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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10월13일 03시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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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광해>, 광해가 아닌 광대 하선이 필요하다.
정품 임금이 짝퉁 임금으로 전락하는 시대

이득재(대구가톨릭대, 편집위원) baxtin@daum.net

우리에게 필요한 임금은 누구일까? 추석이 지나자 안철수, 문재인, 박근혜가 서로 임금 자리를 놓고 다툰다. 호남 민심이 문재인에게 기우느니 안철수에게 기우느니 부산경남 민심 중 60%가 야당으로 가면 박근혜 대선 가도는 사실상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라느니 정치공학적인 말들이 난무한다. 노동자 민중들의 삶은 정작 껍데기만 남았는데 언어만 풍성하다. 우리에게 필요한 임금은 문재인일까, 안철수일까, 박근혜일까.
 
선조의 둘째 아들로 임진왜란 이후 양전사업 실시, 동의보감 편찬 등으로 국정을 바로 세운 광해는 왕이자 임금이되 정치의 희생양이 되어 왕이요 임금이 되지 못하고 광해‘군’으로 불렸다. 광해군은 선조의 후궁인 공빈 김 씨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서자로 몰려 희생되었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었다.

선조의 두 번째 왕비인 인목대비를 서궁에 유폐시키고 배다른 동생 영창대군을 죽였다는 이유로 인륜을 저버린 폭군으로 몰렸던 것도 표면적인 이유였다. 광해군이 왕이요 임금이 되지 못했던 것은 서인이 주도한 인조반정이라는 권력 투쟁의 결과였을 뿐이다. 17세기 초 광해군의 역사는 흡사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과 오버랩 되기도 한다. 임금이었으되 임금이 되지 못하고 대통령이었으되 죽음으로 생을 마감한 두 임금 사이에는 유사한 점과 차이점이 있을 수 있다.

두 사람 다 권력 투쟁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것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점이 유사한 점이라면 명과 금 사이에서 뛰어난 외교정책을 편 광해군과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의 손을 들어준 것은 차이점이라 할 수 있다.      

어쨌든 우리에게 필요한 임금은 누구일까? 영화 <광대>를 전제로 한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임금은 문재인도 안철수도 박근혜도 아니다. 영화는 왕이 아니라 ‘왕이 된 남자’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그 왕이 된 남자는 하늘같이 높은 궁궐에 발 한 발자국 들여놓을 수 없는 천하디천한 민중 출신의 하선이다. 영화는 왕 광해군이 아니라 왕이 된 남자 하선을 중심으로 움직이다. 영화에서 광해군이 진품 임금, 명품 임금이라면 광대 하선은 짝퉁 임금이다.

영화 속에서 진짜 왕 광해군은 권력 투쟁 속에서 정신을 잃고 보름 만에 기사회생한다. 그 사이 광대로서 기방을 출입하며 먹고 살았던 하선이 짝퉁 임금, 가짜 왕으로서 권력 투쟁에 쩐 신하들을 당황하게 한다.

권력투쟁의 중심에 있는 허균은 대동법 시행이 가져올 정치적인 파장을 우려하지만, 왕이 된 남자, 아니 광대 출신의 한 민중 하선은 지주의 반발이고 신하들의 권력 투쟁이고 아랑곳없이 대동법을 통해 균등한 세금을 부과하고자 한다. 허균에게서 정치란 하나 주고 하나 받는 것이라는 충고를 받았지만, 짝퉁 임금 하선은 소작농 자식으로 궁궐로 흘러들어온 사월이의 인생에서 민중들의 고름을 짜는 탐관오리들의 만행을 질타한다.

일견 상당히 교과서적이고 계몽주의적으로 비칠지 모르겠지만, 영화 <광해>가 비난하는 것은 권력 투쟁에 밀려난 광해군 같은 명품 임금들의 무능력이다. 대동법을 둘러싸고 지주와 신하들이 맺은 커넥션은 오늘날 부유세를 둘러싸고 재벌과 관료, 부자들이 맺은 커넥션과 유사하다.

검찰, 언론, 재벌, 관료, 정치인들의 단단한 오각 동맹 앞에서 광해군도 노무현 대통령도 무력하다. 그 더러운 신성 동맹은 명품 임금, 진품 임금이 아니라 비록 보름간 국정을 담당한 것뿐이었으나 민중적인 광대 출신 하선이가 권력을 잡았을 때만 가능한 일이다.

하선이의 시선은 소작농 집안 출신 사월이의 시선대로 움직이는 것이지 북인, 서인, 허균 등 신료들의 시선으로 움직이는 것이 아니다. 진짜 임금이 건강을 회복하고 쫓겨나게 될 운명에 처한 왕이 된 남자 하선은 허균에게 사월이의 부모를 찾아주라는 마지막 부탁을 한다. 하선에게 진짜 신하는 자신을 대신해 독이 든 팥죽을 먹고 죽어간 사월이 뿐이었다.

그리고 궁궐 밖으로 쫓겨난 하선이를 죽이라는 명품 임금 광해군의 교지를 거역한 도부장은 죽어가면서도 한낱 광대 출신이요 민중일 뿐인 하선을 임금으로 섬긴다. 짝퉁 임금이 진짜 왕이요 임금으로 인정받았던 것이다. 영화 말미에서 영화 제목 ‘광해’마냥 빛나는 바다 위 배에 몸을 맡기고 멀리 몸을 숨기러 떠나는 하선에게 예를 갖추고 목을 조아리는 허균의 모습을 통해 영화 <광해>는 우리에게 누가 진짜 임금이었는지 물어본다.

폭군의 소리를 듣든 인륜을 저버린 패륜아 소리를 듣든 무슨 상관이랴. 대북과 소북 사이의 권력 투쟁에서 살아남지 못한 왕은 왕일 수 없다. 비록 허균이 한낱 광대인 하선을 왕으로 만들어 주겠노라 공언하고 왼쪽 가슴에 상처 자국을 만들어 권력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영화 <광해>에서 짝퉁 임금은 명품 임금, 진품 임금도 하지 못한 일을 해내고 만다.

세 마리의 용들이 대권을 놓고 진품 왕의 자리를 다투는 정치의 계절에 개봉된 영화 <광해>는 우리에게 진짜는 아니지만, 사실은 진짜인 임금을 보여준다. 문재인이 대통령이 되든 안철수가 대통령이 되든 혹은 그 누가 대통령이 되든 영화 <광해>처럼 보름간 왕의 대역을 한 광대 하선이는 우리에게 없다.

진짜 왕이 왕이 아닌 시대, 명품 임금이 진정한 임금이 될 수 없는 시대, 정품 임금이 정품 임금이 되지 못하는 시대, 다시 말해 그 정품 임금이 짝퉁 임금으로 전락하는 시대에 영화 <광해>는 우리에게 물어본다. 문재인이, 안철수가, 박근혜가 정품이냐고, 진짜냐고. 진짜 임금은 한 광대이자 민중의 한 사람인 하선이 같은 짝퉁 임금이 아니냐고. 권력은 하선이, 사월이, 조내관 같은 민중들에게서 나와야 하지 않느냐고.

영화 <광해>에서 하선이는 결코 광해군의 대역이거나 분신이 아니었다. 그는 민중이었기 때문이다. 
 

이득재(대구가톨릭대, 편집위원) baxtin@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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