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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09월18일 16시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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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시절 동일방직사태, 시지노인병원서 되살아나
인권단체 “폭력, 인권침해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하라”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

▲출처: 동일방직 해고노동자 복직추진위원회
“아무리 가난하게 살아왔어도 똥을 먹고 살지는 않겠다” 이 울부짖음은 지난 2월 21일 인천 동일방직에서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깡패들에게 당한 우리 근로자들이 똥물을 뱉으며 통곡하던 말입니다.

가죽장갑을 끼고 조종을 받아 움직이는 이 몇몇 깡패근로자들은 똥을 바께스로 들고 와 머리부터 뒤집어씌우고 손으로 찍어 투표하러 오는 저희들의 입속에 쑤셔 넣고 걸레에 묻혀 얼굴에 문대고 가슴에 집어넣었으며 똥으로 뒤범벅이 되어 눈도 못 뜨는 우리들 머리채를 나꾸어채 끌고 다녔으며 이빨로 입술을 물어뜯기도 했습니다. 이 기막힌 만행은 민중의 지팡이라고 자처하는 경찰들과 근로자의 고통을 대변한다는 섬유노조 본조 그리고 회사가 지켜보는 가운데서 공공연하게 자행된 처참한 광경이었습니다. (중략)

30도가 넘는 땡볕아래서 물조차 마시지 못하며 밤낮없이 만 3일을 단식농성을 했고 경찰과 회사 측 깡패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질에 우리는 벌거벗은 몸으로 저항을 했고 노조를 지키기 위해 수치심도 버렸으며 회사 밖에서 농성하던 우리의 부모들도 있었습니다. 벌거벗은 채 72명이 경찰에 연행되고 50여명은 기절하고 14명은 병원으로 실려 갔고 한 동료는 난폭한 경찰의 만행에 쇼크로 정신분열증을 일으켜 6개월을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는 큰 희생을 치렀습니다.

저희들은 인권을 위해 구둣발에 짓밟혔고 경찰차 바퀴 밑에 드러누웠으며 휘두르는 몽둥이에 쓰러졌습니다. 경찰은 회사와 결탁하여 지부장을 공금횡령으로 뒤집어씌우는 공작을 하다가 실패를 하자 차마 입에 담을 수 없는 욕설로 우리들을 취조하고 빨갱이 년들이라는 말을 서슴지 않았습니다. (하략)

-전국 섬유노조 동일방직 지부. 1978.3.

지금으로부터 35년 전 동일방직 여성노동자의 절규다. 2012년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 같던 일이 민주주의 국가 대구 시청 앞 한 복판에서 반복됐다.

▲박순희 원풍모방노조 지도위원
7~80년대 원풍모방노조 민주화 활동을 벌인 박순희 원풍모방노조 지도위원이 18일 대구시청 앞 시지노인병원 노동자 앞에 섰다. 박순희 지도위원은 “70년대 살기위해 벌인 나체시위, 이에 아랑곳 않고 폭력적 연행이 오늘날에도 벌어지고 있다. 왜 대구시장이 노동자를 못 만나주나, 시장과 운경재단, 경찰이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꿀리는게 있으니 시장이 못 나오는 것 아니냐. 세상을 바꾸는 힘은 여전히 노동자”라고 절규어린 말을 뱉었다.

지난 12일 대구시청 앞에서는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경찰은 임금체불과 부당해고 중단을 요구하며 대구시장과 면담을 요구하던 보건의료노조 시지노인병원지부 노동자를 무차별적으로 연행했다. 이에 저항하던 여성 조합원들은 상의를 탈의하며 저항했으나, 속옷만 입은 채 남자 경찰에게 연행됐다. 홍상욱 보건의료노조 대경본부 사무국장은 하의 속옷만 입은 채 연행됐다.

또 경찰은 이재식 민주노총대구본부 수석부위원장과 조합원 1명에게 수갑을 채워 연행했다. 시지노인병원 조합원들의 증언에 따르면 경찰은 상의를 탈의하며 항의하는 여성조합원들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남자 전투경찰이 가슴께를 붙잡고 들어 올리는 등 성추행 상황도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상욱 보건의료노조 대경본부 사무국장
홍상욱 사무국장은 당시 시청 앞에서부터 경찰 차량까지 바닥에 끌려 연행됐다. 이 때문에 그는 온 몸에 멍과 상처가 생겼다. 대구중부경찰서에 도착해서도 속옷만 입은 채 조사가 진행됐다. 그는 “속옷 바람인 채로 여고생 4명의 피의자와 함께 조사를 받아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며 “저 뿐 아니라 그들도 성적 수치심을 느꼈다. 담요 한 장을 경찰에 요구했으나 40여 분이 지나고 나서야 옷가지를 받을 수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홍 사무국장은 “우리는 면담을 요구하며 평화적으로 연좌했다. 살기위해 한 일인데 죽기 살기로 우리를 잡아갔다”며 “운경재단, 시지노인병원, 시장은 한 통속이다. 노동자들 요구를 무시한 것, 폭력적 연행, 성적 수치심을 불러일으킨 인권침해 모두 분통이 터진다”고 호소했다.

이에 18일 대구지역 인권단체와 민주노총은 대구시청 앞에서 '용역깡패와 다름없는 폭력경찰의 과잉진압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경찰의 사과와 재발방지 약속을 요구했다.

김헌주 인권운동연대 운영위원은 “우리가 경찰을 똥파리나 짭새라고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민중의 지팡이라는 보기 좋은 이름을 걸어 놓고도 피땀 어린 노동자의 절규를 무시하는 공권력에 맞서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12일 수갑이 채워진 채 연행 당한 이재식 수석부본부장은 “현행범도 아닌데 수갑을 채워 연행했다. 불편해 수갑을 풀어달라고 요구했으나 묵살당했다”고 말했다.

조합원 송 모 씨는 “이 자리에만 서면 울음이 나올 것만 같다”며 “당시 경찰이 잠긴 현관문을 열고 진압할 때는 살려달라는 말도 못한 채 비명만 질렀다. 인간이 아니었다. 그 사람들에게 발길질 한 번 못하고 전경 방패로 짓눌렸는데 경찰은 우리가 불법이라는 터무니없는 주장만 하고 있다”고 억울함을 호소했다.

참가자들은 “14일 대구시청앞에서 자행된 부당한 공권력은 입에 담을 수 없을 인권침해, 성추행, 폭력이라는 상처를 남겼다. 시민을 위한 경찰이 아니라 권력에 기댄 김범일 대구시장을 위한 경찰임을 인정한 꼴”이라고 경찰을 비판하며 ▲여성노동자들에게 가해진 폭력과 인권침해 즉각 사과 ▲책임자 처벌 ▲인권침해 재발방지 약속을 경찰에 요구했다. 기자회견 직후 인권단체들은 14일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구성해 당시 상황에 대한 추가적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다.

대구중부경찰서 관계자는 “집회 신고는 시청 맞은편 주차장에 나 있었다. 시청 앞에서 집회를 하던 이들에게 해산명령을 내렸으나 불이행해 연행했다”고 밝혔다.

시지노인병원노조는 병원측의 최저임금위반, 조합원과 비조합원에 대한 임금 차등지급, 부당노동행위, 불법해고, 노조탄압 등의 문제로 지난 6월 27일 파업을 시작해 매일 대구 시청 앞 집회를 진행해왔다. 대구시가 기존 재단과 위수탁 재협약을 맺는 등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아 8월 22일부터 천막농성을 진행했고, 12일 이상국 지부장이 삭발식을 진행하기도 했다.
 


 

1. 동일방직노동자 투쟁
전국섬유노조 동일방직지부 여성노동자들의 민주노조 사수투쟁.

동일방직 인천공장은 전체 1,300명의 노동자 중 1천 명 이상이 여성인 사업장으로서 이미 1946년에 노조가 결성되었으나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다가, 72년 한국 최초로 여성 지부장 주길자를 선출한 이래 도시산업선교회 등의 지원을 받으면서 민주노조로 착실히 성장해왔다. 77년 7월 23일 노조지부장 이영숙이 경찰에 연행된 틈을 타 회사 측의 사주를 받은 고두영이 회사 측 방침에 순응하는 대의원 24명만을 모아 전격적으로 대의원대회를 열고 자신을 지부장으로 선출케하는 사태가 발생하자, 수백 명의 여성 조합원들은 즉각 농성에 돌입, 회사 측의 비열한 처사에 항의했다. 사흘째 농성이 계속되던 25일 농성조합원을 해산시키기 위해 경찰이 투입되자, 70여 명의 조합원들은 작업복을 벗어던지고 알몸으로 저항했으나 경찰은 곤봉과 주먹을 휘두르며 여성노동자들을 무차별 연행, 40여 명이 기절하고 14명이 부상하는 등 현장은 삽시간에 아비규환의 생지옥으로 변했다.

한편 <동일방직분규 수습대책회의>의 합의사항에 따라 이총각을 지부장으로 하여 새롭게 구성된 집행부는 78년 2월 21일을 대의원선거일로 공고하고 준비중, 선거당일 박성기 등 회사 측에 매수된 남성노동자 4명이 투표장을 기습, 부근에 있던 여성노동자들에게 닥치는 대로 똥물을 퍼붓는 만행을 저지른 데 이어, 노조 사무실을 습격, 조합원들을 집단폭행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를 방조하고, 전국섬유노조는 3월 6일 동일방직노조를 사고지부로 처리, 이총각 지부장 및 부지부장 2명, 총무부장 등 4명을 <도시산업선교회와 관련이 있는 반조직행위자>라는 이유로 제명했으며, 회사 측은 124명의 조합원을 무더기 해고시켰다. 해고노동자들은 각종 기도회·시위·농성 등을 통해 당국과 회사의 만행을 규탄하는 투쟁을 전개했으며, 각계각층의 민주세력들이 이들의 투쟁을 지원했다. 동일방직노동자투쟁은 <알몸> <인분>으로 상징되는 처절한 저항과 극악한 탄압으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킨 70년대 노동운동의 신화적 사건이 되었다. (출처 : 한국근현대사 사전)

2. 원풍모방노동자 투쟁
한국모방(나중에 원풍모방) 노동자들의 노조민주화투쟁.

일당 320원의 저임금, 상여금 미지급, 10분 지각에 특근 1시간 공제, 3년 미만 근무시 퇴직금에서 중식대 공제 등 회사 측의 온갖 횡포에 맞서는 한편, 무능노조를 정상화시키기 위해 한국모방 노동자들은 1972년 7월 8일 <한국모방노동조합 정상화투쟁위원회>를 결성했다. 8월 17일 우여곡절 끝에 열린 노조대의원대회에서 지동진이 지부장에 당선되자, 회사 측은 이튿날부터 해고 14명, 부서이동 25명 등 열성적 노조원을 무더기 징계하는가 하면, 지동진을 구타, 전치 2주의 상처를 입히는 등 노조를 전면적으로 탄압하고 나왔다. 이에 분노한 조합원 5백여 명은 8월 22일 명동성당에서 농성에 돌입, 6개항 요구사항 수락 합의하에 귀사했으나 회사 측은 보복조치를 하지 않겠다는 당초의 약속을 어기고 노조간부들을 고발, 9월 4일 노조간부 14명이 <국가보위에 관한 특별조치법> 위반 혐의로 경찰에 연행되었다.

이에 조합원들이 또다시 농성할 움직임을 보이자 경찰은 교선부장 방용석과 총무부장 정상범 2명만 구속하고 지부장 등 나머지 12명은 석방했다. 이후 조합원들은 태업을 계속하는 등 끈질긴 투쟁 끝에 임금인상을 쟁취하고 단체협약을 체결, 투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후에 원풍모방노조로 바뀐 한국모방노조는 가톨릭노동청년회(JOC) 등 종교계의 지원을 받으면서 70년대 민주노조의 가장 강력한 보루로서 위치를 굳혔으나, 80년 5·17 이후 전두환 정권의 모진 탄압 속에서 노조를 지키려는 조합원들의 2년여에 걸친 끈질긴 투쟁에도 불구하고 82년 9월 30일 해체됨으로써 70년대 최후의 민주노조는 무너지고 말았다. 원풍노조의 해고자들은 84년 이후 노동자복지협의회 건설에 중심축이 되었다. (출처 : 한국근현대사 사전)
 

천용길 기자 droadb@newsm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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