설정한 한계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었다. 현재의 나는 그녀가 가지고 있던 근본적인 적대감은 물려받지 않았다. 오빠가 정신병을 앓고 있다는 사실을 잊었다. 부모가 이혼했다는 것도, 내 일도, 내게 스트레스를 안겨주던 것들도 모두 잊었다. 나는 이렇게 기억이 사라졌다는데 안도와 기쁨을 느꼈다. 이 특별한 날에 나는 그저 ‘존재한다’는 것의 의미를 배우게 된 것이다. 담당 세포들이 망가져서 과거와 미래에 관련된 일들을 숙고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상태였기에 내가 지각할 수 있는 것은 지금 여기 이 순간뿐이었고, 그것은 아름다웠다.

언어중추에서 자아 인식을 담당하는 부위는 자신을 견고한 개별적 존재로 규정한다. 이런 제약에서 풀려나자 우뇌는 영원한 우주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즐거워했다. 나는 이제는 고립된 외톨이가 아니었다. 내 영혼은 우주만큼이나 거대했고, 드넓은 바다에서 흥겹게 장난치며 놀았다. 여러분과 나를 구성하는 모든 화소가, 그리고 그 사이의 공간에 존재하는 모든 화소가 에너지이다. 내 눈은 다시는 사물을 구별하여 지각하지 못했다. 모든 사물이 비슷한 에너지를 방사했으므로 대상들 사이에 물리적 경계를 나누는 것이 불가능했다. 마치 안경을 벗거나 눈에 안약을 넣으면 가장자리가 흐릿하게 보이는 것과 비슷했다. 그동안 나는 외부 세계에 대한 우리의 지각과 우리와 세상의 관계가 신경회로의 산물이라는 것을 인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나니 더없이 홀가분해졌다. 내가 살아온 시간 동안 나는 내 상상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던 것이다. 신체의 경계가 사라진 느낌은 몸을 가진 존재로서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최고의 쾌락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의식이 달콤하고 차분한 흐름 속으로 빠져들자 거대한 내 정신을 작은 세포들의 조직체 안으로 다시 구겨 놓는 일은 불가능해 보였다.

우뇌가 나를 지배하면서 타인의 감정을 더 예민하게 느끼게 되었다. 사람들의 말을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표정이나 몸짓으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에너지의 역학 관계가 내게 미치는 영향을 주의 깊게 살폈다. 내게 에너지를 안겨주는 사람이 있고 내게서 에너지를 뺏어가는 사람이 있었다. 

앤드류 뉴버그와 유진 다킬리 박사가 몇 년 전에 수행한 뇌 연구를 통해 당시 나의 뇌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제대로 이해할 수 있었다. 이들은 단일광자방출단층검사(SPECT)를 사용하여 종교적 혹은 영적 경험의 밑바탕에 있는 신경해부 구조를 확인했다. 우리가 개인의 존재에서 벗어나 우주(신, 열반, 극도의 행복감)와 하나가 되는 감정을 느끼는 순간, 뇌의 어느 부위가 관여하는지 확인하는 연구에 나선 것이다. 이를 위해 이들은 티베트 수도승과 프란체스코 수도회 수녀들을 불러 SPECT 기계 안에 들어가 명상을 하거나 기도를 올리게 했다. 명상이 절정에 달하거나 신과의 합일을 느끼는 순간, 실을 잡아당기도록 했다. 이 실험을 통해 뇌의 특정 부위 신경활동이 확인되었다. 첫째, 좌뇌 언어 중추의 활동이 감소해 뇌의 재잘거림이 멈추었다. 둘째, 우리가 신체 경계를 확인하도록 돕는 곳인 좌뇌 상두정이랑에 위치한 정위연합 영역의 활동이 감소했다.

좌뇌가 서서히 다시 정상적인 기능을 회복하는 것을 지켜보면서, 그녀가 직면했던 질문들과 우뇌의 깨달음을 망각하지 않기 위해 그녀가 어떻게 노력했는가를 살펴보자.

지난 8년 동안 나는 내 마음이, 뇌 속에서 일어나는 모든 현상을 분석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옛 기억을 찾을 때마다 예전의 감정적 짐이 수면 위로 떠올랐고, 그러면 나는 해당 신경 회로를 보전하는 것이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 판단해야 했다. 감정적 치유는 지루하리만치 서서히 진행되었지만 노력할 가치가 있었다. 왼쪽 뇌의 힘이 점차 강해지면서 내 감정이나 상황을 자연스럽게 다른 사람이나 외적 사건 탓으로 돌리고 싶어졌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보면 나와 나의 뇌 말고는 나에게 어떤 기분을 느끼게 할 사람은 없었다. 내 삶에서 벌어지고 있는 모든 것을 다 통제할 수는 없지만, 내 경험을 어떻게 지각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전적으로 내게 달려 있었다. 뇌졸중은 내가 세상에서 누구이고 어떤 존재로 살아가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게 해준 놀라운 선물이었다. 뇌졸중을 겪기 전에는 내가 뇌의 산물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내가 어떻게 느끼고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대해 결정권이 없는 줄로만 생각했다. 그러나 사고 이후, 나는 새로운 눈을 떴다. 내게 선택의 권리가 있다는 걸 실감한 것이다.

뇌졸중으로 적성회로에 연결되어 있던 나만의 다양한 개성 또한 사라졌다. 평생 느껴온 감정적 반응과 부정적 사고, 내 몸의 기능을 되찾는 과정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나는 좌뇌의 능력을 되찾고 싶었지만, 복구되는 왼쪽 뇌에서 싹트는 개성 가운데는 우뇌의 인식과 조화되기 어려운 것도 분명히 있었다. 내가 지속해서 맞닥뜨리는 질문은 이러했다. ‘내가 되찾고 싶은 기억이나 능력 외에 그와 연결된 감정과 개성까지 꼭 되찾아야 할까?’ ‘내가 다시 ‘정상적인’ 사람으로 돌아가려면 우뇌가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할까?’ 회복과정에서 나는 양측 반구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 부닥쳤을 때 내 생각을 좌우하는 성격을 내가 직접 선택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좌뇌의 언어 중추에서 이야기를 담당하는 부위는 최소한의 정보를 갖고 바깥세상을 이해하도록 설계되었다. 세부사항들을 입수해서 하나로 엮어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실제 자료 사이에 틈이 있으면 감쪽같이 메운다. 게다가 줄거리를 만드는 과정에서 다른 시나리오를 지어내기까지 한다. 왼쪽 뇌는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사실이라고 내놓을 때마다 스스로 반복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내 마음속에서 반복되는 사고 패턴의 고리가 만들어진 것이다.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변연계(감정) 프로그램도 있는데, 하나의 프로그램이 활성화되었다가 완전히 멈추는 데 90초 정도가 걸린다. 가령 분노라는 감정은 자동으로 유발되도록 설계된 반응이다. 어떤 계기 탓에 뇌가 분비한 화학물질이 몸에 차오르고, 우리는 생리적 반응을 겪게 된다. 최초의 자극이 있고 90초 안에 분노를 구성하는 화학 성분이 혈류에서 완전히 빠져나가면, 우리의 자동 반응은 끝이 난다. 그런데 90초가 지났는데도 여전히 화가 나 있다면, 그것은 그 회로가 계속해서 돌도록 스스로 의식적으로 선택했기 때문이다. 순간순간 우리는 신경회로에 다시 접속할지, 아니면 감정을 스쳐 지나가는 단순한 생리 현상으로 사라지게 할지 선택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모르고 있지만, 우리는 매 순간 어떻게 반응할지 무의식적으로 선택한다. 이때 미리 프로그래밍 된 반응의 패턴에 익숙해져 자동 조정 장치에 우리의 삶을 맡기기가 쉽다. 나는 고차적 피질세포가 변연계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에 더 많이 주목할수록 내가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결정권이 많아진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어떤 고통스러운 생각을 하더라도 내가 자발적으로 그 감정 회로에 접속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이런 순환 회로에서 빠져나오는 첫 단계이다.

질 테일러가 사용한 부정적 사고와 감정의 순환 고리를 끊는 법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이 3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자신이 부정적 회로에 엮여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런 회로가 발생시키는 생리적 현상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 정서적, 생리적 반응이 사라질 때까지 90초 기다린다. 적절한 감정을 덧붙이거나 몸짓을 메시지에 더하여 뇌에 특정 사고 패턴에 엮여 들어가는 것을 중단하라고 요청한다. 이런 대처가 효과가 없을 때는 둘째 방법인 ‘훼방꾼’을 엄격한 일정으로 관리하는 것이다. 이야기꾼에게 오전 9시부터 9시 반까지는 마음대로 푸념해도 좋다고 허락하는 것이다. 마지막 방법은 부정적인 패턴에 맞서 의식을 집중시킬 수 있는 대체사고를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우뇌의 의식에 다가가는 방법을 간략하게 살펴보자.

우뇌로 들어가는 첫 관문은 마음의 속도를 의식적으로 늦추고 우리가 하나로 이어진, 에너지와 분자들의 영원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내 몸에 흘러들어 가는 감각정보에 주목하고 감각의 밑바탕에 있는 생리적 경험까지 느껴보는 것이다. 사물의 모양, 소리, 맛, 냄새, 피부에 닿았을 때의 감촉, 몸에 불러일으킨 생리적 반응에 주목할수록 우리의 뇌는 그 순간을 쉽게 재현할 수 있다. 이런 훈련은 우리가 원치 않는 사고 패턴을 다른 생생한 이미지로 대체하는 것을 수월하게 만든다. 두 번째는 자신의 몸에 맞는 음식을 주의 깊게 관찰하여 섭취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신체의 움직임에 의식을 집중하여 우뇌의 의식으로 들어가는 방법이 있다. 근육을 체계적으로 조였다가 풀어주거나 요가, 태극권, 등의 운동들이 있다.

질 볼테 테일러의 뇌졸중이 그녀에게 안겨준 통찰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우리 세포와 회로가 만들어낸 산물이라는 깨달음이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어떻게 느끼고 생각할지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선재(자유기고가) toenfqkf9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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