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날 여름은 감자 한 포대로 시작되었다. 이슬이 채 마르지 않은 마당에는 아버지의 낡은 오토바이 짐받이에 실려 온 감자 한 포대가 널브러졌다. 크기대로 분류하는 일은 내 몫이었다. 어른주먹만 한 감자는 저녁밥을 대신해서 찐 감자가 상 위에 올랐다. 그보다 작은 감자는 고추장을 넣은 매운 찌개와 설익은 볶음으로 끼니마다 밥상 한쪽을 차지했다. 여름 내내 감자 반찬에 물릴 만도 했을 텐데, 나이가 들수록 그때의 감자 맛이 그립다. 나와 달리 남편은 반찬도 아닌 것이 반찬 행세를 한다면서 상 위에 올라온 감자 반찬을 거들떠도 안 본다. 남편 역시 어린 시절 감자로 끼니를 때웠던 기억이 있었다. 하지만 그에게 감자는 그때의 가난을 상징하는 치욕처럼 느껴지는 모양이다.
이렇게 감자는 보통 사람들의 주식이며 가난의 상징이다. 얼마 전에 본 다큐멘터리 영화 <지슬>은 제주 4·3항쟁* 중 ‘큰 넓궤(동굴)’와 관련된 사건을 드라마 형식으로 연출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제주도 출신 오멸 감독이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각 장에 ‘신위(神位), 신묘(神廟), 음복(飮福), 소지(燒紙’) 라는 제목을 붙인 제의(祭儀) 형식을 띠었다.
‘지슬’은 ‘감자’의 제주도 방언이다. 그래서 감자는 영화의 주연 배우와 마찬가지고, 잦은 클로즈업의 대상이다. 영화에서 ‘지슬’은 하룻밤만 지나면 마을로 내려갈 것이란 기대를 안고 동굴에 피신한 주민의 허기진 배를 채워 주었고, 지슬 바구니가 쏟아지는 장면의 클로즈업은 곧 있으면 닥칠 주민에 대한 살육을 암시했다. 또한, 그것은 ‘폭도’를 한 명도 못 잡아 끼니를 거른 박 일병을 위해 새내기가 건넨 동병상련의 한 끼였고, 책을 가지러 갔다가 잡힌 폭도 같지 않은 양민 순덕의 주린 배를 달래려 했던 박 일병의 위로였다. 그뿐만 아니라 관객인 내게 지슬은 동굴에 올망졸망 앉아서 집에 두고 온 돼지 밥과 장가갈 걱정을 하며 소소한 일상을 나누던 제주 사람이기도 했다. 시퍼런 날의 부엌칼이 표출하는 동굴 밖의 두려움과 달리 동굴 안의 일상은 부조리한 현실을 보는 것 같았다.
제주 출신 감독답게 영화에는 제주의 메타포가 숨어있다. 토벌대에서 가장 어린 병사는 소년 정길이다. 그는 주로 물 항아리를 짊어지고 등장한다. 그의 뒷모습은 뚜껑이 없는 물 항아리의 물이 흘러 흥건하게 젖어있다. 몸집에 비해 작은 물 항아리임에도 그에겐 버거운 짐처럼 느껴졌다. 소년이지만, 그의 뒷모습은 물 항아리를 등에 진 해녀를 닮았다. 순덕의 육신과 그녀의 죽음을 목격한 만철과 경준이 한라산을 뛰어오르는 모습이 겹치는 장면은 제주도 신화의 주인공 설문대 할망을 연상시켰다. 영화 <지슬>은 마치 제주 섬과 제주 도민의 영혼에 바치는 위령제 같았다.
영화에서 슬픔의 절정은 어머니가 걱정되어 집에 갔던 무동이 잿더미가 된 집과 어머니를 발견하고 눈물을 흘리던 장면과 탄 감자를 갖고 와서 동굴의 주민과 나눠 먹을 때 효과음처럼 흐르던 무동의 깊은 한숨이다. 그들은 말 그대로 ‘음복’을 했던 것이다.
<지슬>은 눈물 없이 볼 수 없다. 국가 권력에 희생된 무고한 양민에 대한 감정이입과 분노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작년에 상영했던 다큐멘터리 영화 <두 개의 문>이 떠올랐다. 영화에 대한 기시감은 거기서 그치는 게 아니라 쌍용자동차 노동자, 80년 광주 시민으로 이어졌다.
감자 같은 보통 사람들에게 ‘국가란 도대체 무엇인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두 개의 문>은 가진 것 없는 철거민은 물론 권력의 하부구조에 있는 진압경찰의 목숨도 국가 권력의 이익 앞에서 무참히 희생되는 용산 참사를 담았다. 용산을 계기로 이명박 정부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에게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하며 자본의 편에 선 국가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에게 노동자와 철거민은 국민이 아니었다. 자본의 이익을 대변하는 국가가 정말 사회 교과서에서 배운 전 국민을 대표하는 국가인지 의구심이 생겼다. 굳이 ‘광주’를 언급하지 않더라도 정당성이 의심되는 권력일수록 공포를 조장하고, ‘공공의 적‘이란 이름으로 국민을 분열시켜 오지 않았던가! 그 과정에서 ’이데올로기‘와 무관한 수많은 평범한 국민, 개중에 가장 약자인 여성과 아이들도 빨갱이로 몰려 희생되었다.
영화 <지슬>에서 우리는 링컨이 게티즈버그에서 했던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이란 연설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짚어봐야 한다. 물론 그때의 역사적 배경은 차지하더라도 온전한 의미의 국민은 감자를 주식으로 먹는 가진 것 없는 평범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들을 위하는 나라,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는 국가가 우리가 필요로 하는 국가일 것이다.
소년병 정길은 순덕이 박 상사에게 겁탈당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주먹을 불끈 쥔다. 그리고 영화의 끝에서 그는 상사를 가마솥에 넣고 뚜껑을 덮은 다음, 주먹으로 눈물을 훔치며 “형, 이제 제발 사람을 죽이지 마요”라고 부탁한다. 감자의 생김은 둥글어서 주먹에 크기를 비유한다. 그러므로 영화 <지슬>의 감자는 단지 보통 사람과 가난한 끼니의 상징만이 아니라 부당한 압제에 저항하는 ‘불끈 쥔 주먹’이기도 하다. 바로 감자 같은 사람들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권력의 폭압에 저항 할 때, 권력은 부당하게 작동하지 않을 것이다.
* 제주 4.3항쟁은 광복 이후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반대한 남로당 제주도당의 무장봉기와 미군정의 강압이 계기가 되어 제주도에서 일어난 민중항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