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한(歲寒)
눈은 그쳤고 밤은 계속됐고
이따금 발밑이 위태로운 세상을
건너는 다리들이 보였다
갈데도 없고 오라는 데도 없는 신산한 시간
취하지 않는 술을 마시며 다들 별 말이 없다
윙윙 거리는 바람을 불러 세워 말이라도 붙여보고 싶었으나
언제나처럼 바람은 무심히 지나 갈 뿐 말이 없었다
얼마 남지 않은 대선이며 전 세계적 경제위기에 대해선
다들 뭐라 뭐라 할 입장도 아닌지라 자꾸 술잔만 채울 뿐 이었다
가끔 실없는 농담을 하면 가끔 실없이 웃는 게 전부인
이 무료하고 못난 술자리를 함께 지키고 있는 담배연기 사이로
누군가의 죽음에 대해 혹은 누군가의 암 투병에 대해
누군가의 입에서 하얀 입김과 함께 터져 나온 한숨이 선명하게 빛났다
그리고 아프게 한숨과 함께 몇 순배의 술잔이 돌고 돌면서
다들 사는 게 왜 이럴까 답이 없는 질문들을 내뱉었다
쌓이지도 못하고 흩날리지도 못한 눈들을 머리에 이고 있던
말라비틀어진 나무는 어디서 밤을 견디는지 궁금하기도 하였으나
당장 돌아갈 차비와 계산해야 할 술값 걱정이 먼저였던지라
우리는 먼지뿐인 주머니를 뒤적일 뿐 이었다
각자의 집으로 터벅 터벅 돌아갈 멀고 먼 겨울이었다
눈은 그쳤고 밤은 계속됐고
*밖에는 또 눈이 온다. 그야말로 펑펑 눈이 온다. 눈을 맞으며 걸어가는 사람들의 뒷모습이 안쓰럽다. 울산에선 용역깡패와 사측 관리자들에게 두들겨 맞은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핏빛 절규가 묻어나온다. 다시 눈이 온다. 어찌해볼 수 없이 눈은 쌓이고 쌓인다. 한진중공업에서 날아온 비보, 해고 이후 복직 그리고 또 다시 강제무급휴직에 끝내 스스로 목을 메고 서럽고 서러운 세상을 등진 한 노동자. 눈이 오는 거리에서 눈을 맞으며 눈물을 흘리는 세상에서 대통령선거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아니다. 누가 누구를 욕하고 원망한들 무슨 소용인가? 대통령선거가 어떻게 되었든 여전히 치욕의 세상은 영원할 것이다. 민주와 반민주의 구도는 이제 사망했다. 김남주 시인이 사상의 무게에서 피력했듯 세상은 계급의 눈으로 계급의 심장으로 뛰어야 한다. 계급의 눈을 가지지 못한 운동은 계급의 심장을 잃어버린 운동은 반드시 저들에게 패하고 말것이다. 다시 눈이 온다. 싸륵 싸륵 쌓이면서 눈은 계속해서 온다. 눈은 산산히 부서지면서 흩어지면서 세상 속으로 제 온몸을 던질 뿐 절대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2012년 다들 고생하셨다. 2013년도 아마 모르긴 몰라도 고생 많이 하셔야 할것 같다. 그래도 죽지말고 살아서 싸우시라. 그 싸움의 끝이 패배일지라도 제발 죽지마시라.
신경현(시인, 노동자) 그는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대구 성서공단에서 다시 용접일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의 삶인 노동의 노래를 뉴스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