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주] 거리에서 PC방 찾기가 어렵지 않은 요즘이다. 수없이 쏟아지는 온라인게임의 물결에 디스켓과 CD케이스에 담아 팔던 패키지 게임은 찾아보기 어렵다. 온라인게임이 많은 사람들과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지만, 친구집에 옹기종기 엉덩이를 들이밀고 앉아서 부루마블을 즐기거나 모니터 1대에 얼굴 맞대고 내 턴이 돌아오길 기다리던 삼국지2의 묘미를 느낄 수는 없다. 2주에 한 번 그리 오래지 않은 1~20년 전 패키지 게임을 소개하고, 게임에 담겨진 개똥철학을 나누고자 한다.
10대 시절 대구 교동시장 뒷골목을 찾아 2만원 하는 '백업CD‘를 손에 넣고 나면 세상을 다 가진 듯 행복했다. 10여 가지 게임이 담긴 이 CD는 백업이 아닌 ’불법복제‘였다. 하지만 3~4만원은 족히 넘던 패키지 게임을 사기는 어려운 처지라 동네 구석진 골목 컴퓨터 상점의 백업CD 판매소를 찾곤 했다. 주로 돈을 주고도 구하기 어려운 일본산 게임이 다수였다. 몇 달치 용돈을 모아 국산게임을 패키지 째로 살 때도 있었다. 당시 게임업계에 쌍벽을 이루던 창세기전 시리즈를 만든 소프트맥스와 어스토니시아스토리를 제작한 ‘손노리’의 게임이라면 당연히.
어떤 게임으로 포문을 열까 고민이 많았다. 국산 게임? 아니면 역사 게임? 100여 가지가 넘는 패키지 게임들 가운데 선택이 쉽지 않았다. 지금도 명절 연휴가 되면 1년에 1~2번 서너 시간을 투자하는 게임이 떠올랐다. 큰 인기를 얻은 게임은 아니었으나,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흥미를 유발한 비행경영시뮬레이션 게임 <에어 매니지먼트2>가 그 주인공이다.
삼국지로 유명한 KOEI에서 1995년 발매한 이 게임은 항공사를 경영하는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심시티2000과 같은 시뮬레이션 게임이 인기를 끌던 당시 항공사 경영은 미지의 신세계였다. 사실, 비행기 한번 타보지 못한 처지에서 비행기를 원하는 곳으로 보낼 수 있다는 점은 커다란 매력이었다.
DOS용(지금은 컴퓨터를 부팅하면 윈도우 화면이 바로 뜨지만, 당시 윈도우는 프로그램 중 한 가지에 불과했다. 그래서 대부분 컴퓨터를 부팅하면 검은 화면에 C:\>_ 라는 화면과 만난다. 마우스 커서가 보이지 않는 게임을 하기 위해서도 이것저것 맞춰줄 것이 많았던 불편한 운영체제. 환상적인 그래픽은 상상할 수 없다) 게임이라 조작법과 운영은 단순하다.
먼저 1955년부터 2020년까지의 시나리오를 선택한다. 이 시나리오에 따라 운용할 수 있는 비행기 기종이 달라진다. 다음으로 자신의 항공회사 본사를 어디에 둘 것인지 고른다. 유럽, 북미, 남미, 동아시아, 중앙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 까지 선택할 수 있다. 아무래도 나는 서울을 가장 많이 선택했다. 아, 플레이어는 최대 4명까지 선택할 수 있다. 때문에 이 게임도 친구들과 엉덩이 맞대고 함께한 게임 중 하나였다.
게임이 시작되면 비행 슬롯 확보가 우선이다. 이 슬롯 확보가 돼 있지 않으면 항로를 개설할 수 없다. 항로 개설까지 이루어지면, 운임과 기내식 등급 등을 적절하게 조정해야 한다. 너무 비싸면 탑승률이 저조하고, 너무 싼 값으로 운영하면 100% 탑승해도 적자다. 중요한 것은 이 항로 개척을 하는 것이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다른 항공사가 개척한 항로나 비슷한 항로를 개설해 놓으면 장사가 안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도시마다 여러 관광상품과 건물을 구입해 운영할 수도 있다. 올림픽이 열리는 도시에 항로를 개척하면 수입이 급증하고, 자연재해가 발생한 도시의 항로는 수입이 급감한다.
20년 이내 4개 지역에서 연간 여객수 1위에 등극하면 게임의 승자가 된다. 게임의 그래픽 수준은 요즘 게임과 비교하기조차 민망하다. 게임 발매 당시에는 깔끔한 디자인과 인터페이스, 세부적인 경영 조작 등이 호평을 받았다.
일본의 전략시뮬레이션 게임들이 그러하듯 아기자기하고 세밀한 경영의 손맛을 느끼기 딱 좋다. 항공산업이라는 특수한 소재도 이 게임의 묘미에 한 몫 한다. 철저하게 수익성이 높은 사업을 선택해야 한다는 점, 독과점이 게임 승리의 요건이라는 점은 매우 자본주의적이다. 그렇다고 이 게임을 자본주의 시스템을 습득하고 전파하기 위한 게임이라고 낙인찍기는 과한 느낌이 있다. 미시경제학에서 다루는 수요와 공급이 형성하는 가격 기준과 손익분기점을 설명하는 정도에서 그친다. 노동자의 고용과 노동력의 가치와 분배 부분까지 세밀하게 그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점수를 더 줄 수도 덜 줄 수도 없다.
서른이 다 되도록 비행기 한 번 못 타본 촌놈이지만 항공사 운영의 얕은 지식이나마 알게 해 준 <에어 매니지먼트2>에 고마움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