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대구의 한 아파트에서 10대 소녀 두명이 동반자살한데 이어 3월에는 ‘입시제도가 싫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고교생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지난해 대구교육청은 잇따른 청소년 자살에 자살방지책을 내놓았지만, 교실 창문을 봉쇄하도록 하는 등 비상식적인 수준을 맴돌았다.
올해 들어 대구교육청은 ‘행복교육’을 슬로건으로 내걸고 학생들에게 ‘행복을 가르치기로’ 했다. 우동기 대구교육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학생들이 행복해지고 싶어하지만 행복이 무엇인지 잘 모르기 때문에 행복도 배워야 한다”며 행복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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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시교육청의 행복교육 대구시교육청 홈페이지 홍보배너 | | |
행복교육의 일환으로 초등학교 일선 현장에서는 1년에 5주 이상 ‘행복기’라는 이름으로 1교시 연장 수업이 실시될 것으로 알려졌다. 연장 수업은 학생들이 좋아하는 체육, 음악, 미술 등의 수업으로 채워진다.
알려진 바로는 체육, 음악, 미술 수업을 행복기에 몰아서 실시하라는 지침에 따라 행복기가 아닌 학기에는 체육, 음악, 미술 수업 일수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또, 대구는 올해 전국 최초로 중학교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행복교육을 실시한다. 행복교과서도 따로 있다. 교육청은 이를 통해 청소년 자살을 줄일 수 있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교조 대구지부, “‘꿈, 희망, 행복을 가꾸는 대구교육’…실망적”
“학기 초 학생 상담시간도 없이 방과 후 학교 강요”
하지만 전교조 대구지부 등 교육단체는 대구교육청의 교육정책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19일 전교조 대구지부는 “대구교육청은 2013년 대구교육의 방향을 ‘꿈, 희망, 행복을 가꾸는 대구교육’이라 명명했지만 3월 짧은 시간을 지나면서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고 있다”며 현재의 무한경쟁 입시제도로는 “학교가 더 이상 학교로서의 기능을 포기할 것을 강요”할 뿐이라고 밝혔다.
이어, 이들은 “지난해 잇단 학생들의 죽음 앞에 전교조 대구지부는 적어도 3월 한달은 학생과의 상담을 위해 방과 후 학교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고, 교육청은 마지못해 1~2주간 방과 후 학교를 중단하고 상담 시간을 확보한 적 있다”면서 “하지만 올해는 3월 첫주부터 방과 후 학교를 시행하라는 공문을 내려보내고 토요일에도 방과 후 학교를 강요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상담실적을 쌓느라 학생 전원을 등교시켜 학부모들의 불만을 자초하고, 상담실적을 일일이 전산 입력하는 등 전형적인 전시행정으로 21세기 교육현장을 권위주의 시대의 교육현장으로 되돌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학생 자살 최소 방지책, 전문상담사 미배치 학교 1/3에 달해
교육청, “상담 질 높이려 자격 요건 높여”
지난해까지 192명으로 운영되던 전문상담사도 현재까지 목표(중등 97개교)의 1/3을 채우지 못해 제대로 운영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대구지부는 “대구교육청이 지난해 근무하던 전문상담사를 모두 해고하고 작년과는 다르게 현실성 없이 강화된 자격요건을 제시한 결과 현재까지 배치계획의 1/3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학생들의 제대로 된 상담권을 보장하겠다며 자격요건을 강화시켰지만 결국 3월 중순이 되어서도 1/3이나 되는 학교의 학생들은 상담할 선생님조차 없게 된 것”이라며 교육청을 비판했다.
이어, “지난 15일 경산에서 학생이 자살하고 17일에는 대구에서 학생이 자살했다. 이런 일들을 미리 방지하고자 각 학교에 상담사를 배치하고 있지만 아직 미배치 학교가 많은 것”이라며 “애초부터 인력 수급 계획을 잘못 수립한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고 꼬집었다.
최영오 학비노조 대구지부 조직부장은 “지난해 수급 불가능한 채용 조건을 내세웠다가 채용 조건을 낮추어서 목표치를 채운 교육청이 올해에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구교육청 관계자는 “교과부와 교육청의 궁극적인 목표는 전 학교에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는 것”이라며 “지금은 여건상 일정 부분을 상담사로 채워나가고 있는 것인데 점차 상담사가 아닌 상담교사로 배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지난해 상담의 질적 문제가 거론되어서 올해부터 자격 요건을 강화했는데, 지금까지 미채용된 학교에는 상근자원봉사자를 배치할 계획”이라며 “봉사자로 인해 질이 하락할 수도 있지만 그건 제도를 안착하기 위한 과정이다. 점차 제도가 안착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상담의 질을 담보한다는 명분으로 자격 요건을 강화했지만 일부 학교에서는 이 요건으로 인해 자원봉사자가 배치돼 학생 상담 제도가 명목상으로만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익명의 한 교사는 “매해 학생들이 죽어나가는데 대구교육청은 ‘행복교육’, ‘행복기’ 같은 보기에 그럴듯한 사업만 내놓고, 실제 학생들이 살아가는 학교를 변화시킬 수 있는 시도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며 “알맹이가 문제인데 포장만 그럴듯하게 하려는 위선이고 기만”이라고 일선 현장을 고려하지 않는 교육청의 몽니를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