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금속 제조업체로 위장한 살인청부회사의 영업2부 과장 지형도(소지섭). 그의 인생에 회사는 전부다. 살인청부업자로 10여년을 일하면서 그는 단 한 번도 실수하지 않은 냉정한 우수사원이다. 하지만 회사의 명령을 처음으로 어긴다. 알바생 훈(김동준)을 살려둔 것이다. 그 후 훈의 어머니인 유미연(이미연)을 만난 후 회사 생활에 회의를 느끼기 시작한다. 미연과 만남으로 지금까지와는 다른 생활을 꿈꾸기 시작하고, 그러던 중 그의 실수가 회사에 알려진다.
형도의 회사에서 자발적 퇴사란 없다. 해고만이 있을 뿐. 해고는 곧 죽음이다. 회사와 싸우던 와중 미연이 죽는다. 이제 형도는 회사와 한 판 전쟁을 시작한다. 형도의 승진을 축하하며 함께 술을 마시던 수십 명의 동료들은 이내 그에게 총을 겨눈다. 형도는 살아남는다. 그것으로 영화는 끝난다.
러닝타임 내내 슈트를 빼입고 나온 소간지 소지섭, 40대의 나이에도 매력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이미연. 일 대 수십의 싸움이 벌어지는 총격전과 액션. 소지섭과 액션 없이는 별 볼일 없어 보이는 영화다. 이야기 전개가 치밀하지도 않다. 살입청부회사라는 재미난 소재를 가지고 이 정도 영화를 만드는 데 그쳤다는 건 아쉬운 일이다.
하지만 청부살인을 저지르는 이들의 자연스러운 일상생활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은 왜일까. 이 회사 직원들에 죽음을 당하는 이들은 영화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인지, 왜 죽어야 하는지, 누가 살인을 부탁했는지. 회사원들이 죄책감 없이 맡은 일을 하는 밋밋한 장면만 지나간다. 살인을 하는 건 일일 뿐이다. 수많은 직업들 중 하나다. 먹고 살기 위해 일하는 거다. 회장의 명령이 곧 일이며, 중간관리자인 이사(곽도원)가 이들에게 업무를 전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일은 먹고 살기 위한 수단이다. 살인청부라는 직업은 극단적인 표현일 뿐.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일은 세상에 널려있다. 무기를 생산하는 군수 공장, 실험용 쥐들을 생산하고 실험하고 죽이고. 가까이 핵발전소. 이 일을 수행하는 '회사원'을, '노동자'를 쉽게 욕할 수 있을까. 우리가 하는 일은 늘 죽음을 곁에 두고 있다. 청부살인이 아니더라도.
함께 일하던 동료들도 해고 명령이 떨어지자 즉각 총을 겨눈다. 자신의 일자리를 뺐기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어디서 자주 보던 장면 같지 않던가. 회사의 부당한 대우에 저항하거나, 노동조합을 만든다거나 하면 회사는 동료를 먼저 내 보낸다. 구사대. 이들 자리도 곧 위태해진다.
회사는 처음부터 지시한다. 알바생은 쓰다가 죽여버리라고. 비정규직이기 때문이다. 정직원이 되고 싶다고, 윗선에 잘 이야기 해 달라고 부탁하지만 소용없다. 이 알바생을 살려둔 회사원 소지섭은 알바생과 연대한 죄로 해고를 당한다. 해고는 곧 살인이라는 직설화법이 판타지인가? 영화 <회사원>은 '해고는 살인'이라는 구호를 조용하게 가둬버리는 세상보다 밋밋하지는 않다. 판타지는 청부살인 회사의 계획을 경영위기를 호소하며 해고를 두둔한 세상에 있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