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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3년03월05일 16시1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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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포차]“남쪽으로 튀어 최해갑처럼 살고 싶다”
녹색당 김수민 구미시의원을 만나다.

구미=이상원, 천용길 기자 solee412@newsmin.co.kr

지난달 21일 저녁 김수민 구미시의원(녹색당, 진미동/인동동)을 만났다. 서너 번 녹색당 행사 또는 탈핵 행사 등에서 스치듯 인사만 나눈 김 의원은 사무실에서 서먹하게 기자를 맞았다. ‘오늘 인터뷰는 조금 힘들 수도 있겠다’고 지레짐작하며 인근 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앉기가 무섭게 그는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이야기를 토해냈다. 32살이란 나이가 무색할 만큼 풍부한 스토리가 그 안에 있었다.

진보정당의 한중간을 누비고, 네 차례 당적을 바꾼 ‘철새 정치인’ 김수민 의원은 “철새가 좋은 거다. 철을 모르는 자들 보다는 좋은 거 아닌가. 더군다나 나는 갈수록 힘든 당으로 갔다”고 너스레를 떨며 옴니버스 영화 같은(그의 표현을 빌리면) 삶의 여정을 털어놓았다.

개혁-> 진보-> 녹색-> 아니키즘… “내 안의 단계론을 걷어내는 작업”
노무현에 대한 절망과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

“옛날이야기 하는게 좀 쑥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다. 변화가 너무 크니까. 옴니버스 영화 같다고 해야 하나…. 내 안에 남아있는 단계론을 걷어내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스스로의 가치관이나 지향은 달라진게 없다. 개혁당 때부터 개체의 자유를 중요시했다. 만약에 또 한 번 정당을 바꿔야 한다면 그땐 ‘흑색당(아나키즘)’을 하고 싶다”

김 의원의 정치적 부침과 변화, 현재 모습 등을 고려해 지극히 주관적으로 그의 삶을 계절에 빗대면, 그는 현재 가을을 살고 있다. 이제 막 벼가 무르익기 시작하는 초가을. 종국에는 지팡이를 휘두르며 흑색당원이기를 꿈꾸는 그가, 스스로 중도보수, 자유주의자라 칭하며 노사모 회원, 개혁당 당원으로 활동했던 시절은 그의 정치사에서 파릇파릇한 봄날이었다.

군 복무 후 민주노동당 당원이 되고 치열한 당내 노선 투쟁 끝에 분당과 진보신당으로 이어지는 시기는 뜨거운 여름이었다. 노무현을 상징하는 색이 봄 개나리의 노란색이고, 진보정당을 상징하는 색이 한여름 뜨거운 태양을 떠오르게 하는 붉은색임을 감안하면 그리 틀린 비유도 아닐 성 싶다.

봄날에 그는 개혁당 학생위원회 인터넷 게시판에 가장 먼저 글을 남긴 것을 기억할 만큼 열성적인 당원이었다. 개혁당 몫으로 노무현 대통령 취임식에 참석한 후 그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입대했다. 그가 한 인터넷 매체에 “노무현 대통령이 1987년 이후 민주 대 반민주, 개혁 대 수구로 이어져 온 점진적 민주화를, 진보 대 보수의 새로운 대결로 바꿔놓는 훌륭한 중도 자유주의자가 되기를 기대했다”고 밝혔듯 노 대통령에게 정치개혁의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군대에서 기대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며 그에 대한 지지의 뜻을 꺾었다.

전투 경찰로 배치되어 인가와 밀접한 파출소에서 근무한 경험은 그를 조금씩 붉게 물들였다. 치안현장에서 주로 만나게 된 빈민, 노인, 농민문제 그리고 가정폭력 현장은 처참했다. 특히 방치되어 은폐된 노인문제는 충격이었다. “시골에 대해 낭만을 가지면 안된다” 그는 단호했고 “그 순간 그전에 했던 활동들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실질적 도움이 되었나 의문이 생기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제대 후 민주노동당 당원이 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다수 선배가 민노당 당원이었고, 2002년에 이미 노무현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이문옥 민노당 서울시장 후보를 지지한 전력(?)도 있었다. 개혁당을 탈당하고 입대할 때 이미 지인들은 그의 민노당행을 점치고 있었다. 또 생활현장에 밀착해 있었던 군 생활은 민노당에 대한 기대를 품게 만들었다.

“군 생활 하면서 감이 왔던 것이 민노당을 지지하는 기층 서민들이 꽤 많았다. 어떤 사람들은 한나라당을 지지하다가 민노당을 지지하기도 했다. 이렇게 기층과 중산층 지식인에게 지지를 받는다면 선거에서 20%는 넘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당내 투쟁에 더 몰입하게 됐다. 이 위험요소만 제거하면 쑥쑥 커갈 당이 보였기 때문에…”

“당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위기의 민주노동당 그리고 진보신당

그가 민노당에 입당할 무렵 이미 민노당은 내홍을 겪고 있었다. 자주파와 평등파의 내부 갈등은 격화되어 있었고, 일심회 사건, 2차 북 핵실험은 갈등에 불을 지폈다. 이때부터 탈당을 고민하기 시작한 그는 2007년 민노당 대통령 후보 경선을 통한 당 혁신에 마지막 기대를 걸었다.

노회찬 후보 캠프에서 주로 네거티브 공세에 대응하는 일을 했다. 하지만 경선을 치를수록 어지럽게 깨지고 있는 당의 속살이 보이기 시작했다. 경선이 끝나고 뒤풀이를 하는 자리에서 이용길 당시 선대본부장은 그에게 건배사를 제안했다. “당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 당 혁신을 뛰어넘어 재창당 수준의 당 변혁을 그리던 그의 건배사였다.

“당이 위험하다는 판단이 들었다. 네거티브 공세를 벌이는 이들이 싫었던게 내가 지지하는 사람을 비난하는 것 때문이 아니라 당이 지금 이 지경인데 어떻게 이런 짓을 할 수 있나 싶어서였다. 그때부터 경선이 문제가 아니라 새판을 짜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좌로는 사회당, 우로는 시민단체의 비교적 왼쪽에 있는 이들을 아우르는 새로운 판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의 과정은 이미 익히 언론을 통해 알려진 그대로다. 2008년 대통령선거 패배에 따른 책임론으로 격화된 당내 갈등은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이 실패하면서 분당 수순을 밟았다. 김 의원은 조승수 전 의원이 탈당할 무렵 함께 탈당해 진보신당에 합류했다.

구미 최연소 시의원, 첫 의정 활동의 어려움
임기 시작을 KEC 문화제서 노래 부르며 맞아

뜨거웠던 여름은 2009년이 되면서 서서히 시원한 가을을 맞을 준비를 했다. 정파투쟁에 지칠 만큼 지치고, 당내 명망가들에 대한 불신으로 진보신당 마저도 탈당한 그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했다. 이미 2007년 경선이 끝났을 때 친한 친구들과 직업을 갖고 각자의 자리에서 노동운동을 하자는 결심을 하기도 했었다. 라디오나 방송 PD, 작가를 준비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마침 2010년 지방선거가 다가오고 있었고, 고향에 내려가 선거를 도와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처음엔 출마할 생각까진 없었다. 후보가 없으면 내가 나간다고는 생각했지만, 실제로 구미에 내려가서 선배들 앞에서 내가 출마한다고 하면 선배들이 압박을 받아서 출마할 거란 생각을 했다. 그런데 결과적으로 그 작전은 실패했고, 내가 출마하게 됐다” 그렇게 그는 만 27세 11개월, 구미 최연소 시의원이 되었다.

애초 대중활동가보다는 실무자로 활동해온 그였기에 초기 의정활동은 난관의 연속이었다. 무소속에 젊은 그를 만만하게 보는 시선을 걷어내는 일이 급선무였다. “상공회의소에서 당선자 리셉션을 하는데 안 갔다. 차라리 대놓고 민주노총 활동을 했다면 정체성이 뚜렷하니까 갈 수 있었을 텐데, 한 치라도 오해하게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임기 시작과 함께 직면한 시의원의 한계도 무력감을 안겨줬다. 그해 7월 1일 임기 시작일에 그는 첫 의정활동을 KEC 문화제에서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시작했다. 바로 전날 KEC 여성 기숙사에 용역이 침입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하지만 노사문제에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었다. 면목이 없었다. 발언 기회를 주며 마이크를 넘겨줘도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정치인이 노사문제에서 할 수 있는게 얼마나 되겠냐고 제3자 입장에서는 말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막상 당사자가 되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없었다. 진전시킬 수 있는게 없으니까 나중엔 그저 머릿수나 하나 보태러 집회에 가는 느낌이었고, 한참 동안 농성천막에 갈 수 없었다”

두 달 정도 지나고부터 기지개를 켜기 시작했다. 본회의 5분 발언 시간을 활용해 특정 사안에 대한 주도권을 잡으면서 의회에서 입지를 다졌다. 특히 대형마트, SSM 규제에 대한 의제를 먼저 선점하면서 중소상공인과 원내 같은 뜻을 가진 의원들과도 친분을 쌓을 수 있었다.

구미 단수사태를 보며 녹색당에 관심
‘구미’지역주의가 아닌 ‘구미지역’주의를 위한 주민정당 활동

그는 지방선거를 치루면서 이미 기존 정당에는 다시 들어가지 않겠다는 말을 공공연하게 했다. 진보신당까지 탈당한 마당에 마땅히 들어갈 수 있는 정당이 있지도 않았다. 젊은 무소속 의원을 눈독 들이는 이들에게 명확한 태도를 보이기 위해서라도 정당은 필요했지만 마땅한 정당이 없었다. 그때 마침 녹색당이 창당을 준비하고 있었다. 이미 민노당을 탈당한 ‘새로운진보정당운동’의 슬로건이 “보다 적색으로, 보다 녹색으로”였음을 상기하면 녹색당에 대한 이질감도 크지 않았다.

“다들 후쿠시마 사태를 녹색당에 대한 계기로 이야기하는데, 저는 구미 단수사태를 겪은게 큰 계기였다. 허무하다고 해야하나, 도시문명이 그렇게 허무하게 수돗물이 안나와서 마비 돼 버렸다. 녹색의 고민은 진보신당을 하면서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큰 이질감은 없었다. 또 하나의 내 안의 단계론을 걷어내는 작업이었다”

녹색당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그를 보는 개인적 느낌은 ‘익숙함’, ‘원숙함’이었다. 그것이 그가 지금 정치사의 초가을 맞고 있다고 본 이유이기도 하다. 녹색당과 진보신당의 관계, 녹색당에 외부 시선에 대한 견해, 앞으로의 정치적 행보를 이야기하는 그에게서 이제 곧 수확을 기다리는 농부의 설렘 같은 것이 느껴졌다.

인터뷰 말미에 그가 가장 강조하며 한 이야기는 주민정당에 관한 구상이었다. 구미를 하나의 체제로 두고 구미에 맞는 정치세력을 구성하는 것. “‘구미’지역주의를 꺾고, ‘구미지역’주의를 해야 한다. 해석투쟁이라고 볼 수 있다. ‘구미’지역주의자들은 구미를 사고 팔아먹고 이용하고 있다. 그것이 아니라 진짜 구미를 발견하고 느끼고 참여하는 것이 구미주의, ‘구미지역’주의다. 이를테면 구미는 젊은 사람이 많고, 젊은 부모가 많다. 출산율도 좀 된다. 그렇다면 진보, 보수를 떠나서 보육정책이 핵심이 돼야 한다”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그는 재선도 주민정당을 위한 가능성으로 열어두고 고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본인보다 더 나은 사람이 있다면 양보하고, 그의 출마가 주민정당을 꾸리고 만들어가는데 더 필요하다고 판단된다면 나설 계획이다. 아직 분명한 계획이 없다.

“올해 가장 큰 목표는 새로운 정책을 발굴하지 않는 것이다(웃음). 사실 임기 시작할 때 해놓은 약속도 많아서 그것을 지키는데도 시간이 많이 필요할 것 같다. 더해서 주민정당을 위한 조직화, 세력화도 해나갈 생각이다. 구미의 중장기적인 방안을 위해서 활동가들을 발굴하고 역할을 분담하는 일이 필요하다”

“<남쪽으로 튀어> 최해갑처럼 살고 싶다”

만약 3, 40년이 흐른 뒤 백발성성한 노구로 지팡이를 휘두르며 “지배는 필요없다. 개입도 하지마라”고 외치는 그를 본다면 그가 겨울에 접어들었음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영화 <남쪽으로 튀어> 최해갑처럼 살고 싶다. 개인적으로 아나키즘적 성향이 강한데, 지금까지 현실에 맞춰서 다듬어 온 거라 할 수 있다. 만약 또 한번 당을 옮긴다면 아나키즘 정당, 흑색당을 하고 싶다. 아나키즘은 노인들이 해야 제맛이다. 청년이 아나키즘을 이야기하는 것만큼 건방지고 손쉽고, 책임감 없는 것도 없는 것 같다. 내가 나이가 들면 지팡이를 휘두르면서 흑색당을 하고 싶다”

그래도 일단 녹색당원, 구미주의자, 주민정당으로 요약되는 그의 가을은 추수할 것이 많아 꽤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가난과 악화된 건강으로 50대임에도 치아를 모두 잃은 ‘이웃’의 이야기를 하며 언뜻 비친 눈가의 물기가 그렇게 말했다.

구미=이상원, 천용길 기자 solee412@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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