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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3월22일 17시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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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포차]평범한 주부들은 어떻게 투사가 되었나
천막농성 74일차, 칠곡경북대병원 해고노동자 강정희, 배기숙씨를 만나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

74일이 지났다. 두 어머니가 투사가 된지. 그들의 표현을 빌리면 ‘노조가 뭔지도,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차이도, 근로자와 노동자의 차이도 몰랐던… 아무것도 몰랐던 평범한 주부’가 투사가 됐다. 강연주(47)씨는 “약해질만하면 병원이 다시 깨우쳐 줍니다. 너희는 노동자다. 너희는 연대하지 않으면 죽는다고 수시로 깨우쳐 줍니다”며 “병원이 우리를 의식화 시켰다”고 말했다.

2010년 11월 개원한 칠곡경북대병원은 지난해 12월 계약기간 2년이 도래하는 비정규직 노동자 6명을 해고했다. 병원은 6명이 해고된 자리에 또다시 6개월 계약직 노동자를 고용했고, 지난 2월에도 2명을 추가 해고했다.

애초에 해고된 이들이 병원장, 사무국장과 면담을 했을 때 그들은 “총정원제 때문에 20%는 해고해야 한다. 여러분들이 열심히 일한 거 다 알고 있지만 재수가 없다고 생각해라. 누군가는 떨어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들이 노조에 가입하고 복직 싸움을 하기 시작하자 “근무평가 과정에서 점수가 좋지 않아서 해고했다”고 말을 바꿨다.

강연주씨와 배기숙(45)씨는 병원의 표리부동함에 아연실색했다. 그렇게 그들은 74일째(22일 현재) 병원 앞 천막농성장에서 복직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 21일 천막농성 73일차에 접어든 그들을 만났다.

▲ 21일, 농성장 앞에서 강연주(왼쪽)씨와 배기숙씨가 피켓을 들고 있다.

“내가 사는 곳에 공공병원이 들어선다니까 한번 일해보고 싶었다”
“나도 이곳에서 할 일이 있다는 사실에 기뻤다”

강씨와 배씨 모두 칠곡경북대병원에서 일하기 전까지만 해도 평범한 주부였다. 아이들이 중학교와 고등학교에 들어가 엄마의 보살핌이 크게 필요하지 않게 돼서야 겨우 일을 조금씩 할 수 있었다.

강씨는 이곳에 오기 1년전 가톨릭대학병원 중환자실에서 업무보조로 일했다. 그곳에서 일 하던 중 칠곡경북대병원이 개원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집 가까운 곳, 처음 개원하는 병원. 강씨는 칠곡경북대병원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간호조무사 자격증을 땄다. 그리고 임시직 채용 공고가 났을 때 응시해 2010년 12월 27일부터 근무를 시작했다.

동생의 가게 일을 종종 봐주며 소일 삼던 배씨도 칠곡경북대병원 개원 소식을 듣고 ‘병원에서 일을 해봤으면 좋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병원에서 일하려면 특별한 자격이 필요하진 않을까 고민했지만, 막상 채용 공고는 특별한 자격을 요구하지 않았다. 2011년 1월 3일 배씨도 칠곡경북대병원의 가족이 됐다.

“내가 사는 곳에 공공병원이 들어선다고 하니까 한번 일해보고 싶다는 생각에 원서를 냈는데 합격이 됐다. 더군다나 핵심부서인 수술실을 배정받았다. 기뻤다. 나도 이곳에서 할 일이 있구나 싶어서 기뻤다” (배기숙)

세 번의 평가와 재계약…무기계약직 ‘전환’ 아닌, ‘신규채용’한다는 병원
같이 싸워주겠다는 노조와 법률 연구 마쳤다는 병원

열심히 일했다. 117만원. 세금을 제하면 100만원도 되지 않는 임금이었지만, 큰 병원의 일원으로 한몫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1년 계약직. 최대 2년이 가능하다고 해놓고 6개월에 한번씩 근무평가하는 것도 개의치 않았다. 근무평가로 함께 일하던 동료가 쫓겨나도 ‘일을 못해서 내보냈다’는 병원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럴수록 ‘나는 그렇게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으로 더 열심히 일했다.

그렇게 세 차례 6개월을 거쳤고 세 번의 평가를 넘어섰다. 2012년 1월 정부는 공공부문의 2년 이상 상시지속 업무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라는 지침까지 내렸다. 이젠 내쫓길 걱정 없이 열심히 일만 하면 되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그해 12월 병원은 무기계약직 ‘신규채용’을 한다며 계약기간 2년이 도래한 이들에게 응시원서를 내라고 했다. 40명이 응시했다. 12월 7일 면접을 봤다. 결과는 14일에 개별 문자로 통보해준다고 했다. 14일, 일하면서도 정신은 온통 휴대폰에 쏠려 있었다. 오전 10시, 문자가 올 시간이 되었지만 휴대폰은 울리지 않았다. 오전 11시, ‘아, 탈락했구나’ 허탈감과 자괴감이 몰려왔다. 이날 40명 중 6명의 휴대폰이 울리지 않았다.

내 탓이었다. 그래서 더 힘들었다. 40명 중 10명을 뽑는 거였다면 그렇게 힘들지도 않았을 거다. 34명을 뽑았고, 6명이 떨어졌다. 내가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었다는 생각은 스스로에 대한 자책으로 이어졌다. 그런 그들에게 ‘당신들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때 저희 손을 잡아 준 것이 분회장(우성환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 대구지부 경북대병원분회장)님이었다. ‘여러분들 잘못이 아니다. 싸우겠다고 하면 같이 싸워주겠다’고 이야기하셨다. 그리고 싸움을 하면 할수록 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병원은 이미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라도 해고할 계획이었다” (배기숙)

“해고된 사람들끼리 모여 앉아 보니까. 전부 빽도 없고, 조용히 일만 한 사람들이더라. 해고해도 별말 없이 나갈 사람뿐이었다. 총무과에서 연구를 많이 했다고 하더라. 우리를 해고해도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변호사 선임해서 연구도 다 마쳤다고 했다. 병원이 이렇게 악랄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강연주)

▲ 강정희씨가 집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한번도 써본 적 없는 단어 “동지”
“‘동지’가 아니면 표현할 수 없어”

지난 1월 8일 병원으로 돌아가기 위한 싸움을 시작했다. 기자회견을 열고 천막농성장을 설치했다. 매일같이 해도 뜨기 전에 일어나 아이들과 남편의 아침밥을 챙겨주고 천막농성장으로 향했다.

오전 7시 20분부터 한 시간 동안 출근선전전. 중식집회. 오후 5시부터 이어지는 촛불문화제… 모든 것이 처음이었다. 칼바람 부는 추운 겨울, 피켓을 들고 거리에 선다는 건 상상도 못해본 일이었다. 왠지 모를 창피함에 얼굴이 빨개졌지만 멈출 수 없었다.

병원은 이들에게 관심을 주거나, 서명운동에 참여만 해도 똑같은 불이익을 주겠다며 직원들을 압박했다. 전날 중식집회장에서 서명을 해주고 갔던 정규직 간호사가 다음 날 찾아와 미안하다며 서명한 이름을 빼달라고 부탁했다. 그래도 멈출 수 없었다. 그들 둘을 위해 매일 같이 함께 해주는 ‘동지’들의 믿음을 배신할 수 없었다.

“동지, 투쟁 이런 말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말이다. 그런데 그 말이 아니면 그분들을 표현할 수가 없다. 우리 둘을 위해서 많은 분들이 오시는데 이건 연대의식이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 아닌가. 나랑 상관없는 일에 일당까지 포기하면서 오는 건설노동자 분들을 보면 동지의식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든다. 병원이 우리를 의식화 시켰다” (강연주)

“‘해고는 살인이다’라는 말을 이해하게 됐다”

73일 동안의 ‘투쟁’은 평범한 주부였던 이들을 많이도 변화시켰다. ‘동지’, ‘투쟁’, ‘철농(철야농성)’이란 단어가 술술 나오는 것부터 세상을 보는 눈도 바뀌었다. 달성군에서 살았던 배씨는 오랫동안 박근혜를 국회의원으로 만들었다. 지난 대선에는 해고의 충격으로 투표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지만, 해고당하지 않았다면, 아마도 박근혜를 찍었을지도 모른다.

“취임식 끝나고 28일에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했다. 그날 국회 앞마당에서 취임식 무대를 철거하고 있더라. 그걸 보는데 정말 속상했다. 그렇게 찍어줬는데 지금까지 박근혜가 한 게 뭐가 있나 생각하니 너무 속상했다. 국민행복시대를 열겠다고 하지 않았나. 그렇게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이게 뭔가. 본인은 청기와 지붕 밑에 앉아서 비정규직의 울부짖는 소리를 외면하고 있다” (배기숙)

강씨는 이제 ‘해고는 살인이다’는 말의 뜻도 ‘살기 위해 거리에 섰다’는 말의 뜻도 알 것 같다. “해고는 살인이라는 말을 이해 못했었다. 해고당하면 다른 곳에서 일하면 되지 않냐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당해보니까 진짜 살인이더라. 한 사람의 영혼, 사회에서 설 자리를 박탈하는 살인이었다. 살기 위해 거리에 섰다는 말도 이제는 이해할 수 있다”

▲ 배기숙씨가 발언을 하고 있다.

“우리한테도 봄은 올 것”…“시련 뒤의 승리가 더 값지지 않겠나”

21일 이들은 주차장 입구에 있던 천막농성장을 병원 건물 바로 앞으로 옮겼다. 임성열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장은 “이사하기도, 투쟁하기도 좋은 날”이라며 더 강한 투쟁으로 해고자 복직을 이뤄낼 것이라고 말했다.

인터뷰를 끝내고 이사를 마친 농성장에서 조촐하게 이사잔치를 하던 배씨는 “투쟁시작하면서 그런 말을 했다. ‘우리한테도 봄은 올 것이다’, ‘해고를 당해 더 힘든 겨울을 나고 있지만 언젠가는 봄이 올 것이다. 봄이다. 꽃샘추위가 있긴 하지만 봄이다.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도 꽃샘추위라 생각한다. 시련 뒤에 찾아오는 승리가 더 값지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이상원 기자 solee412@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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