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원이 안타로 인정한 타구는 9개였다. 지난 24일 리그 두 번째 경기에서 원피스는 안타 9개로 23점을 얻었다. 홈런은 없었다. 3루타도 없었다. 9개의 안타 중 3개가 2루타일 뿐 나머지 6개는 모두 단타였다. 하지만 원피스는 23점을 얻었고, 이날도 우리는 4회 콜드승을 거뒀다.
지난해 10월 원피스의 첫 번째 공식경기 -연장 10회 끝에 8대8 무승부를 기록한 그 경기-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는 “깨끗한 안타가 없어 아쉽다”는 말을 했었다. 그때 우리팀의 변운섭 감독은 “깨끗하냐 안하냐는 중요하지 않다. 빗맞아도 안타는 안타고, 잘 맞아도 수비 정면으로 날아가면 아웃이다”는 명쾌한 대답을 내려주었다.
뜬금없이 변 감독님의 ‘안타론’을 되새기는 건 안타 9개만으로 23득점을 한 경기의 찝찝함 때문이다. 야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짐작하겠지만 이날 우리는 볼넷만 11개를 얻었고, 몸에 맞는 공도 2개를 얻었다. 더불어 상대 수비 실책도 6개… 안타를 제외한 방법으로 1루를 밟은 것이 열 아홉 번이라는 말이다. 뿐인가 1루든, 2루든 베이스에 진출한 우리 주자는 모두 열네 번 다음 베이스를 훔쳤다. 안타 9개만으로 23점을 얻은 승리도 승리라고 하기엔 찝찝한 무언가가 마음에 남았다.
박민규의 소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팬클럽> 말미에 주인공이 결성한 ‘삼미슈퍼스타즈의 야구를 복원하기 위한’ 팬클럽 -사라진 팀의 팬클럽이기에 스스로 야구를 하는 팬클럽-은 편의상 ‘프로올스타즈’라 부르기로 한 사회인야구단과의 경기에서 20대1이란 처참한 점수 차이로 패한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표정을 찡그린 팀은 20점을 내고 승리한 프로올스타즈였고, 배꼽이 빠져라 웃음을 잃지 않은 팀은 1점을 내고 진 팬클럽이었다.
물론, 소설은 ‘프로’가 된다는 것을 자본주의 사회에 편입되어 삶의 여유와 인간으로서의 아름다움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그려내며 ‘프로가 되지 않은 자’의 순수성과 열정을 찬양하고 있다. 팬클럽의 강령(?)도 ‘치기 힘든 공은 치지 않고, 잡기 힘든 공은 잡지 않는다’는 것이니 무슨 말을 더하랴. 그러니 그들 눈에는 기를 쓰고 20점이나 내는 프로올스타즈의 선수들이 웃길 수밖에.
하지만 순수하게 야구하는 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주말의 달콤한 늦잠마저도 포기하며 기량을 닦고, 시합에 나서는 현실에선 프로올스타즈의 찡그린 얼굴이 더 절실히 와 닿는 것이 사실이다. 프로야구를 지켜볼 때도 양 팀이 엎치락뒤치락하며 승부를 알 수 없는 경기가 가장 재미있듯 사회인야구 또한 그렇다. 압도적인 승리도 승리이기 때문에 기쁘긴 하지만 시합 자체에 대한 재미도, 흥미도 잃게 만든다. 아무리 응원하는 팀이 압도적으로 앞서는 경기를 하더라도 흥미를 잃고 더 이상 지켜보지 않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야구는 결과보다 과정의 스포츠다. 홈런이 아닌 이상, 아니 홈런마저도 투수와 타자 사이의 끝없는 수 읽기와 긴장의 과정이 이어진 결과물이다. 하물며 홈런이 아닌 다른 모든 득점은 말해 무얼 하겠는가. 득점이 가능하도록 하는 모든 생각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모두 하나의 이야기다. 그러니 압도적인 경기는 기승만 있고 전결이 없는 불완전한 이야기가 될 뿐이다.
지더라도 이야기가 있는 경기를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어쩌면 지금 이런 생각도 여태 강한 상대를 만나지 못해 패배를 기록하지 않은 자만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팬클럽이 복원하고자 했던 ‘야구를 통한 자기 수양’은 결국 결과보다 과정의 이야기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라 굳게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