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오랜만에 대학 선배들과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이제 마흔을 훌쩍 넘긴 80년대 학번과 40줄에 접어든 90년대 초반 학번과의 술자리에서 결국 목소리를 높이고 말았습니다.
한 선배는 지금의 대학생들은 이기적이라 운동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이며, 예전 민주화를 위해 싸웠던 선배들에게 감사해야 한다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 민주화를 훈장처럼 단 몇몇은 정치인으로 자신의 꿈을 키우고, 마신 소주병보다, 던진 화염병이 많았으며, 이제 중간 관리층 샐러리맨으로 사는 그들의 말에 동의 할 수가 없었습니다.
많은 언론에서 이야기 합니다. 1980년대 엄혹한 시기를 지내며 민주화를 이루어 낸 그/녀들이 다시 경제민주화를 외치고 있고, 언제나 정권을 바꾸는 중심에 있다고... 현재의 대학생과 20대의 젊은 세대들은 자기중심적인 성격이 강하고, 정치에 냉소적이라서 정치 어젠더를 설정하지 못하고, 매스미디어에 끌려가고 있다고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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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87년 6월 항쟁 당시 [출처 :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 | |
1980년대가 그리고, 1990년 초반은 전공서적이 아닌 책을 읽어도, 밤을 새워 술을 마시고 4년을 보내도, 졸업만 하면 취직이 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취직을 하면 자신이 공부하던 자유, 평등, 연대의 꿈은 그저 추억이나, 낭만으로 접어버리고 중간 관리자로 중산층을 꿈꾸며 살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대학생들은 어학과 학점 그리고 높은 등록금에 아르바이트까지 그/녀들의 어깨를 짖누르는 현실 속에서 질식할 듯 하며, 어렵사리 졸업하고 나면 반은 청년백수가 되고, 취직한 반 마저 비정규직의 나락에 떨어지는 현실 속에서 하루는 꿈꾸는 것이 아니라 하루는 견디며 살아가고 있음을, 운동을 글로 배운 386세대들이 알기나 할까요? 잠시 나간 노학연대의 경험으로, 피터지는 아르바이트 노동의 서러움을 알 수 있을까요...
386 그/녀들의 삶은 분명 순수하고 열정적이었습니다. 그리고 일부의 희생으로 우리는 표면적 민주주의의 모습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중산층과 중간관리자가 되어버린 스스로의 삶을 포장하기 위하여 민주주의의 완성을 외치거나, 진정한 노동의 삶을 살아가는 세대에 대한 냉소를 만들어 낸다면, 그/녀들이 만들어낸 그 민주주의마저 차라리 잘라버리고 단절하는 것이 옳은 것이 아닐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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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5월 12일 열린 대학생노동인권감수성학교에서 참가자들이 대학생 생활임금을 작성해 설명하는 시간을 갖고있다. | | |
그/녀들은 민주주의가 완성되었다 외치지만, 아직 이 땅 노동자의 반은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비정규직이고, 100만이 넘는 이주노동자는 노예계약에 허덕이고 있으며, 집에 불이 나면 장애인은 그저 죽음 밖에 선택할 수 없습니다. 또한, 여성들은 가사와 육아 등 이중의 보살핌 노동에 끊임없이 노출되고, 수많은 청년들은 빚쟁이가 되어 대학을 졸업하고, 졸업 즉시 청년실업의 늪에 빠져 허덕이고 있습니다.
이런 것이 그/녀들이 완성되었다고 하는 민주주의라면 나는 사전에서 민주주의라는 이야기를 지워버리고 싶습니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정치제도로서의 민주주의는 단지 투표인 명부에 자신의 이름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우애롭게 지내는 그러한 국민이 되는 것 그것이 진정한 민주주의이기 때문입니다
엄혹한 시기는 아직 끝이 나지 않았고, 아직 민주주의는 완성이 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청년들은 386이라 불리는 그/녀들이 그렇게 꿈꿨던, 현장을 관념이 아닌 몸으로 느끼고 몸으로 깨쳐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욕하지 말고, 몰아세우지 말기를 바랍니다.
이 땅 청년은 아직 끝나지 않은 민주주의의 꿈을 향해 어깨 걸고 함께 할 그대들의 동무일 뿐, 그대들에게 훈육되어야 할 대상도, 그대들이 만들어 놓은 민주주의를 망치는 훼방꾼도 아닙니다.
그대들의 삶보다 언어가 화려하지 못하지만, 그/녀들의 삶은 누구보다 치열하고, 당신의 미래보다 찬란하지 못하지만, 그/녀들이 만들어갈 미래가 우리의 내일입니다
그/녀들은 그렇게 존재하는 것만으로 빛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