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길이 무섭다
어두운 밤길을
가로등 꺼진 으슥한 골목길을
우연히 걷고 있을 때
마침, 우연히 앞에서 걷고 있는 사람이
아가씨거나 아줌마거나 그도 아니면
여자 아이라면
이만 저만 낭패가 아니다
세상이 어수선해서
하도 어수선해서
남자가 그 뒤를 걷고 있었다면
더구나 그가
부스스한 머리를 감추기 위해 모자를 쓰고 있었다면
더구나 그가
허름한 노동의 하루를 끝내고 돌아가는 작업복 차림이었다면
결정적으로
그가, 교차로 구인광고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일이 전부인 무직이거나
만만하게 제일 먼저 공장에서 잘린 지
오래되지 않은 실직상태였다면
빼도 박도 못하게 의심을 받는다
혹시라도 오줌이 마려워
빨리 걷기라도 하면 그는
파렴치한 변태 현행범으로 몰리거나
사회에 불만을 품은 확신범으로 몰린다
이런 상황은
결국
여자와 남자 그 모두를 불안하게 만든다
그래도
지금,
실업상태에 있으며
내일 당장 떨어질 쌀독을 걱정하면서
추레한 작업복을 입고 터덜 터덜
불꺼진 집으로 돌아가는 남루한 남자는
조금은 억울하다
이 하소연은 도대체 누구에게 해야 하나
대한민국의 국격은 높아졌다는데
대한민국의 밤길을 걷는 여자들도
대한민국의 밤길이 무섭다지만
변두리로 몰린 생을 머리에 짊어진 채
대한민국의 밤길을 걸어가는 남자도
대한민국의 밤길이
너무
무섭다
** 대한민국에서 산다는 건 남자나 여자나 혹은 어리거나 늙었거나 다 살기가 팍팍하다. 그 팍팍한 삶이 계속되는 건 아직도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대다수의 가난한 남녀노소들에겐 더욱 모질게 대하기 때문이다. 빈곤과 차별 그리고 해고와 구속은 자연스레 가난한 남녀노소들의 이름 앞에 붙어서 떨어질 줄 모르는 고유명사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이 이름들을 더욱 구체적이고 절망적으로 수식하는 단어들이 따라 붙을 수 밖에 없다. 죽음....바로 죽음이다.
대한민국의 밤길을 걷는 여성들은 밤길이 무섭다고 한다. 당연하다. 온갖 성폭력과 성폭행, 살인, 납치등등 이루 헤아릴 수 없는 끔찍한 범죄에 그대로 노출된 채 이 비루한 대한민국의 밤길을 걸어가는 대한민국의 여성들에게 나는 웬지 미안해지고 또한 씁쓸해진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를 일으키는 원인을 자본주의 외부에서 찾는것은 어불성설이다. 문제는 내부에 도사리고 있다. 자본주의 철폐와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성의 회복 그리고 섬세하고 냉철한 상황인식이 필요하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다시 한번 미안하다. 대한민국의 밤길을 걸어가거나 앞으로 가야할 수많은 여성들에게 그리고 잔업마친 어두운 공단길을 걸어가는 모든 노동자들에게...
신경현(시인, 노동자) 그는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대구 성서공단에서 다시 용접일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의 삶인 노동의 노래를 뉴스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