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브리엘 페리
엘뤼아르 (1895-1952)
자기를 지키는 수단으로는
생을 향해 벌린 두 팔밖에 없었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폭력을 증오하는 길밖에 다른 길을 몰랐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죽음에 대하여 망각에 대하여
끊임없이 투쟁하던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원한 모든 것
눈 속 깊이 마음속 깊이
행복은 빛이 되고
정의가 땅 위에 실현되는 것
그것을 우리도 원했고
아직도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살게 만드는 여러 말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순수한 말들입니다.
열정이라는 말, 믿음과
사랑과 정의라는 말, 자유라는 말
어린이라는 말, 귀여움이라는 말
그리고 몇 개의 꽃 이름과 몇 개의 과일 이름.
용기라는 말 들춰낸다는 말
형제라는 말, 동지라는 말
그리고 몇 개의 나라 이름과 마을 이름
몇 사람의 여자 이름과 친구들의 이름
그 이름 위에 이제 페리의 이름을 덧붙입시다.
페리는 우리를 살게 하는 그 모든 것을 위해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의 이름을 친구처럼 부릅시다.
그의 가슴이 총탄에 뚫렸지만 그의 덕분으로 우리는 서로 잘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의 이름을 친구처럼 부릅시다.
그의 희망은 살아 있습니다. (오생근 역)
1. 프랑스 정치인이자 언론인인 레지스탕스 가브리엘 페리가 1941년 독일군에 의해 총살당했다는 사실은 중요치 않다. 그의 이름이 붙은 이 시가 여전히 지금 여기에서 나를 울게 한다. 가브리엘 페리는 고유 명사가 아니라 일반 명사. 많은 페리들이 여기 있고 여기 있었다. 나는 지금 세상을 떠난 두 노동자의 영정 사진을 보고 있다.
2. ‘세상을 바꾸기 위해 인생을 바꾸어야 한다’는 랭보의 테제와 ‘세계를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변혁해야 한다’는 마르크스의 테제를 결합하고자 한 초현실주의자 엘뤼아르의 시간은 어디를 어떻게 관통하고 있는 것일까?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세계를 변혁하기 위해서 인간은/ 뭉쳐야 하고 희망하고 투쟁해야 할 필요가 있다>라고 쓰는 공산당 당원인 엘뤼아르에게 시는 과연 화해로운 것일까?
2-1. 시의 장소는 자기 위안도 아니고 분노도 아니고 슬픔도 아니고 사상은 더더욱 아니다. 시는 계급상으로 부르주아에 더 가깝다. 사람들은 시인에 대해 그리고 시에 대해 오해하고, 안타깝게도 시인들도 자기 자신을 과도하게 오해한다.
2-2. 그럼에도 엘뤼아르가 동의하는 것처럼, 나도 랭보의 말에 동의한다. 시인은 떠도는, 거지 같은, <보는 자(見者)>이다.
3. <사람이란 서로의 말을 듣고/ 서로 이해하고 서로 사랑하도록 만들어졌으며/ 그 아이들은 자라서 아버지가 되는 법이고/ 불도 없고 집도 없는 아이들이라면/ 인간과 자연과 그들의 나라를 다시 건설하리니/ 모든 사람들의 나라/ 모든 시대의 나라를> (엘뤼아르. 「죽음 사랑 인생」. 오생근 역) 그리고 그 시간은 시인의 시간이다.
3-1. 그러나 이 이념은 그 자체로 보자면,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발리바르의 용어로 ‘이론적 아나키즘’이다. ‘모든 사람들의 나라/ 모든 시대의 나라’는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이념이지만 그것이 당장 우리 발 앞에 떨어질 것이라고 믿거나 설교하는 것은 천년 왕국설의 재탕이고 정치의 부재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는 달리기할 때 머리는 빨리 달리고 싶은데 다리는 따라가지 못해서 넘어지는 ‘이론적 꽈당’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시인의 머리는 수 십 년 수 백 년을 먼저 달리고 있다. 그것은 시인의 임무이기도 하다. 그러나 그것을 울퉁불퉁한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은, 그것을 들고 2차원의 만화 평면에서 3차원의 실제 세계로 뛰어드는 것과 같다. (근래 몇 몇 시인들이 이 ‘이론적 꽈당’으로 실제의 세계의 돌부리에 걸려 넘어졌다. 지나가는 김에 사족. 그 중 한 시인의 「타는 목마름으로」는 엘뤼아르의 시「자유」의 패러디라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좀 미달한.)
3-2. 엘뤼아르는 한 산문에서 <예술가가 창조에의 욕망을 느끼게 되는 것은 정확히 말하여 그를 에워싸고 있는 모든 것과의 일상적인 불일치로부터>라고 말했다. 시인은 불화를 일으키는 자이고 편안함을 불편해하는 자이고 완결성을 깨트리는 자이다. 그것이다. 그리고 그것뿐이다. 그러므로 보고, 냄새 맡고, 불편해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아닌 시인에게서 세속의 자리를 박탈하라.
4. 시는 내 밖의 것도 내 안의 것도 아니다. 동시에 시는 시 이전 혹은 시 이후일 뿐.
4-1. 시인 엘뤼아르의 시간이 사람들의 죽음을 들여다보고 있는 나를 정확하게 관통하고 지나갔다. 나의 시간이 그 시간에 봉합된다. 시의 힘. <이제 그의 이름을 친구처럼 부릅시다./ 그의 희망은 살아 있습니다.>
*P. 엘뤼아르
초현실주의 운동의 창시자 가운데 한 사람이며 20세기의 대표적 서정시인이다. 제1·2차 세계대전, 스페인 내란, 독일군 점령, 레지스탕스, 공산당 투쟁, 연애, 시사 동향, 만남, 우정, 꿈 등 자신의 인생 경험을 소재로 작품을 썼다.
1919년 앙드레 브르통, 필리프 수포, 루이 아라공 등 초현실주의 시인들과 알게 되어 1938년까지 매우 가깝게 지냈다. 첫 번째 주요작품인 〈고통의 수도 Capitale de la douleur〉(1926) 에서는 새로운 언어기법을 실험했고, 꿈과 현실의 관계에 대한 이론을 적용했으며, 의식의 흐름을 자유롭게 표현했다. 뒤이어 〈대중의 장미 La Rose Publique〉(1934)·〈풍요로운 눈 Les Yeux fertiles〉(1936) 등을 발표했는데, 일반적으로 이 3권의 책에 실린 시들은 초현실주의 운동이 낳은 가장 탁월한 작품으로 평가된다. 또한, 이 시기에 앙드레 브르통과 함께 〈무염시태(無染始胎) L'Immaculée Conception〉(1930)에서 정신불안증세의 진행과정을 연구했다.
스페인 내란 뒤에는 초현실주의 실험을 그만두었다. 후기 작품에는 정치적 투쟁 성향이 잘 나타나 있으며, 독재를 반대하고 행복을 추구하는 기본 입장이 더 확고해졌다. 1942년 공산당에 들어갔으며, 인간의 고통과 동지애를 다룬 작품〈시와 진실 Poésie et vérité〉(1942)〈독일군의 집합소에서 Au rendez-vous allemand〉(1944)·〈살 만한 가치 Dignes de vivre〉(1944) 등은 제2차 세계대전 중 비밀리에 유포되어 레지스탕스의 사기를 높였다. 특히 〈시와 진실〉에 수록되어 있는 그 유명한 시〈자유 La Liberté〉는 프랑스의 대표적인 저항시로 알려져 있다. 전쟁이 끝난 뒤 발표한〈모든 것을 말하라 Tout dire〉(1951)·〈불사조 Le Phénix〉(1951) 등은 시어가 간결하고 표현이 생생하여 프랑스의 대표적 서정시로 꼽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