왔다. 유니폼이 왔다. 7월부터 야구를 시작했다. 이제 갓 결성된 신생팀이다. 아직 정식으로 창단식도 하지 않았다. 유니폼만 도착했다. 시작은 페이스북에서 우연히 본 페친의 야구단 결성 소식이었다. ‘(가칭)대구적록연합야구단’. 진보신당 대구시당과 대구 녹색당의 젊은 당원들이 조직 중인 야구단이었다.
그즈음 동건이 형과 하늘이 누나의 달달한 러브스토리 <신사의 품격>에 빠져있었다. 그들의 러브스토리 못지않게 매력적인 형님들의 야구하는 모습과 아리따운 심판이란! ‘아... 야구하고 싶다’는 욕심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진보신당도, 녹색당 당원도 아니지만 대뜸 “저도 해도 되나요”라고 물었다. 그렇게 시작했다. 하늘이 누나 같은 심판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0.000001%의 희망을 품으며.
한때 야구선수가 꿈이었다. 민중의 지팡이가 꿈이었던 초등학교 4학년 꼬마 아이는 코리안 특급의 경기를 지켜보며 야구선수의 꿈을 키웠다. 그의 경기는 빼놓지 않고 지켜봤다. 당시에는 프로야구 선수들 스티커 모으기도 유행했는데, 거의 매일 학교 수업을 마치면 문방구로 달려가 스티커를 사 모았다. 다 모으면 배트, 글러브 등 야구용품을 상품으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종범, 선동열 선수의 스티커가 정말이지 안 나왔다. 스티커를 다 모아 상품을 받았다는 소식은 풍문으로만 나돌뿐 주변엔 다 모았다는 사람이 없었다. 어쨌든 나는 야구선수가 꿈이었고, 야구부가 있는 S중학교로 진학했다.
입학 후 신입부원을 뽑는다는 소식에 야구부에 입부하려 했다. 하지만 어머니와 1학년 담임 선생님의 강한 반대에 부딪혀 입부서 조차 쓰지 못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1년 만에 어머니와 선생님에게 고마움을 느끼게 된 사건이 발생했는데, 2학년이 되던 해 학교 야구부가 해체되어 버렸다. 실력 있는 선수들은 다른 학교에 스카웃 되어 떠났다. 그렇게 야구선수가 되겠다던 내 꿈은 어린시절의 추억이 되어버렸다.
이후 야구와는 큰 인연 없이 살았다. 그저 2002년, 9회말 이승엽의 동점 쓰리런 홈런에 이어 마해영의 동점 백투백 홈런이 터졌을 때 함께 포효했고, 2005년엔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감독 선생님 몰래 라디오를 들으며 3년 만의 삼서라이온즈 한국시리즈 우승을 감격해 했다. 하지만 그걸로 끝이었다. 이만수를 내쫓다시피 은퇴 시키고, 양준혁을 은퇴 시켰을 때 그리고 선동열을 경질시킬 때 삼성을 버렸고, 함께 야구도 버렸다. 응원할 팀이 사라지고 난 뒤는 야구를 볼 흥미를 못 느꼈다.
마침내 다시 응원할 팀을 찾았다. 아니, 늦었지만 꿈을 이루게 됐다. 불행하게도 목을 무자비하게 다룬 대가로 오른쪽 어깨 상태가 그다지 좋지 않아(의사 선생님 말에 따르면 목 척추가 문제를 일으켜 어깨도 같이 좋지 않은 거라고) 꿈에도 그리던 투수를 하진 못할 것 같다. 하지만 꾸준한 재활(?)로 어깨가 정상을 되찾는 날이 되면 그라운드에서 제일 높은 곳, 그곳에 서는 날을 꿈꾼다. 그날을 그리며 플레이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