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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3년이 넘었습니다. 2009년 8월 6일 77일간의 파업을 마무리하고 공장 밖으로 나와 경찰특공대를 앞세운 폭력과 폭포수처럼 머리위로 쏟아졌던 최루액, 테이저 건을 맞은 동료…그 악몽같은 시간을 잊고 싶었습니다. 회계조작에 의한 부당한 해고로 산자와 죽은자로 나눠 동료에게 서로 새총을 쏘게 한 회사의 악랄함에 더 이상 쌍용차 공장을 바라보기도 싫었습니다.
2001년에 입사해 9년 동안 쌍용차를 만들었던 노동자였기에 파업이 끝나고 아침에 일어나, 나도 모르게 작업복을 입고 출근준비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해고되었고, 출근할 곳이 없다는 현실에 아파트 창문 아래도 출근하는 노동자들을 보면서 하염없이 담배를 피기도 했습니다. 내가 일하던 정든 일터로 돌아가고 싶어서 다시 공장 앞에 섰습니다. 억울하게 해고된 해고노동자로, 반드시 일터로 돌아가야 하는 노동자로 공장 앞에 섰습니다. 어느덧 작업복이 아니라 투쟁조끼가 일상으로 된지 3년입니다.
3년 동안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법정관리였던 회사를 이명박 정부가 매각한다고 해 해고자 문제를 해결하는 매각이어야 한다며 산업은행 앞에서 80여 일을 노숙을 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는 해고자 문제를 해결하지 않았고, 해고노동자들의 죽음의 소식이 이어졌습니다. 부모 모두를 잃고 고아가 된 아이들, 아빠에게 연락이 되지 않아 엄마의 시신 옆에 이틀 밤을 보낸 아이들…임무창 형님의 노제를 지내며 꽃상여를 메던 날 다짐했습니다. 더 이상 동료들이 죽지 않도록 투쟁하자고 했습니다. 한진중공업으로 향하던 희망버스를 보며 희망텐트를 쳤습니다. 눈이 펑펑 내리던 날 전국에서 모인 사람들을 보며 희망도 느꼈습니다.
그러나…더 이상 죽지말자고 희망텐트를 쳤지만, 3명의 동료를 또 보내야 했습니다. 이윤영 동지의 분향소를 차리며 다시 다짐했습니다. 23번째의 죽음만은 안 된다고…그리고 수많은 동지들이 범국민대책위를 만들고 우리가 함께 하고 있습니다. 매번 우리와 함께 집회와 행사를 진행하는 수많은 동지들, 쌍용차 책을 발간한 공지영 작가, 매일 우리를 걱정하며 정성스레 음식을 준비해오신 분들, 대한문 분향소에 말없이 와서 하염없이 울다간 시민들, 그리고 우리와 함께 하다 구속된 동지까지…
청문회에 나와서 22명의 죽음에 대해 안타깝다고 말하지만, 이윤영 동지의 영정을 모신 쌍용차 정문 앞 분향소를 철거한 이유일에게 우리는 질 수 없습니다. 수많은 정성을 모아 쌍용차 노동자들과 함께 하는 분들이 있기에 저 악랄하고 파렴치한 사람들에게는 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반드시 승리해야 합니다.
저는 다시 2009년을 생각합니다. 경찰의 끔찍한 폭력이 있어도 ‘함께 살자’고 외쳤던 이윤영 동지가 함께 했던 그 시간, 지금도 어느 골방에서 희망 없이 하루를 보낼 동지들이 함께 싸웠던 그 시간이 어쩌면 지금보다는 조금쯤은 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제 항상 함께 하는 동지들과 희망을 만들겠습니다. 국정조사로 회계조작과 부당한 정리해고, 이명박 정부의 살인적인 진압의 진실을 밝혀야 합니다.
저의 회사는 쌍용자동차입니다. 저는 쌍용자동차로 돌아가 반드시 자동차를 만드는 노동자로 살아갈 것입니다.
쌍용차 해고노동자 박호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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