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저녁 7시 대구가톨릭근로자회관에서 비정규직 없는 일터와 사회를 꿈꾸는 이들의 토크콘서트가 열렸다. 민주노총 대구지역본부, 우리복지시민연합 등 대구지역 13개 시민사회노동단체로 구성된 ‘비정규직 없는 대구지역만들기 공동행동(공동행동)’이 주최한 토크콘서트는 박현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지회장, 이계옥 의료연대대구지부 민들레분회장이 초대손님으로 초청되어 비정규직 노동자의 일상적 삶의 고통과 바람을 나누고자 마련됐다.

이계옥 분회장은 경북대병원 청소노동자로 올해 병원 청소노동자로 구성된 노조를 결성하게 된 계기와 과정, 이후의 이야기를, 박현제 지회장은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2003년부터 지속해온 불법파견 정규직화, 간접고용 철폐 싸움 이야기를 풀어냈다.

경북대병원 청소노동자 노동조합, 민들레분회
“노조 세우는 과정이 첩보작전, 독립운동을 하는 것 같았다”

▲ 이계옥 분회장(오른쪽)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경북대병원에서 3년째 청소일을 하고 있다는 이계옥 분회장은 “노동조합 세우는 일이 첩보작전, 독립운동 하는 것 같았다”며 “사람으로 대접받고 싶었고, 무시당하는 것이 너무 화가 나서 노조를 설립하게 되었다”고 말해 청중으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이 분회장이 노조 설립을 결심하게 된 결정적 계기는 올해 초 동료 3명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해고당하는 사건이 발생해서였다. 셋 중 한명은 노조 활동 경력을 문제 삼은 관리자가 퇴직을 종용했고, 다른 두 명은 사소한 트집을 잡아 해고 통보를 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한 죄밖에 없는데, 업체가 바뀔 때마다 동료가 해고당하는 일을 당하는 게 화가 났다”며 이 분회장은 노조를 세우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노조를 세우겠다는 결심을 한 이 분회장은 다른 동료 10여명과 설립 작업을 시작했다. 교육도 받아야 했고, 사람도 만나야 했다. 그럴 때마다 이 분회장은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작전을 세우고 움직였다. 동료들과 만날 장소를 미리 정해놓고 따로 흩어지기도 하고, 택시를 타고 일부로 빙 돌아서 약속 장소를 찾아가기도 다반사였다. “동료 중에 한명이 관리자한테 고발을 했다. 면담을 불려가서 ‘노조 만들려고 하는거냐’는 추궁을 많이 받았다”

첩보작전을 방불케 하는 노력 끝에 이 분회장을 비롯한 동료들은 지난 7월 5일 정식으로 창립총회를 열고 민들레분회를 설립했다. 민들레분회는 서울대병원 청소노동자들이 최초로 설립한 병원 청소노동자들의 노동조합으로 보라매병원, 충북대병원, 울산대병원에 이어 경북대병원에 다섯 번째 분회가 설립됐다.

이 분회장은 노조 설립 이후 업체와 단체협약 협상 과정을 이야기하며 “노조 만들기 전까지는 관리자가 ‘사장이 당신들한테 월급 주고 해서 먹고 사는데 말 잘들어라’고 하면 가만히 듣고 있었는데 이제는 ‘우리가 일해서 돈 벌어다 주니까 당신들이 먹고사는 거다’고 되받아준다”며 “일하는 노동자가 대접받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고 말해 청중의 환호를 받았다. 

끝으로 이 분회장은 “집에 있을 때는 비정규직 문제가 어떤 문제인지도 몰랐다. 그저 처음 일 시작하는 사람이 일 배우는 단계로 잠깐 거쳐 가는 건 줄 알았지. 이렇게 힘들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지는 몰랐다”며 “이렇게 부당한 세상을 바꾸기 위해서 우리가 힘을 내야 한다. 함께 힘을 내자”고 마지막 인사말을 건넸다.

“3,000명 정규직 채용안은 꼼수”
“현차 전향적 입장... 글쎄”

▲ 박현제 지부장(오른쪽)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박현제 지회장은 지난 10월 17일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에 돌입한 최병승, 천의봉 씨를 두고 “아직 버틸만하다고 하기에 그럼 내려오지 말라고 했다”며 청중의 웃음을 유도하고, 무거운 현대차 문제를 가볍게 풀어냈다.

2003년부터 오래도록 지속된 현대자동차의 불법파견 문제는 지난 2월 23일 대법원이 2년 이상 일한 사내하청 비정규직은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리면서 전환점을 맞았다.

하지만 현대차는 이후 소송 당사자였던 최병승 씨에 대해서만 대법 판결이 효력을 갖는다며 “전체 사내하청을 대상으로 하는 판결이 아니”라고 주장해 물의를 빚기 시작했다. 박 지회장은 “최병승의 불법파견을 인정한 것은 그가 처해 있는 노동조건이 불법파견이라는 것을 인정한 것”이라며 “즉 개인에 대한 불법파견 인정이 아니라, 불법파견 공정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에 대한 불법파견을 인정한 것”이라고 현대차의 주장에 실소를 보였다.

총선과 대선 등 현대차 문제에 사회 이목이 집중되자 현대차는 지난 8월 16일 비정규직 3천명 정규직 채용 방안을 제시하며 사회 여론을 무마시키려 시도했다.

박 지회장은 “2005년부터 7년간 정규직 직원 중 정년퇴직 한 사람들의 빈자리를 정규직으로 채용한 적이 없다. 7년 넘게 채용한 적이 없다가 불법파견 판결 이후 처음 낸 안이 3천명을 단계적으로 채용하겠다는 것”이라며 “7년간 정년퇴직 분을 채우겠다는 의도고 1만 3천명으로 파악되는 비정규직 중 3천명만 정규직으로 전환도 아니고 ‘채용’하겠다는 것은 꼼수”라고 지적했다.

박 지회장은 지난 14일 <한겨레> 신문의 현대자동차가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았다는 보도의 진위를 묻는 질문에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겠다. 현차 노무관리가 재미있다. 울산공장 공장장이 울산 공장에 대한 권한이 없다. 모든 사안이 정몽구로부터 정리되지 않으면 안된다. 양재동 본사의 노무팀과 울산 노무팀이 서로 줄서기 싸움을 많이 한다. 기사는 양재동에서 나온 거고, 울산에서는 그거 때문에 종일 발칵 뒤집어져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박 지회장은 “울산 공장에서는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얼버무리고 있다. 아니면 아니라고 해명 기사를 내라고 해도 움직이지 않는다. 부담스러워 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요즘은 비정규직지회가 ‘갑’, 회사가 ‘을’”
“주변 비정규직 노동자 챙겨주는 것이 비정규직 없애는 첫걸음”

박 지회장은 “현장 분위기가 재미있는게 있다”며 “나도 그렇고, 지회 간부들 쫓아다니는 관리자들이 있는데 요즘에는 관리자들도 ‘회사가 너무 어거지를 부린다. 대법원 판결도 난 걸 우리보고 어떻게 막으라는 거냐’는 말도 한다”며 “최근 서울, 울산 노무팀끼리 싸우기도 하고, 회사도 다급한 것 같다. 요즘에는 비정규직 지회가 ‘갑’이고 회사가 ‘을’이란 말도 한다”고 말해 청중의 웃음을 이끌어냈다.

끝으로 박 지회장은 “현차 비정규직 문제가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서 다른 사업장도 동일하게 적용될 가능성이 높아서 현차가 발악하는 것 같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라고 많은 분들이 도와주는 것 같다”며 “하지만 주변에 보면 우리보다 더 힘들게 싸우는 많은 비정규직들이 있다. 우리 투쟁에 관심 가져주는 것도 고맙지만 주변에 힘들게 싸우는 다른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꼭 챙겨주셨으면 좋겠다. 그것이 비정규직이 없어지는 첫걸음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