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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3월28일 17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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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빨간 주부의 부엌에서 보는 세상 (1)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 참을 수 없는 틈과 마주쳤을 때

빨간 주부 lotte2102@naver.com

[편집자 주] 글쓴이 '빨간 주부'는 책과 영화를 좋아하는 평범한 주부입니다. 세상을 보는 여러 시각이 있을테지만, 평범하다고 여겨지는 이들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상을 <뉴스민>에 격주로 정기연재를 시작합니다.

단칸방에서 신혼살림을 시작했을 때, 갖고 있던 책을 제외한 살림살이 모두가 새것이었다. 심지어 걸레까지 새 수건으로 썼다. 그때나 지금이나 지나치게 감상적인 나는 살림살이가 하루가 다르게 닳는 것이 두려웠다. 시간이 흐를수록 때가 끼고 얼룩이 생겼고, 그것을 발견할 때마다 예전 같은 상태로 되돌리려 독성이 강한 세제를 사용했다. 그러나 시간 앞에서 변하지 않는 존재는 없었다. 결국, 세월의 녹을 껴안고 사는 것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우리도 사랑일까 – Take this waltz / 사라 폴리 감독>

영화 <우리도 사랑일까>에서 마고의 시누이 제럴딘이 술에 취해 했던 “삶에 틈이 보인다고 모두 너처럼 뛰쳐나가지는 않아! ”라는 대사를 듣는 순간, 새 살림살이 중 가장 아꼈던 접시에 작은 균열을 보고 안타까워했던 그 시절이 생각났다.

 <사랑과 전쟁>식으로 이 영화를 소개하면 결혼 5년 차 주부가 이웃집 남자와 바람나서 착한 남편을 버린 이야기이다. 그리하여 <우리도 사랑일까>는 도입에서 이미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전부 보여줬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치마를 두른 젊은 주부가 쿠키를 굽는다. 익숙한 솜씨로 부엌의 좌우를 왔다갔다하는 그녀는 맨발이다. 익숙한 공간에서 행하는 습관적인 몸짓이다. 오븐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기대 없이 되풀이되는 행위로 심드렁하다. 그녀의 앉는 자리 옆으로 걸어오는 남자의 실루엣이 보인다. 상체는 같은 사람인데 하체의 옷차림이 다르다. 반바지와 긴 바지의 차이가 각각 다른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에서 앞치마를 두르지 않은 모습으로 반복된다. 미세한 차이가 있는 반복이다.

자유기고가 마고는 일로 떠난 여행에서 잠시 스쳤던 남자를 돌아오는 비행기 옆자리에서 재회한다. 그 남자 다니엘은 환승 공항에서 그녀가 휠체어를 탄 모습을 보고 의아해서 그녀에게 묻는다. “왜 그런 연기를 했나요?” 그녀는 그를 외면하다 창피하고 머쓱한 얼굴로 대답한다. “집으로 가는 비행기를 타지 못할까 봐 환승이 두려워요. 무엇보다 두려운 상황에 부닥치는 게 두려워요. 두려움이 두려운 거죠.”

마고의 환승에 대한 두려움은 새로운 사랑에 대한 두려움을 암시하고, ‘새로운’이란 수식이 붙지만 ‘사랑’도 쿠키 굽는 장면처럼 익숙하고 약간의 차이가 있는 반복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즉, 사랑도 일상의 틈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생활에는 권태의 곰팡이가 끼기 마련이다. 관계에도 일상의 반복과 나태가 비집고 들어오면 미처 지각할 수 없는 틈새가 생긴다. 비단 관계만 그럴까. 우리가 실제(reality)라고 믿었던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구조와 제도, 법과 질서, 이데올로기, 도덕, 심지어 오랜 역사성을 가진 관습, 문화에도 구멍이 존재한다. 그것은 교육과 제도로 억압할 수 없는 인간의 욕망과 감정이 만드는 ‘틈’이며 언어로 이뤄진 상징적 질서와 무의식의 ‘간극’을 의미한다. 더구나 ‘사랑’이란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이 얽힌 행위를 ‘결혼 제도’라는 틀에 가둔다는 것은 균열을 내포한 제도적 결함이다.

삶에서 틈을 목격하는 순간, 마고처럼 길을 잃을까 두려워 환승 공항에서 장애인 흉내를 내고 안전하게 비행기를 갈아타거나 제럴딘처럼 견딜 수 없어 술로 메우거나 혹은 중년의 일본 아줌마처럼 ‘욘사마’란 환상에 빠지거나 두려움을 무릅쓰고 집을 나와 반복되는 틈 앞에서 절대 고독을 깨닫는 마고가 되거나, ‘틈’을 메우는 방법은 여러 가지이다.

생각해 보니 나도 마고처럼 ‘두려움이 두려워서’ 가짜 흉내를 냈고 외면했다. 틈을 피하는 가장 안전한 방법은 책 속으로 숨어드는 것이었다. 책 안에서 금기와 터부의 긴장감을 즐겼고, 활자 속에서 정신의 자유를 만끽하면서 자위행위 같은 불온함에 흡족해했다. 책은 상처받지 않고 아프지 않고 짐짓 모른 척 살아가는 가장 수월한 안전지대였으니 말이다. 한마디로 비겁했다.

마고처럼 새로운 반복의 틈 앞에서 쓸쓸함을 느끼고 아무 일 없는 것처럼 사느냐, 책을 집어 던지고 치열하게 매 순간 실제의 틈새에서 고통을 겪느냐, 술로 신경을 마비시키고 그냥저냥 사느냐 각자의 의지에 달렸다. 때로 ‘욘사마’ 같은 ‘환상’이 위안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안개가 걷히면 진실은 여전히 남루하다. ‘환상’이 힘이 되는 방법은 무엇보다 ‘틈’이 보일 때, 질문하는 것이 아닐까. ‘이 틈은 무엇이며, 왜 발생하는 것일까?’를 따져 묻고 그 답을 생각할 때 틈 메우기의 방법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빨간 주부 lotte210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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