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 마감을 앞두고 깜빡이는 커서만 한참을 바라봤다. 어떻게 이야기해야 할지 첫 문장 쓰기가 너무 힘이 들었다. 이전 연재 글을 다시 읽었다. 지난번 연재에서 ‘지더라도 이야기가 있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20점차의 대승보다, 그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바람이 현실화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있었다. 하지만 이 이야기가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었는지는 의문이 남는다.
지난 21일 이런저런 이유로 4주 만에 야구를 하러 나갔다. 이날은 리그 세 번째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다. 상대는 우리와 마찬가지로 2승을 거두고 있던 공동 1위팀. 이 팀은 점수가 많이 나는 사회인야구의 특징을 첫 경기부터 가볍게 무시해버린 팀이었다. 첫 경기에서 이 팀은 2대1, 사회인야구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스코어로 승리를 거뒀다.
2대1의 스코어는 양팀이 모두 타격이 좋지 않거나, 반대로 투수력, 수비력이 좋을 것이라는 유추를 하게했다. 대체적으로 전자보다는 후자에 무게를 싣게 됐는데, 이 팀 선발투수가 이 경기에서 탈삼진을 9개나 솎아낸 기록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전부터 이 팀에 관심을 가지고 경계를 하고 있었다.
상대에 대한 부담감 때문이었는지, 아니면 연이은 콜드승에 긴장감이 풀린 때문인지는 알 수 없다. 한 시간 가량 일찍 경기장에 도착해 연습 준비를 하려는데 우리팀 감독의 유니폼 윗옷이 없었다. 항상 유니폼을 넣어다니는 차 뒷자리에는 다른 유니폼만 덩그러니 있었다. 낭패였다. 리그 규정상 정식 유니폼을 착용하지 않는 선수는 경기에 뛸 수 없었다. 문제는 이날 경기에 참석한 선수가 감독을 포함 9명뿐이라는 거였다. 감독이 뛰지 못하면 경기는 해보지도 못하고 몰수패를 당할 상황에 처하게 된 거다.
시간상 왕복해서 유니폼을 가지러 다녀오기도 여의치 않은 상황… 우리는 일단 고등학생이어서 리그등록이 되지 않은 성인화 선수(17살)의 유니폼을 대신 착용하고 상대팀에 양해를 구해보기로 했다. 유니폼 문제는 왕왕 벌어지는 일이기도 하고, 경기를 기다려온 양팀 모두에게 시합을 하지 못하는 것은 달갑지 않은 일이라 어렵지 않게 시합을 할 수 있을거라 낙관했다.
그런데 문제는 예상치 않은 곳에서 발생했다. 상대팀보다 리그를 운영하는 사무국이 이를 허용하지 않으려 했다. 양팀 합의하에 쉽게 가능할거란 예상이 어이없는 곳에서 무너졌고, 나는 말 그대로 ‘멘붕’ 상태가 됐다. 4주를 기다린 경기였으니 더 그랬다. 심판과 실랑이를 벌이고, 리그를 운영하는 사무국에 전화를 하고…. 10분가량 사정하고 사정해서 겨우 상대팀의 양해를 얻어 시합을 해도 좋다는 대답을 얻었다.
하지만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2회말, 우리 공격이 끝날 무렵, 이번엔 기록원이 다시 문제를 제기했다. 감독의 유니폼이 등록되지 않은 선수의 유니폼이라는 문제제기였다. 리그 규정 때문에 등록하지 못한 고등학생 선수의 유니폼이라는 걸 설명하는데 다시 시간이 흘렀다.
몇 차례 연재에서 밝혔듯 야구장이 부족한 사회인야구는 경기당 시간제한이 있다. 그래서 가능한한 공수교대도 빠르게 하고, 양팀이 최대한 시간을 아껴가며 시합을 진행하려 노력한다. 그런데 우리팀의 실수로 많은 시간이 낭비된 것이다. 이 낭비된 시간은 경기가 5회말 우리 공격이 마무리되기도 전에 시간제한으로 끝나면서 더 큰 아쉬움으로 남게 됐다. 더군다나 이날 경기에서 우리는 7대4로 이기기까지 했다. 우리가 이기고 있는 상황에서, 시간제한으로, 우리 공격 중에 경기가 마무리됐다는 사실은 경기가 끝나고도 찝찝함을 더하게 만들었다.
우연치 않게 찝찝함이 남는 경기를 연달아 했다. 이야기가 있는 경기를 원한다고 했더니, 식은땀이 날 정도로 스릴 넘치는 ‘이야기가 있는 경기’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역시 찝찝함은 남았다. 문제는 과정에 있었다. ‘쿨’하게 몰수패를 인정했어야 하는지 후회도 남는다. 이기고 지는 것보다 단지 야구를 하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이 찝찝함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르겠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넋두리만 늘어놓게 됐다. 죄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