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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09월25일 13시4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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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창수의 노래나무 심기] (7) 공단길/고무노동자의 노래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우창수(가수/작곡가) dwcsoo@hanmail.net

부산에는 사상공단이 있다. 지금은 대부분의 큰 공장들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많은 공장들이 지금도 온갖 것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전엔 부산의 신발산업으로 대표되던 고무공장들이 이곳에 있었고 대표적 업체로 국제상사가 사상공단에 있었다. 지금은 많은 상업시설들이 들어와서 예전 모습은 아니지만, 그래도 부산의 대표적인 공단으로 말들하고 있다.

80년대 이곳 부산의 신발공장의 여성 고무노동자의 삶은 지옥 같은 삶이었다. 90년대 초반 신발공장들은 무더기 도산으로 각 공장마다 노동강도를 더하고 여성노동자의 고혈을 짜내는 운동으로 나가게 된다. 그 중에 (주)대봉에서는 “30분 더 일하기 운동”, “불황극복 50일 작전”, “3무(무불량, 무이탈, 무미달) 운동”, “무임금 1시간 더 일하기 운동” 등으로 착취를 강화해 나갔다. 1991년 고무노동자 권미경 열사는 (당시23세) (주)대봉 미싱공으로 있다가 '살인적인 30분 일 더하기'에 항거하며 팔뚝에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고 미경이다” 라는 유서를 남기고 공장 옥상에서 투신자살 했다. 열사가 남긴 유서는 아래와 같다.

“사랑하는 나의 형제들이여
나를 이 차가운 억압의 땅에 묻지 말고
그대들 가슴 깊은 곳에 묻어주오
그때만이 우리는 비로소 완전히 하나가 될 수 있으리.
인간답게 살고 싶었다.
더 이상 우리를 억압하지 마라.
내 이름은 공순이가 아니라 미경이다.”

내 나이 22살 때 나도 이곳 사상공단에서 일한 적이 있다. 그리 오래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때의 기억이 노래를 만들게 했으니 그 노래가 바로 ‘공단길’ 이라는 노래다. 내가 일한 곳은 도금 공장이었는데 내가하는 공정은 그릇을 한손에 3개씩 쥐고 아래에는 물이 차있고 위에는 전기봉이 있어 그사이에 그릇을 끼워 넣어서 도금하기 전 불순물을 제거하는 일이었다.

근데 그 도금 공장이라는 게 코뚫림병을 유발하는 황산을 다루는 지라 그 황산물이 튀어 고무장갑에 구멍이 나서 물이 새어들면 전기가 팔꿈치까지 전달되는 거였다. 손에는 물집이 잡히고 전기도 먹고 해서 도저히 못 참아 반장에게 얘기했더니 그제서야 고무장갑을 새로 줬던 기억이 난다. 또 전기로 도금하는 공정의 한 아저씨는 머리에 포마드를 그렇게 진하게 바르고 일하는 게 이해 할 수 없었는데, 그게 다 황산냄새 때문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되었다.

같이 일하는 친구 중에 16살 먹은 아이가 있었는데 도금된 그릇을 연마하는 일을 하는 동생이었다. 이놈은 날씨가 더우니 방진 마스크를 하지 않고 일했다. 혹 근로감독관이 올라치면 잠시 끼고 일하다가 이내 내팽겨 치고는 하였다. 나는 속으로 그러면 안 되는데 하면서도 나이는 동생이지만 나보다 고참이니 조심스러웠다. 한날 이야기 해야지 하다가 공장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때 일할 때가 88년도쯤이니 20년도 더된 일이다. 그 동생은 잔업을 위해 저녁을 먹을 때마다 하는 말이 “형 주말에 뭐해? 나 고고장에 좀 데리고 가주라” 며 조르던 생각이 난다. 지금 40줄의 중년이 되었다고 생각하니 궁금한 게 많아진다. 어디서 뭐하며 살까? 결혼은 했을까? 아이는? 길에서 만나도 못 알아볼게 뻔하다.

노래 공단길을 쓸 때  ‘공단거리‘ ’잔업자‘ ’가난‘ ’공장‘ 이란 단어들이 한번쯤은 포장마차 술한잔에 고향과 그리운 이들을 기억하며 서정성을 가지길 바랬다. 권미경 열사가 고무노동자의 삶을 너무 처절히 보여줬고 나도 퇴근길에 국제상사의 여성 노동자 기숙사가 공장으로 하늘 길처럼 육교로 연결된 것을 보고 섬뜩하고 무서웠다.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려오는 기억이고 한편으로는 분노와 슬픔이 교차되는 공단길이다.

공단길 노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 70년대 80년대 공단공장에서 일했던 사람들은 이 노래를 듣고 아련한 기억에 잠기거나 술을 부른다. 공장에서 일해보지 않은 젊은 사람들은 그냥 맹숭맹숭해 한다. 허나 어쩌랴 고통도 역사이고 추억도 역사이다. 오늘은 두 노래를 들어보면 좋겠다. 왜냐하면 한 노래로 수많은 이야기가 있는 공단길을 담을 수가 없다.

권 미경 열사 (당시 23세)

약력
1969년 전북 장수 출생.
1982년 2월 부산 아미초등학교. 졸업 보세공장 취업으로 노동자생활 시작함.
1985년 공장생활을 하면서 동주여자중학교 야간 졸업. 1990년 (주)대봉에서 미싱공으로 근무
1991년 광장도서원 에서 활동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공장에 취업해 야학생활까지 하며 지내다가 1991년 12월 6일 회사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주)대봉 미싱공으로 있다가 '살인적인 30분 일더하기 노동문제'에 항거하며 (주)대봉 3층 옥상에서 투신. 양산 솥발산공원 묘역에 안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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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문화예술단 일터 활동
1997년 솔로활동 시작
2007년 창작곡 1집 “빵과 서커스” 만듦
2010년 아이들 글에 붙인 창작 동요 “우리 개똥이 하는 말” 만듦
현재 우창수와 장난감밴드 활동 / 개똥이 어린이 예술단 대표

우창수의 노래나무 심기 http://cafe.daum.net/woo2011 

우창수(가수/작곡가) dwcso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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