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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10월27일 05시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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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시인의 시간 (6)
혁명과 비극 혹은 시의 가능성

노태맹(시인) arche38@hanmail.net

▲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 앞

*다시 노동자들이 철탑 위에서 깃발처럼 나부끼고 있다. 비가 오고, 노래방에서 캔맥주 마시며 <그날이 오면>을 부른다. ‘빛나는 얼굴의 내 형제’가 누굴까? 아는 사람 누구 없나?

*왜 저들 세명이 우리 각각을 대의 하는지, 우리는 어떻게 이 사태를 용납하는지 문득 생각해 보면 불가사의하다. 그러나 이 사태도 이데올로기적이지만 불가사의하다고 생각하는 이것도 역시 이데올로기적이다. 어쨌거나 저들 중 누군가가 우리를 대의해야 하고 또 누군가는 반드시 안 된다는 ‘상식’은 전적으로 옳기만 한 것일까? 이 물음도 명백히 이데올로기적이(고 적어도 그걸 나는 안)다. 티비 뉴스 시간에 <연예가 중계>로 채널을 돌리는 중고딩과 아줌마들과 나는 명백하고 강력한 ‘이념적’ 계급이다.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이데올로기?  가령 이런 거다, 와이프가 두고두고 라면을 맛없이 끓여 주는 것.  맛없으면 니가 끓여 먹으라는 와이프의 무의식.

*라면을 먹으며 페이스북에 누가 김남주의 시를 올려놓은 것을 본다.  왜 이것이 시가 되는가? 라는 선입견.     

▲김남주 시인
*김남주의 <나의 칼 나의 피>를 읽던- 혁명을 이야기하던 시절이 있었다. 술집에서 서로 의견이 다르면 죽일 듯이 눈에 불을 켜고 자신의 (혁명의) 길이 더 올바르다고 주장하던 그 시절. 우리는 과연 그 때 무엇을 이야기하고 있었을까? 그것이 덧없는 시절이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반드시 옳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혁명’을 지금도 팔아먹고 있는 자들이다. 우파이든 과거의 좌파이든 그들은 그 ‘혁명의 상태’의 불가능성을 공유하면서 체 게바라의 경우처럼 혁명을 상품화하든지 자신의 논리 절단 도구로 사용한다. 그러나 혁명은 그 어떤 상태이면서 동시에 그 상태를 초과해 나가는 현재적 운동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도 공허하기는 마찬가지다. ‘납득이’의 말처럼 ‘임팩트도 없고’ ‘이해도 안 된다.’ 쩝.

*<학살>이라는 시를 말 그대로 칼날 같은 목소리로 읽던 김남주의 목소리는 지금도 내 귀에 그대로 재현된다. 그러나 김남주는 언제나 시의 바깥이었고 내가 갈 수 있는 시적 거리의 한계였다. 그에게 시는 시가 혁명에 봉사할 때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혁명은 전쟁이고/ 피를 흘림으로써만이 해결되는 것/ 나는 부르겠다 나의 노래를/ 죽어가는 내 손아귀에서 칼자루가 빠져나가는 그 순간까지// 나는 혁명 시인/ 전투에의 나팔소리/ 전투적인 인간을 찬양한다>(《나 자신을 노래한다》부분) 행갈이를 한다고, 시처럼 모양을 가진다고 해서 그것이 시가 되는 것은 아니지 않겠는가? 나는 시가 봉사활동하거나 선교활동 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 

*라면을 먹으며 페이스북에 누가 김남주의 시를 올려놓은 것을 본다. 그런데 왜 이것이 시로 읽히는가?

잣나무나 한 그루
                   김남주
내 안에 비수 하나 있었다
그걸 꺼내독점과 폭정의 심장을 찾아
밤의 거리를 헤매었던 시절이 있었다
나에게는 한때나마 그런 시절이 있었다!
아 그 무렵 내 나이는 팔팔한 나이
조국과 전선의 이름으로 내 모든 것을 바쳐
싸워야 한다고 다짐할 줄 알았던 좋은 때였으니
그날 밤 나는 얼마나 벅찬 가슴이었던가!

그것은 그러나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다
그날 밤 나와 함께 밀폐된 방에서 투쟁의 칼을 세워 놓고
승리 아니면 죽음을! 맹세했던 동지는
이제 이 세상 사람이 아니고
승리도 아니고 죽음도 아닌 나는
그를 찾아 지금 무덤으로 가고 있다 그와 나란히
비수를 품고 밤길을 걸었던 그 길을 따라

신향식 동지
사형대의 문턱에 한 발을 올려놓고
고개 돌려 그가 나에게 했던 말 그것은
죽으면 내 무덤에 잣나무나 한 그루 심어다오
그뿐이었다

나는 지금 그의 무덤 앞에 와 있다
어엿하게 장성한 그의 아들과 함께
소복을 입은 그의 부인과 함께
무덤가에 한 그루 나무를 심고
그 밑에 예의 비수도 하나 꽂아놓는다
그날 밤 우리가 다짐했던 맹세
승리 아니면 죽음을! 가슴에 되새기며

그렇다 이 나무는 동지의 나무다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밥과 자유의 나무다
사람들아 서러워 말아라 이 나무 밑에서
죽음에는 나이가 없는 법이다 역사에서 위대한 것은
승리만이 아니다 패배 또한 위대한 것이다
이 땅에서 아름다운 것 그것은 싸우는 일이니
그것을 다른 데서 찾지 말아라
찾아라 이 나무 밑에서 칼과 피의 나무 밑에서

*신향식 동지 (1934년 전남 고흥생. 1958년 서울대 철학과 입학.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투옥. 1972년 3년 6개월 복역 후 비전향으로 출소. 1976년 남민전 중앙위원.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구속. 1980년 대법원 사형확정. 1982년 10월 8일 전두환 정권에 의해 사형집행. 당시 48세)의 무덤을 1988년 출소 후 찾으면서 이 시가 왜 시로 읽히고, 어, 어떻게 감동을 주는 것일까? 

*중국 선종의 6대조 조주의 “뜰 앞의 잣나무”를 연상시키는 이 시의 핵심은 ‘죽음’과 ‘잣나무’다.  <역사에서 위대한 것은 승리만이 아니다 패배 또한 위대한 것>이라는 비극적 세계관은 <이 땅에서 아름다운 것 그것은 싸우는 일>이라는 계급투쟁의 원칙을 지지하면서 또한 그것을 압도한다.  여기서 시는 더는 혁명에 봉사활동하거나 정치의 선교활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잣나무는 죽음을 수직적으로 상승시킨다.

*누군가가 이 시에 댓글을 하나 올렸다. 이것도 안치환의 노래로 만들어 졌던가?

    돌멩이 하나
 
               김 남 주
 
하늘과 땅 사이에
바람 한 점 없고 답답하여라
숨이 막히고 가슴이 미어지던 날
친구와 나 제방 걸으며
돌멩이 하나 되자고 했다
강물위에 파문 하나 자그맣게 내고
이내 가라앉고 말
그런 돌멩이 하나
 
날 저물어 캄캄한 밤
불씨 하나 되자고 했다
풀밭에서 개똥벌레쯤으로나 깜박이다가
새날이 오면 금세 사라지고 말
그런 불씨 하나
 
그때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돌에 실릴 역사의 무게 그 얼마일 거냐고
그대 나 묻지 않았다 친구에게
불이 밀어낼 어둠의 영역 그 얼마일 거냐고
죽음 하나 같이할 벗 하나 있음에
나 그것으로 자랑스러웠다
     
*시인은 <이내 가라앉고 말> <금세 사라지고 말> ‘돌멩이 하나’, ‘불씨 하나’가 되고자 한다.  그러나 그 돌멩이와 불씨는 역사의 무게도 없고 어둠을 밀어낼 힘도 별로 없다. 겸손? 비관? 그럼에도 이 시가 힘을 가지는 것은 그 무의미가 비관으로 끝나지 않고 죽음을 통해 비극적으로 승화하기 때문이다. 예술의 비극성이 울림을 가지고 감동을 주는 것은 그것이 우리의 삶 일반과 공명하기 때문이다.  우리 대부분의 삶, 늘 아무 것도 아니었다. 비극성은 우리 삶에 주어진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어떠한 초월도 우리의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태도이다.  시인은 죽음과 ‘함께 있음’만을 받아들인다.

*하지만 시인의 삶과 시인의 시는 인과관계나 혈연관계가 아니다.  그 둘은 우연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조우할 뿐이다.  자신의 삶으로, 자신의 이데올로기로 시를 쓰거나 설명하려는 태도는 시에 대한 배신, 배반이다.  그런 의미에서 김남주의 시는 아직까지 나에게 (주관적으로) 불편하고 불안하다.  ‘잣나무’와 같은 시적 사물이 나타나지 않는 시는 관념론에 가깝다.  시인은 본래적으로 유물론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오직 (시적) 사물들을 통해서만 사고한다.  그리고 그 사물들이 시인들을 시의 세계로 호명한다.

*철학자 발리바르의 말처럼 이행은 생산 양식의 모순과 주체화양식의 모순 속에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하나의 가능성으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행은 어떤 목적을 향해 예정된 진화의 길을 따르지 않으며, 그 성공 또한 필연적으로 보증되지 않는다.  이것이 우리의 삶이고 그 조건이다.  그렇다면 이 속에서 시의 가능성은 어떠한 방식으로 보증될 수 있을 것인가?  적어도 우리가 유물론자(혹은 물질주의자)라면 말이다.  

노태맹(시인) arche3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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