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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관리툴 2012년09월01일 05시0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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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는날] 정만진의 대구여행 (6)
달성, 대구의 철기 시대를 보여주는 대표 유적

정만진(소설가) daeguedu@daum.net

▲달성공원 정문

2011년 1월 6일, 습관처럼 달성공원을 찾았던 대구 시민들은 누구랄 것도 없이 모두들 크게 놀랐다. 공원 정문 앞에 ‘범죄의 현장’처럼 붉은 출입금지 4울타리가 커다랗게 둘러져 있고,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나 싶어서 가보지만 정문 옆으로 들어가는 향토역사관도 출입문에 무시무시한 경고판이 붙은 채 폐쇄되어 있기는 마찬가지.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가축질병공고 ‘심각 최고 단계 발령’ 때문에 공원 개방을 잠정 중지한다는 설명이었다.

물론 그 전날인 1월 5일 아침에 신문을 유심히 읽었거나, 밤에 텔레비전 뉴스라도 놓치지 않고 본 사람이라면 달성 공원이 6일부터 문을 열지 않는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을 터이다. 그런 시민이라면 애당초 새벽 찬바람을 뚫어가며 달성공원을 찾아오지도 않았겠지만, 습관처럼 달성공원 앞으로 운집하는 고령의 ‘단골손님’들 중에는 모르는 채로 왔다가 당혹한 분들도 상당수 계셨을 법하다.

달성공원 관람이 6일부터 전면 중단된다. (중략) 대구 시민들에게 '마음의 고향'으로 상징되는 달성공원이 폐장되는 것은 1969년 8월 1일 개원 이후 처음이다. (중략) 달성공원은 평상시 하루 관람객이 7천여 명에 이르고, 동절기에도 3천여 명이 꾸준히 찾는 곳이다. : 영남일보 2011년 1월 5일

아침에 신문을 펼친 대구 시민들 중에는 ‘달성공원 잠정 폐쇄’라는 위의 1면 톱기사를 보면서 정말 ‘마음의 고향'을 잃은 듯 허전함을 느꼈을 것이다. 공원 안에 동물원이 있어 어릴 적부터 그곳을 드나들었던 대구 시민들이니 폐쇄 소식에 마음이 허전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특히 자가용을 별로 소지하지 않았던 1980년대까지만 해도 가족 나들이는 시내버스를 타고 달성공원을 찾는 것이 다반사였고, 멀리 간다 해도 팔공산 비탈 정도에서 맴돌다가 막차를 타려고 동화사 봉황문 아래 버스정류소에서 차표를 들고 길게 줄을 섰던 기억을 잊지 못하는 40대 이상의 시민들은 더욱 그러할 터이다.

▲달성토성 흔적

달성은 제62호 국가 사적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에 나타난 성곽의 하나로, 고대 토성 축조 기술 역사의 산 증인으로 평가받고 있다. 달성은 대구 분지의 평평한 땅에 홀로 살짝 솟은 구릉 위에 세워졌으므로, 맴돌아 흐르는 하천을 원용하여 축성한 경주 월성과 성을 쌓은 기법이 같다고 보면 된다. 달성의 동쪽과 북쪽은 하천 위에 날카롭게 선 천연의 단애(斷崖)를 고스란히 성벽으로 활용하였고, 지금 시민들이 드나드는 공원 정문에서 서쪽의 완만한 경사지에는 흙과 돌로 성벽을 쌓았다.

▲달성공원 내부

청동기 이래 대구 지방의 중심 세력이 범처럼 웅크린 채 세력을 과시했던 이곳 달성의 규모는 동서로 약 380m, 남북으로 470m에 이르고, 성벽의 주위 둘레는 1300m, 높이는 4m 안팎 정도였다. 성벽의 아래쪽에서는 조개무지 유적(1968년 10월 발굴)과 목책(木柵) 흔적이 발견되었고, 남서쪽으로 펼쳐진 내당동 일대의 구릉에서는 삼국 시대의 고분 수십 기가 있었다. 고분들은 1923년에 일부 발굴되기도 했으나 현재는 모두 사라지고 없다. 지금 달성공원에 가면 일반 시민들은 토성(土城) 위에 석축(石築)을 쌓았던 흔적이 아직 남아 있는 성벽 상층부의 큰 돌덩어리들을 찾아볼 수 있다.

달성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등장한다. 261년(첨해이사금 15) 봄 2월에 ‘달벌성을 쌓고 극종을 성주로 삼았다(築達伐城以奈麻克宗爲城主)’는 내용이다. 그 후의 기록들은 달성(達城)이 대구 시민들의 자부심이라는 사실을 숨김없이 보여준다.

-달성이 축조된 시기는 (불분명하나) 5세기경 <대구시사>

-남한에 현재 남아 있는 토성으로는 광주 풍납리 토성과 더불어 대구의 달성이 두드러진 것 <대구의 향기>

-우리나라에서 가장 원형이 잘 보존된 문화재 <달성공원 내 안내판>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나타난 성곽의 하나로 평가 <달성공원 입구 안내판>

대구에 사람들이 구석기 시대부터 살았다는 증거는 월성동 유적 발굴을 통해 확인되었다. 신석기 유물은 서변동 발굴 등에서 확실한 면모를 드러내었다. 청동기 유적은 정말 많아서 하나하나 열거하기도 어렵다. 대구시 편 <대구의 향기>가 ‘대구에는 청동기 유물이 많이 나온다’고 특징적으로 표현할 정도이다.

달성(達城)은 대구에서 볼 수 있는 철기 유적의 대표적 답사지이다. 1905년 처음으로, 그 이후 1969년에 본격적으로 공원으로 조성된 달성은, 달구벌에 자리를 잡은 부족국가가 완전한 철기 시대로 들어선 이후 한(漢)문화의 영향을 받아가면서 축성한 토성으로 추정되는 뚜렷한 철기 유적이다.

달성공원의 역사와 현황

1596년(선조 29)에 경상감영이 설치되었던 달성은  1905년(광무 5)에 이르러 처음으로 공원으로 조성된다. 그 후 1963년 10월 18일, 달성은 국가 사적으로  지정된다. 지금 같은 공원으로 개원한 것은 1969년 8월 1일의 일이고, 1970년 5월 2일에는 동물원의 개원, 2000년 4월 1일부터는 무료 개방을 실시했다. 대구시 홈페이지는 달성공원을 ‘대구의 여러 공원 가운데 가장 오래되고 시민들과 친근한 공원’이라고 설명한다.

달성공원에는 1948년에 세워져 우리나라 최초의 시비라는영예를 얻은 ‘상화 시비’가 있다. 또, 동학을 창시한 최제우 동상, 구한말 의병장으로 활약하다가 옥사한 허위 선생 순국기념비, 청년교육과 독립군 양성에 헌신한 이상룡 선생 구국 기념비, 달성서씨 유허비 등도 있다.

▲서침나무

달성공원은 아이들에게 호랑이를 비롯 25종 90마리의 포유류, 비단잉어 등 2종 940마리의 어류, 타조 등 59종 435마리의 조류가 있는 동물원이기도 하다. 그중에서도 특히 조류 8종 17마리는 천연기념물이다. 그뿐만 아니라, 달성공원에는 나무도 많아 수목원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인데, 향나무 등 60종 5,236그루의 교목류와 광나무 등 37종 2만 3,804그루의 관목류가 서로 어울려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

* 더 알아보기 / 달성공원의 유래 (달성공원 홈페이지)

▲달성고분에서 출토된 금동관
대구는 신라 때 달구화현(達句火縣)이라고 불리다가 8세기 중엽인 경덕왕 때에 ‘대구’현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달성의 옛 이름은 이 달구화(達句火), 달불성(達弗城)에서 유래된 것이다. 달성은 경주의 월성(月城)처럼 평지에 있는 낮은 구릉을 이용하여 축성한 것이 특징이다. 달성은 청동기 시대 이래로 이 지방의 중심 세력을 이루고 있던 집단이 생활 근거지에 쌓은 성곽이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성벽 아래층에는 조개무지 유적이 있고 목책의 흔적도 있다.

따라서 달성은 우리나라 성곽 발달사상 가장 이른 시기에 나타난 형식의 하나로 평가되고 있다. <삼국사기>에는 신라 점해왕 15년(261)에 달벌성을 쌓고 극종(克宗)을 성주로 삼았다는 기록이 있다.

신라에 합병된 뒤에는 군사 요충지로 중시되었으며, 고려 공양왕 2년(1390) 토성에 석축을 더했다. 조선 선조 29년(1596)에 석축을 더하고 경상감영을 이곳에 두었다. 성벽은 주로 흙으로 쌓았고 주위 길이는 약 1,300m, 높이는 4m 안팎이다. 
 

정만진(소설가) daeguedu@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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