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순을 훌쩍 넘긴 아버지와 함께 밥상머리에 앉으면 가족들은 슬그머니 TV 프로그램을 돌려 버리거나 TV를 꺼버립니다. 혹시라도 뉴스에 정치 이야기가 나와 오랜만에 마주앉은 가족들의 식사자리가 고성과 냉소로 엉망이 되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젊은 나이에 일할 권리마저 빼앗긴 장애인 우리 아버지는 누가 강요하지 않지만, 조선일보를 보고, 9시 뉴스 시간은 절대 건너뛰지 않으며, 새로 생긴 종편방송을 시청하는 것으로 하루일과의 대부분을 채워가고 있습니다.
마흔 중반의 나이에 직장을 쫓겨나듯 나와 늘 하루하루를 걱정하며 살았고 가족의 반이 비정규직으로 하루하루의 노동을 팔아먹고 있지만, 아버지는 철탑 꼭대기에 목숨을 매달거나, 거리에서 생명을 위해 싸우는 비정규직 투쟁을 이야기하면 손가락질을 할 뿐입니다. 변변한 여행 한 번 떠나지 못하고 매달마다 약값을 걱정해야 하지만, 이동권과 건강권을 외치는 장애인들의 투쟁은 그저 패배자나 3류 인생들의 생떼 정도로 여기십니다. 또 아버지는 손자들의 기죽은 모습에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면서도 체벌은 아이를 위한 것이라는 폭력 교사들의 변명에 고개를 끄덕입니다.
아버지의 삶은 늘 처절했지만 그 외침과 분노는 한 번도 당신이 머문 방을 넘어 나오지 못했습니다. 분노를 달래는 것은 그저 독한 알코올과 세상에 대한 독설뿐이었습니다. 처절한 아버지의 절규를 나는 함께 가슴 아파했지만, 이제는 문을 열고 그 처절함과 단절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처절함과 단절하지 않고는 우리는 내일을 이야기할 수 없고, 또 오늘 행복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선택할 수 없는 차별에 시달리고, 교육과 노동, 그리고 죽음의 순간까지 우리는 수많은 차별 속에서 신음하고 아파합니다. 구사대의 트라우마로 자살한 노동자의 죽음은 외면되고, 비리와 폭력의 삶을 산 어느 기업회장의 부고는 유명 신문의 앞장을 장식하는 것을 보면 죽음 이후의 삶 역시 우리가 겪었던 차별의 멍에를 벗어날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늘 우리의 처절한 비명은 우리의 방을 가득 메우고 있을 뿐입니다.
하지만 그 처절함과 단호한 단절을 선언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TV를 보고, 신문을 보며, 수음하듯 나의 처절함을 달래며 나의 방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처절함을 단절하고, 간절함을 가슴에 새겨 나가는 것입니다.
처절한 절규는 혼자의 몫이지만, 간절한 바람은 모두의 내일일 것이기에 이제는 그 처절함의 문을 박차고 나와 간절한 바람의 길에서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합니다.
비정규직 노동자와 이주노동자, 그리고 장애인이 손을 맞잡을 때, 학생과 농민, 성 소수자가 가슴을 맞대고 함께할 때 우리의 절규는 간절한 기도가 되어 우리의 삶을 바꾸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언제까지 상처 난 짐승마냥 방안에서 스스로의 상처만을 핥으며, 그냥 울기만 하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요. 저 방 너머의 누군가가 나의 삶에 개입하지 않고 내 삶이 그/녀들의 삶에 들어가 앉지 않을 때 우리는 다시 TV에 길들여지고, 신문의 노예가 될 것이 뻔한데...
늙은 아버지의 노래가 나의 미래가 되지 않는 것. 나의 절규가 내 아들의 삶의 변명이 되지 않는 것. 그것이 나의 간절한 바람이라면 이제는 발길을 멈추고 서서 그/녀들의 손을 잡고 간절한 기도를 올려야 할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