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는
-서울 양재동 현대기아차 농성장을 생각하며
코뼈가 부러지고 이빨이 부서지는 그 곳에서
바람결에 흐드러지게 피어나던
꽃나무의 잎사귀는 무사할까
그 꽃나무 아래 내려앉은 햇살은
얼어 죽지 않고 제대로 겨울을 건너오긴 했을까
자주 비에 젖었고
자주 바람에 무너져 내리던 시간 속에서
불을 밝힌 채 끝나지 않고 이어지던
열 두 시간 불안한 심야노동은
돌아가 집으로 돌아가 지쳐 쓰러져서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겠지
이름을 묻고 나이를 묻는 경찰서 조사실,
무심히 들리는 타이핑 소리에
잠시 딴 생각을 하던 그 남자는
여전히 풍찬노숙의 거리에서 구호를 외치고 있을까
살아 온 이력의 마지막 줄에 그인
붉은 해고통지의 그늘을 안고 살아가는 그 남자는
어쩌면
밥을 먹다가도 구호를 외치다가도
사실은 다 때려치우고 싶었던 마음이
문득 문득 더 많이 피어나진 않았을까
세상의 친절이 와 닿지 않는 외롭고 쓸쓸한 그 곳에서
세상의 불친절이 먼저 와서 멱살을 잡고 흔드는 그 곳에서
어제와 똑같이 경찰들에게 사지가 들린 채 끌려 나가는
그 남자는
*자주 비에 젖고 자주 바람에 무너져 내리는 봄이다. 팍팍한 세상살이에 지친 사람들은 따뜻한 봄날에 피는 꽃들과 날로 푸르게 불어오는 바람을 많이 기다렸을 것이다. 그러나 올 해 봄 날씨는 심술궂기가 이를 데 없는 것 같다. 이 곳 날씨 또한 그리 좋지 않았다.
하지만 비에 젖고 바람에 무너져 내려 이제는 보이지 않을 것만 같던 꽃들이 다시 피기 시작하고 밤이 되면 먼데서 가까운 데서 개구리 우는 소리가 들리고 새 소리가 들려온다.
겨우 내 한적하기만 하던 논바닥에 물이 들어오고 그 위로 어린 모 들이 자리를 잡아간다. 감자며 고추를 심는 손들이, 하루가 다르게 올라오는 고사리를 꺾는 손들이 바쁘게 움직인다. 고단하지만 생기가 도는 그 손들을 가끔 쳐다보면 나는 또 어쩔 수 없이 공장에서 쫓겨나 거리에서 바람과 비와 경찰들의 폭력에 그대로 노출된 노동자들의 손들이 떠오른다.
그 손들에 아로 새겨진 슬픔과 고통과 눈물이 떠오른다. 그리고 그 손들을 수시로 외면하게 만드는 이 따뜻한 봄날의 푸르름이 미워지기도 한다. 봄이라지만 봄이 아닌 봄날을 생각한다
신경현(시인, 노동자) 그는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지리산 실상사 산자락으로 들어갔다. 도시를 떠나 산골에서 자연과 사람의 이야기를 노래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