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가을
비가 오다 말다 하는 하늘은
여전히 흐리기만 하고
노랗게 젖은 은행잎은
오가는 발길에 밟히고 있었다
후줄그레한 작업복을 입은
한 무리의 농민들이
여름 내내 근심과 걱정으로
동고동락한 쌀자루를 트럭 가득 싣고와
인도위에 차곡차곡 쌓아놓고 있었다
리시버를 귀에 꼽은 경찰들은
이리 저리 눈을 돌리면서
무전기로 상황을 보고하기 바빴다
성주농민회 이 모씨가
한미에프티에이 날치기 통과시킨 한나라당 규탄한다는 발언을
금방 마쳤다고 보고를 하고 있었다
무전기는 계속치익 치익 치익거리고
어제 열 받아 너무 술을 많이 마셨다는
희끗 희끗 반백의 농민은
목이 메이는지 이야기를 하다 말다 했다
집회가 마무리 되어 갈 무렵
인도에 쌓아놓은 쌀자루를
한 무리의 농민들이 들고 나와
쌀자루 안에 나락을 길에다 쏟아 부었다
누군가의 영정사진을
나락위에 꽂고 휘발유를 뿌리는 것 같았다
치익 치익
급하게 무전들이 오가고 난 뒤
새까맣게 차려입은 전경들이
손에 손에 소화기를 들고
구름떼처럼 몰려왔다
플랭카드를 들고 있던 늙은 농민들은
복창이 터지는지
이놈들아 저놈들아 소리를 지르며
삿대질을 하고 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치익 치익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경찰들은
빨리 해산하라는 소리만 할 뿐이었다
양쪽에서 전경들이 농민들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다시
치익 치익
뿌려놓은 나락에 농민들이 불을 붙이는 순간
전경들은 일심동체 한 몸으로
농민들을 덮쳤다
소화기를 준비한 농민 한 사람이
전경들을 향해 하얀 소화액을 뿌렸다
순간
날아드는 고함과 비명소리
후다닥 뛰어가는 군화발 소리 방패 부딪히는 소리
전경들은 일심동체 한 몸으로
농민들을 덮쳤다
소화기를 준비한 농민 한 사람이
전경들을 향해 하얀 소화액을 뿌렸다
순간 날아드는 고함과 비명소리
후다닥 뛰어가는 군홧발 소리 방패 부딪히는 소리
기자들의 카메라 플래시가 섬광처럼 터지고
소화기를 들고 있던 농민을 향해
저 새끼 잡아
경찰들의 협박이 날아들었다
순간
주위를 지나던 행인들의 웅성거림과 궁금한 눈빛들이
무심한 채 모여들었고
아파트 공사 현장의 노동자들도
일손을 놓고 이 어이없는 풍경의 일부가 되어
이 가을의 한 순간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천 십 일년 십일월 이십삼일
한국의 가을이 지나가고 있었다
* 곧 추석이다.
하지만 농민들에게 노동자들에게 가난한 다수의 민중들에게 이 추석은 이 가을은 풍성하기 보다 을씨년스럽고 기괴한 풍경으로 다가 온다. 한미fta에 이어 한중 fta마저 체결하려는 자본가 정권 앞에서 농민들은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지고 만다. 위로와 기쁨을 노래하지 못하는 이 가을이 서로의 안부와 덕담을 나누지 못하는 이 추석이 나는 괴롭기만 하다. 더불어 이런 시만 쓰는 나는 독자들에게 미안할 뿐이다.
신경현(시인, 노동자) 그는 '해방글터' 동인으로 시집 '그 노래를 들어라(2008)', '따뜻한 밥(2010)'을 출간했다. 그는 대구와 울산 등지에서 용접일을 해왔다. 2011년까지 성서공단노조에서 선전부장으로 일하다가 현재는 대구 성서공단에서 다시 용접일을 시작했다. 그는 우리의 삶인 노동의 노래를 뉴스민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